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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경비구역(JSA)에서 마음에 그리는 그림


밤새 소원이 나풀거리는 듯 북한산자락에 눈이 내렸다. 방송에서는 1월 9일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비무장지대 공동경비구역(JSA) 내 우리 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 회담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이번에는 무슨 속내를 가지고 왔을까? 지금까지 회담 결과를 번복하기를 죽 먹듯이 하는 북한의 태도로 미루어 신뢰가 가지 않는다. 역시 북측 대표단은 회담 끝에 핵 문제에 대하여선 북미 간 대화이지 남북 간 대화가 아니라며 발끈 본성을 드러냈다. 정말 그들은 진실을 가슴에 담고 온 것일까? 진실이 건설적인 목적에 기여하지 않는다면 평화가 진실보다 더 소중한 것이다. 평화는 위대한 것이다. 평화를 위해서라면 하느님께서도 진실을 수정하신다는 말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서울을 벗어나 자유로를 따라 공동경비구역 내 판문점으로 향하는 길. 하늘색은 파리한 채 태양도 열기를 내지 못한다. 군데군데 얼어붙은 임진강의 얼음장 위엔 눈이 쌓이고 벼 그루터기만 남은 들녘은 숨소리도 죽이고 있다. 판문점 9.5㎞를 앞둔 통일대교에서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들어가기 위한 첫 번째 검문을 받는다. 입경과 출경 인원수가 맞아야 한다. 검문하는 헌병의 붉은 콧날이 안쓰럽기만 하다.


남방한계선 도라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비무장지대의 겨울은 유난히 춥다. 개성들에서 불어오는 삭풍에 귀가 아리도록 시리다. 하지만 북쪽을 바라보는 마음은 얼음장보다 더 시리다. 안보 관광지라 더러 외국인도 보인다. 그들의 눈엔 이곳의 상황이 어떻게 비칠까? 같은 공간이라도 한기는 느끼는 자의 마음일 것이다. 


개성공단과 남북출입관리소를 오가던 도로는 움직임을 볼 수 있다. 그 폐쇄된 길은 찬바람, 갈까마귀 독수리 떼만 넘나든다. 바스러질 것 같은 종이꽃 같은 마음을 보듬으며 도라전망대를 내려온다. 차창 너머 하늘을 보니 자유의 소중함이 솜이불같이 덮여온다.


통일촌을 지나 남방한계선을 넘는다. 캠프 보니파스에서 신분확인과 공동경비구역 내에 주의사항을 듣고 제공하는 차량으로 판문점을 향한다. 왠지 더 긴장감이 몰려온다. 이동하는 도로의 왼쪽에 대성동 마을이 보인다. 언젠가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본 깃대 높이기 경쟁이란 내용이 생각난다. 비무장지대에는 남북의 마을이 하나씩 있다. 그게 대성동과 기정동인데 각 마을에는 태극기와 인공기를 게양하는 깃대가 있다. 그런데 서로 지지 않으려고 높이를 두고 벌인 소모성 대결이 있었다 한다.
이동하는 동안 안내하는 경비대원의 설명이 있다. 캠프 보니파스의 이름은 1976년 8월 18일 북한군이 저지른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에 희생된 미군대위 보니파스의 이름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또한, 공동경비구역 경비대에 근무하는 군인들의 구호는 최전방에서(IN FRONT OF THEM ALL)이라 한다. 제일 가까운 거리에서 북한군과 만나는 곳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짧은 이동 거리지만 머릿속은 지난해 11월 공동경비구역을 통해 귀순한 북한 병사의 숨 가쁜 탈출 장면 동영상이 떠오른다. 그 현장의 긴박했던 공기를 느낄 수 있을까?


드디어 평화의 집을 보며 자유의 집에서 내린다. 사진으로 보았던 경비대원의 호위를 받으며 계단을 올라 판문점을 향한다. 자유의 집 앞에서 응시하는 판문점을 스치는 숨이 막히는 긴장감이 흩날리는 촉수 같은 머리카락에 잡혀 든다.


판문점은 동서 800m 남북 400m를 아우르는 공동경비구역 내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 감시위원단이 있는 곳으로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널문리에 속한다. 이곳 판문점의 건물은 남쪽 자유의 집과 북쪽 판문각 사이에 컨테이너 막사에 삼각형 지붕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파란색 지붕의 건물은 유엔 측, 회색 건물은 북한 측이 관리한다고 한다. 도끼 만행 이전에는 남북한 경비대가 자유롭게 오가는 곳이었으나 이 사건을 계기로 이 구역 내에도 군사분계선이 그어졌다고 한다. 


회담장 안으로 들어간다. 안에서 이동은 자유로우나 회담장 밖은 군사분계선이 있어 북쪽으로 갈 수 없다. 건물 바깥을 보니 가운데를 가로지는 폭 50㎝ 높이 5㎝의 시멘트 블록이 군사분계선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 초라한 곳에서 서로의 이념대립으로 빚어진 민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 휴전 협상이 있었고 수많은 사건으로 얼룩진 남북대결의 장소라니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검은 선글라스에 북쪽으로 난 문을 등지고 호위하는 경비대원의 모습을 보니 믿음직스럽다.


회담장을 나와 남쪽 자유의 집에서 자유를 향한 4분의 탈출이 있었던 쪽을 응시한다. 얼마나 자유가 그리워 72시간 다리를 차량으로 내달려 무차별 날아오는 총탄을 피하고 맞으며 군사분계선을 넘어 쓰러진 북한 병사. 그가 그린 자유는 무엇이었을까? 다시 고개를 서쪽으로 돌리자 평화의 집이 보인다. 그 바로 옆에 군사분계선이 지나는 사천강을 가로지르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있다. 한국전쟁 당시 포로 교환 장소로 한번 돌아서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 슬픈 기억과 분단의 눈물은 강물을 이루었을 것이다.


공동경비구역에서의 짧은 시간이 아쉽게 흐른다. 돌아서는 길. 공동경비구역을 지나는 바람은 긴장감과 아픔으로 어느 바람보다 더 차갑다. 월터 히치콕(Walter Hitchcock) 전 미 공군 대령이 남긴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말이 바람에 날아오르는 연처럼 생생하다.  이 공간에서 흐르는 분위기는 어제도 그랬을 것이다. 자석에 붙어 나오는 녹슨 쇠붙이 같은 분단의 아픈 기억들이 소름을 돋게 한다. 판문점을 뒤로 얼어붙은 겨울 하늘에 펄럭이는 대성동 마을의 태극기를 보며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생각한다. 그리고 남방한계선을 지나 서울이 가까워질수록 안심은 되는데 평화의 바람은 소금에 절인 배추 같다. 언제쯤 이 소원이 기쁨이 환희로 되살아날까? 짧은 겨울 낮에 노을이 꼬리를 감춘 서울의 밤은 서러운 불빛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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