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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교육 칼럼] 작별의 기술

우크라이나를 여행했다. 우크라이나 흑해 연안의 항구도시 오데사(Odessa)에서 문학문화교류 행사가 있었는데, 나도 발표자로 참석했다. 그 곳에 간 김에 나는 우크라이나의 소도시 '자포로제(Zaporozhye)’에 가 보기로 했다. 용병 코사크(Cossack)족이 만든 요새이며 군사·정치 공동체인 ‘시치(Sich)’가 있는 곳이다. 자포로제는 오데사에서 북동쪽으로 400km를 가야 한다. 내가 탄 기차는 느린 속도로, 시골 정거장에 30분씩 정차해 가면서, 15시간을 간다. 불편은 해도, 나는 차창 밖 우크라이나의 대평원과 시골 풍경들에 내 마음을 내어준다.


7월의 우크라이나 평원은 허허로울뿐 더러 아득히 넓다. 밀 베어낸 자리가 빚어내는 황금빛깔 무한 대평원이다. 더러 숲이 지나고, 강이 지나고, 아주 간간히 촌락들이 지나간다. 단조롭지만 그 단조로움이 이 풍경의 매력이다. 그런데 이 단조로움 사이로 정감 가득한 풍경이 나타난다. 해바라기밭이다. 그것은 풍경으로 치면 일대 사변(事變)이다. 그냥 해바라기밭이 아니었다. 끝도 한도 없이 펼쳐지는 해바라기밭이었다. 광대무변으로 펼쳐진 해바라기의 행렬을 보았다. 해를 바라보면서 피어 있는, 수만 해바라기 꽃의 군집이라니!


그런데 이 느낌은 무엇인가. 이 해바라기밭이 낯설지 않다. 도대체 지금의 이 강한 기시감(旣視感)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들 해바라기밭을 어디서 보았던가. 내 기억의 촉수들이 부지런히 움직인다. 아! 맞다! 영화 ‘해바라기(Sunflower)’가 있었다. 1980년대 초에 보았던 영화 ‘해바라기’! 바로 이 해바라기밭이, 바로 이 해바라기의 행렬이 그 영화에 있었다. 그래, 그때 영화 ‘해바라기’를 연민 가득 보았었지! 마음에 오래 남는 옛날 영화는, 아프게 헤어진 연인처럼, 영화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에 비를 내리게 한다. 영화 ‘해바라기’도 그렇다.

 

신혼부부인 안토니오(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분)와 지오반나(소피아 로렌 분)는 밀라노에서 평화롭게 산다. 결혼 며칠 후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진다. 남편 안토니오는 러시아 전선으로 징발된다. 젊은 아내는 불안한 기다림의 세월을 보내지만, 어느 날 남편의 전사 통지서를 받는다. 고통의 시간을 보내며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전쟁에 나간 군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안토니오는 돌아오지 않는다.


지오반나는 귀환 군인들을 찾아다니며 남편의 생사를 확인한다. 우여곡절 끝에 안토니오와 같은 부대에 있었던 군인을 찾는다. 남편은 죽음 직전에 눈 속으로 도망쳤다는 말을 듣는다. 지오반나는 남편의 생존을 본능적으로 믿는다. 그리고 멀고 먼 러시아로 그를 찾아간다.

 

우크라이나를 지나 모스크바까지 가는 그녀의 행로는 고달프다. 그녀가 지나가는 우크라이나의 대평원에는 해바라기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영화는 이 장면을 길게 이어가며 주제 음악을 잔잔하고 슬프게 깔아나간다. 묻고 물어서 모스크바 북쪽 변두리 이탈리아인들이 모여 살고 있다는 곳을 찾아간다.


그녀는 마침내 남편을 찾게 된다. 그러나 남편은 ‘마샤’라는 러시아 여인과 함께 살면서 아이까지 있다. 게다가 남편은 전쟁 후유증으로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다. 이 망연자실함은 또 어떻게 한단 말인가. 지오반나는 슬픔에 잠겨, 안토니오를 떠나 돌아온다. 작별의 장면을 연기한 명배우 소피아 로렌의 눈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돌아오는 길에도 해바라기는 무한대로 펼쳐져 있다. 이탈리아로 돌아온 지오반나는 남편을 잊기로 마음먹는다. 공장 일꾼 ‘에토’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민다. 이들 사이에서 아들이 하나 태어난다.


세월이 흐르고, 기억상실증에서 회복된 안토니오가 고향과 지오반나를 찾아온다. 지오반나는 충격과 번민으로 고통을 받는다. 안토니오는 이미 재혼을 한 지오반나와 재회한다. 두 사람은 말이 없다. 지오반나는 안토니오를 돌려보낸다. 안토니오는 발걸음을 돌린다. 말없이 운명의 작별을 하는 두 사람의 눈빛을 카메라는 오래 각인시킨다.

 

그것은 내가 열한 살 되던 해 오월쯤에 일어난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일은 너무도 무섭고 놀라운 일이었다. 마을 전체가 어떤 공포와 저주에 잠기는 분위기이었다. 60여 호의 마을은 농촌 마을이었다. 마을 입구 방앗간 옆 함석집에는 인근 A 중학교의 선생님 가족이 살고 있었다. 선생님은 테가 굵은 안경을 쓰셨는데, 점잖고 반듯하셨다. 아들만 둘이었는데, 큰아들은 8세, 작은아들은 6세이었다. 우리 형제와 함께 놀며 어울리곤 했었다.


그해 5월 어느 날, 저녁 해가 이울 무렵, 선생님의 집에 어떤 아주머니가 찾아오셨다. 집 안으로 들어간 이후, 선생님 집에서는 싸움소리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여자들 소리만 들렸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그 아주머니는 기차를 타고, 도시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 아주머니가 갔다고 해서 조용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날 저녁에는 선생님 내와간에 말싸움이 오래도록 벌어졌다. 이 싸움 역시 부인의 목소리만 높았고, 선생님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 집 아들들도 좀체 집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사흘 후, 예의 그 아주머니가 선생님의 집에 또 나타났다. 선생님이 퇴근해서 들어오자, 또 싸움이 시작됐다. 역시 두 여자의 목소리는 높고, 선생님의 목소리는 조금도 들리지 않았다. 밤새 싸움 소리가 불규칙하게 흘러나왔다. 그리고 아침 일찍 그 아주머니는 기차를 타고 가버
렸다. 그날 밤에는 선생님 부부가 싸움을 하는 것도 이전과 꼭 같았다. 부인의 목소리만 높고, 선생님은 묵묵부답으로 응하는 것도 꼭 같았다.


이런 일은 그 아주머니가 올 때마다 3, 4일 간격으로 반복됐다. 마을 사람들의 수군거림도 더 많아졌다. 6월 중순경 어느 날 아침, 자고 일어나 보니 동네가 발칵 뒤집어졌다. 선생님 내외가 극약을 먹고 자살을 했고, 아침에 주검이 발견됐다. 아들이 울면서 소리쳐 이웃에 알렸다. 동네에 상여 두 대가 나란히 나가던 날,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혀를 차면서, 슬픔과 연민으로 선생님 내외를 보냈다. 어린 아들들은 보육원으로 보내졌다.

 

사연은 이러했다. 선생님은 이북에서 살다가 6.25 전에 남한으로 오셨다. 북에서 결혼하여 부인이 있었는데, 먼저 남한에 자리를 잡고 이내 곧 데리러 오겠다고 했단다. 6.25 전이므로 그게 가능했던 때였다.


그러나 6.25가 터졌다. 이후는 북으로 돌아가는 길이 완전히 불가능했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어쩔 수 없이 남한에서 다시 결혼을 하였다. 아마도 자기 생애에 북의 부인을 다시 만나기가 어렵다고 생각했겠지. 실제로 현실이 그러했으니까.


그런데 북에 있던 부인도 6.25 전쟁 중에 온갖 어려움을 뚫고 남으로 넘어왔다. 오로지 ‘남편 상봉’ 일념만으로 온 것이다. 통신과 정보가 원활치 못한 시절, 남편을 찾아 전국을 헤맨 지 10년, 천신만고 끝에 찾아온 남편이 바로 우리 마을에 사는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지난 한 달간 이 집에서 벌어진 일의 연유를 이제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해바라기’의 여주인공이 더 딱한가. 남편 잃은 아주머니가 더 딱한가. 꼬이고 꼬인 인생의 상처와 참을 수 없는 ‘부조리의 인연’이 가슴을 먹먹하게 울리기도 하고, 형용할 수 없는 분노를 상승하게도 한다. 둘 다 ‘절대 아픔’에 도달한 것들이다. 어느 것이 더 딱하다고 견주는 일 자체가 의미 없다.


서럽고 안타까운, 그래서 한이 맺힌 인생을 대면하면, 나를 어떻게 결정해야 할까. 그때의 ‘나’는 운명이라는 것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나. 자아가 운명 바깥에서 운명과 싸운다고 생각하는 것도 운명이다. 그 반대로, 운명 안에서 운명에 순종하는 자아, 그것도 운명이다. 운명과 싸우면 의지가 있고, 운명에 순종하면 의지가 없는가. 때로는 순종에 더 큰 의지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절대 아픔의 자리에서는 ‘나’가 ‘운명 그 자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운명이 가해 오는 작별, 이런 작별일수록 기술(skill)이 필요하다. 그것으로 인하여 더 가혹하게 우리의 삶과 정신이 망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것으로 인하여 안으로 성숙의 벽돌 하나를 더 쌓기 위해서 ‘작별의 기술’이 필요하다. 최상의 기술은 반드시 그 안에 덕성(virtue)을 품는다. 그냥 테크닉(technic)만으로 되어 있는 기술은 언제나 이류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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