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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어느새 2학기 생활기록부 마감 철이 다가왔다. 고등학교 담임들은 이맘때가 되면 가장 바쁘다. 무려 10개 항목에 달하는 생기부를 마감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율활동이나 진로활동, 봉사활동, 동아리활동 등은 아이들이 그동안 적어낸 감상문을 토대로 나름대로 정리해서 넣을 수 있다지만, 담임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바로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이다. 1년 동안 담임을 하면서 40명이 넘는 학생 개개인을 자세히 관찰한 누가기록을 근거로 적어도 일천자 정도를 써 줘야하는 것이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요즘은 대학 측에서 따로 추천서를 받지 않고 이것만 가지고 추천서를 대신하는 학교가 늘고 있다니 더욱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교사도 사람인지라 반 아이들 모두가 사랑스럽고 예뻐 보이지는 않는다. 자기 귀여움은 자기가 받는다는 옛 속담이 있듯이 언제 보아도 예뻐 보이는 아이들이 있다. 멀리에 있다가도 뛰어와 반갑게 인사하는 아이, 담임이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주변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줍는 아이, 단체 활동 때 앞장서서 솔선수범하는 아이, 지각이나 결석을 단 한 번도 하지 않고 교칙을 준수하는 아이, 항상 교복을 단정하게 입는 아이,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 이런 아이들의 종합의견은 규정된 글자 수를 초과할 정도로 아주 글이 술술 잘 써진다.

반면, 진짜 나쁜 학생들도 있다. 선생님이 볼 때만 하는 척하다가 선생님이 사라지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학생, 만만한 선생님 시간에는 온갖 핑계를 대고 수업에 의도적으로 빠지는 학생, 지각과 결석을 밥 먹듯이 하는 학생, 학교 규칙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멋대로 머리를 기르고 염색을 하고 교복을 마음대로 줄여서 입는 학생, 입만 열면 온갖 거짓말에다 조금만 혼내면 SNS에 인권침해라고 참소하는 글을 올리는 학생, 교실 바닥에 침이나 가래를 거침없이 뱉는 학생, 하지도 않은 체벌을 했다고 헛소문을 내 해당 선생님을 곤경에 빠뜨리는 학생......

이런 학생들의 종합의견을 쓰려면 정말 너무나 고통스럽다. 사실 그대로 쓰자니 그 학생의 장래가 걱정되고 거짓말로 쓰려니 양심에 가책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몇날 며칠을 고민하면서 단 한 줄도 쓰지 못할 때도 왕왕 있다. 이럴 때면 불성실하게 생활한 그 녀석들이 너무나 원망스럽다.

그러나 어쩌랴. 교사라는 직업이 수없이 인내하고 참으면서 그런 학생들을 교화하여 사람을 만드는 것이 그 본분인 것을. 그리하여 오늘도 나는 입술을 깨물고 다음과 같은 종합의견을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다.

위 학생은 학업에는 흥미가 좀 부족하지만 성격이 활달하고 명랑하여 주변에 친구가 많음. 특히 운동을 좋아하여 체육 시간에는 항상 급우들을 리드하며 즐거운 분위기를 만드는 재주가 있음. 장차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로 진출한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음.......

이러한 글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목하 고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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