라오스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메콩강이다. 중국 청해성에서 발원해 운남성을 지나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지나는 4,180km의 세계 12번째인 메콩강은 라오스 서쪽 지역의 북부부터 남부 끝까지 흐르면서 중국,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와 국경선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백두산에서 발원한 압록강이 신의주까지 와 서해 해안선을 따라 남포, 해주, 인천, 고창을 거쳐 내륙으로 들어가 보성 앞바다로 흘러가는 모양이다. 이 강을 따라 평야가 발달하고 도시와 인구가 밀집해 있기 때문에 메콩강은 라오스의 젖줄과도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필자가 13번 국도를 따라 라오스 중부의 수도 비엔티엔에서 서남단의 참파섹 주까지 700여 km를 가면서 바라본 메콩강은 모든 강의 어머니라는 뜻처럼 한없이 자애로웠다. 11월이 건기임에도 풍부한 수량으로 때로는 도도히, 때로는 유유히 흘러가는 모습은 가난한 나라에서 탈출하겠다는 라오스의 비장한 각오와 절박함과는 대조적으로 여유롭고 포근해 보였다.
라오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 정식 명칭인 사회주의국가 라오스의 제1과제는 세계 최빈국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사회주의국가의 상징인 계획통제경제는 이미 시장경제에 자리를 내 주었다. 그래서인지 조그만 마을에도 활력이 넘쳤다. 하나라도 더 팔려는 아낙네들의 끈질김과 간절함은 마치 우리의 70~80년대를 보는 것 같았다.불도 꺼지고 인적도 거의 없는 늦은 밤에도 거리의 한켠에서는 장사를 하고 있어 이들이 오히려 자본주의의 치열함을 실천하는 듯이 보이기도 했다.
49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인구 약 710만 명의 동남아시아 내륙국가인 라오스는 그들의 50%가 20세 이하이며 33%는 15세 아래로 추정되는 젊은 나라이다. 사회주의 국가가 자본주의를 실험하고 있는 이 나라에서 교육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가 궁금해진다. 지구촌 다른 한편의 교육공동체가 품고 있는 교육에 대한 고민과 희망은 라오스의 오늘과 내일을 바라보는 창이며 또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도 크다.
교육은 라오스 경제발전의 또 다른 초석
학교 방문과 교사, 교육관료 등을 만나면서 느낀 것은 라오스가 국가발전 전략에서 교육의 역할을 매우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경제발전에 가장 절실한 것이 외부세계로부터의 원조와 투자 유치이지만 이를 내부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것은 인적자원이라는 인식을 깔고 있었다.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성장의 시대를 이끌어 나갈 재능 있는 인재와 그들이 만든 미래사회에서 자신은 물론 국가를 위해서도 기여하는 지식과 기술을 가진 평범한 인재 육성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었다. 수월성과 평준화 교육을 적절히 혼용한 것이다. 초등학교부터 정기적인 시험을 통해 학업 우수학생을 찾아내고 이들을 주 단위에서 한 번 더 걸러낸 뒤 전국적 시험에 내보내 시상하고 격려하는 한편, 이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전자의 예라면 초등에서 읽고 쓰기 교육을 강화하면서 점차 중·고등학교 진학률을 높여가는 정책은 후자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각종 지표상으로 볼 때 라오스의 교육은 서서히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정부는 2015년에는 공식적으로 ‘초등교육의 전국적 균질실행 계획’이 완료되었다고 선언했다. 학교가 위치한 지역에 관계없이 라오스 초등학생이라면 누구나 질적 차이가 없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 마련을 완료했다는 뜻이다. UN이 2015년까지 달성을 제시한 새천년개발목표(MDG)의 초등 취학률 90%도 이미 2012년 달성했고 현재는 지속가능한발전 목표(SDG)와 연계, 교육의 내용 개선을 통해 라오스 국민을 보다 더 질 높은 전문가로 육성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의무교육인 초등학교 취학율의 100% 달성을 넘어 중학교까지의 의무교육도 추진하고 있다.
라오스 교육의 난제 - 49개 민족, 3분의 2가 시골 거주
라오스 교육당국의 선언과 발표는 통계 자료상이나 큰 틀에서 볼 때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교육시설과 같은 학교 인프라는 아직도 개선의 여지가 남아 있었다. 필자가 방문한 호아이라(houayla)초등학교는 수도 비엔티엔에서 버스로 1시간 떨어진 시골마을에 있었다. 5개 교실과 교무실을 갖춘 단층의 이 학교는 민간단체인 한국-라오스 친선협회가 2년여의 준비과정과 공사를 거쳐 새로 지어 넘겨준 것이다. 교장선생님과 교사의 안내로 교실과 교무실을 둘러보았다. 가지런한 책상과 의자, 책가방, 칠판 좌우에 붙은 시간표와 아이들의 그림으로 장식한 교실은 ICT 장비와 에어컨만 있다면 우리의 교실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학교 사정은 달랐다. 학교기증을 위해 이 학교에 온 한국-라오스친선협회 오명환 회장은 “이전의 학교는 멀리 떨어져 있었고 시설도 매우 낡아 불편했지만 재정적 한계로 개축이나 신축을 할 수 없어 우리에게 원조를 요청해 왔다”면서 “이 학교를 라오스에서 으뜸가는 학교로 발전시키기 위해 앞으로도 도서관, 진입도로, 운동장, 놀이터, 우물설치를 지원하고 장학금 지원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라오스 교육당국도 부족한 학교 인프라의 확충을 위해 학교를 지어주거나 물품을 원조 받는 것에 대해 적극적이었다. 이 학교의 기증식에도 교원, 학생은 물론 교육청 담당자, 지역의 주요인사, 학부모들이 나와 행사에 참여하고 좀 더 좋은 환경의 학교를 가지 게 되었다는 데 매우 만족해하고 고마워했다.
라오스 교육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49개 민족’과 ‘인구 2/3의 시골거주’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49개 민족의 존재는 라오스가 인종적, 문화적, 언어적으로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도 되지만 농촌 등 시골지역 거주 인구가 많다는 것과 맞물려 교육당국이 풀어야 할 난제이기도 하다. 즉, 수많은 자연부락에 흩어져 살고 있지만 인종적으로 서로 다른 국민들을 어떻게 교육하느냐가 봉착한 문제인 셈이다. 라오스가 학교에서의 공용어를 다수 민족이 쓰고 있는 라오어로 하고 있지만 통계에 따르면 47%의 학생은 집에서는 이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공용어가 80여 개의 언어 중 하나이기 때문인데 라오스 학생의 반이 겪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교육당국도 이의 해결을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쓰고 있는데, 읽고 쓰기 프로그램(literacy program)을 강조하는 것도 그 중의 하나다. 이를 통해 학생들 이 공식 언어인 라오어에 자신감이 붙으면 학습에 대한 흥미와 열의도 같이 높아져 간다는 것에 착안한 것이다. 또 하나가 소그룹학습을 장려하는 것인데, 이것은 학습단위를 작은 모둠으로 나누면 학생들간 접촉 기회가 많아질 뿐만 아니라 상호 협력도 일어나 소수 민족 출신도 수업에 적극적이 되어 언어문제도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학교시설 개선의 여력이 없는 것도 시골 인구가 많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83만여명 의 초등학생이 전국의 8,800여개 학교에 흩어져 있고 그 중 2,700여개 학교는 교사 1, 2명이 배치될 정도로 소규모이며 길도 변변치 않는 오지에 있다. 교육당국이 초등교육의 전국적 균질화를 추구한 이면에는 이러한 민족적 지역적 교육격차를 없애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학생중심수업, 그러나 상명하달(TOP-DOWN) 방식의 교육 거버넌스
한 나라의 교육은 교사의 수준을 넘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개혁과 개방이라는 변화의 한가운데 서 있는 라오스에서 교육자의 일상을 엿보는 것은 라오스의 교육을 이해하는 데 유용했다. 라오스는 “스승은 또 다른 부모다”는 말을 쓸 정도로 전통적으로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깊은 나라다. 교사를 학위와 경력, 업적에 따라 대우하기 때문에 우수한 학생의 교직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고 한다. 호아이라초등학교 방문 때 필자가 만난 20대 후반의 여교사도 매우 친절하면서 품위와 절도가 있어 보였다. 아이들은 물론 지역주민과도 잘 어울렸고 그들도 여교사의 지시에 잘 따르는 것을 보고 교사가 존경받는 직업이라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연구결과에 따르면 열정과 사명감이 넘치는 교사도 정부정책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라오스는 1999년의 교육개혁을 통해 교사는 학생중심의 활동이 가능하도록 수업의 매니저이자 촉진자 역할을 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시스템은 여전히 여러 단계의 위계질서로 돌아가기 때문에 의사결정은 여전히 탑다운 방식이다. 교사가 교육개혁의 방침대로 교사중심, 암기위주의 수업을 버리고 학생활동을 지원· 조장하는 역할을 하고 싶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가 정해 준 수업계획서에 따라 수업하고 성과에 대해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학생중심보다 교사중심의 수업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전통적 위계질서가 오히려 교사의 자율과 교육개혁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라오스 아이들 - 교실에 피는 희망의 꽃
라오스는 초등학교도 졸업시험을 치르고 있는데, 통과하면 지역단위에서 인증서를 준다. 유급제도도 있다. 시험이 학생 자신의 지식과 창의성을 보여주는 기회도 되며 장래성있는 학생을 격려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학교가 재능있는 학생을 위한 특별학급 운영도 할 수 있으며 전국최 우수학생선발시험도 있어 지역단위와 주단위에서 학년 초에 선발하여 참여시킨다. 교육의 질 향상을 추구하면서 민간 부문의 투자를 장려하자 사립학교도 우후죽순처럼 늘어 나고 있다.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은 정부차원에서 인적자원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수준에 접근하는 교육을 추구하면서 경쟁상대도 아세안(ASEAN·동남아 시아국가연합) 국가로 높였다. 대내적으로는 사회경제 발전에 따라 요구되는 인력을 양성하지만 대외적으로는 시장을 두고 장차 외국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자는 것이다. 이래저래 교육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 것이며 정부가 교육제일주의의 깃발을 들고 앞장서 가고 있는 것이다. 남부 볼라벤 고원에 있는 KM5초등학교를 방문했을 때도 학교를 가득 채운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정부의 열정, 교사의 열의, 학생의 열심이 한데 모아져 뿜어 나오는 에너지였다. 교실과 운동장을 가득 채운 아이들의 맑은 눈과 밝은 웃음 너머로 라오스의 미래가 희망의 꽃으로 다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