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긴다는 보장이 있으면 진행하겠습니다. 이길 수 있나요?” “이길 확률이 몇 %나 될까요?” 의뢰인과 상담할 때 가장 답하기 난처하고 곤혹스러운 질문은 필자가 모르는 법리나 법 조항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이 같은 질문이다. 지는 싸움을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 소송에서 패소했을 때 입는 경제적, 심리적 타격은 상당하기에 사람들은 승소의 확신을 가지고 소송을 진행하고 싶어 한다.
의뢰인이 그동안의 경과, 학교의 부당함, 우리 애의 억울함을 실컷 얘기하고 묻는 것은 한결같이 이길 수 있는지, 이길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다. 알파고는 내부적으로 한수 한수 둘 때마다 실시간으로 승률이 표시된다고 한다. 그런데 소송은 그 자체가 누구 주장이 맞는지를 확인하는 절차이고, 상대방 특히, 학교가 아무런 근거가 없는데 괜히 그러한 조치를 할 리 만무하므로 소송을 진행하기 전에 그 결과 혹은 승률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구나 소송을 하다 보면 승소를 확신했는데 지기도 하고, 질 것 같았는데 승소의 기쁨을 누리는 일도 종종 있다. 그러기에 필자에게 의뢰인이 “이길 수 있냐, 이길 확률이 얼마냐”고 물으면 “누구 주장이 맞는지 알아보는 절차가 소송입니다.”, “그걸 알아보기 위해 소송을 하는 것입니다.”라고 답한다.
소송의 결과를 예측하기 더 어려운 이유는 같은 쟁점에 대해서도 법원의 판단이 각각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결은 하급심 법원을 구속하나 하급심 법원의 판결은 서로 참고만 할 뿐이다. 따라서 서로 충돌하는 하급심 법원 판결도 많다. 다음은 서로 상반된 결정을 한 학교폭력 관련 판결을 살펴보자.
입학 전에 한 학교폭력을 징계할 수 “있다 vs 없다”
고등학생에게 중학생 때 한 행위 또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직전에 한 행위를 학교폭력으로 보아 징계할 수 있을까? 교육부와 교육청은 입학 전의 행위도 학교폭력으로 보아 징계할 수 있다고 한다. 이에 졸업 후 입학 전에 발생한 사안은 입학하기 전이라면 졸업한 학교에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개최하고(졸업했다고 하더라도 2월 말까지는 해당 학교의 학생이다), 입학한 후라면 입학한 학교에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개최하여야 한다고 해석한다. 이러한 쟁점 사안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과 대구고등법원은 다음과 같이 상반된 결정을 하였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17카합80664 사건에서 “이 사건 전학처분은 채권자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저지른 행위로서 애초에 징계사유가 될 수 없는 사유를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므로 그 자체로 위법하다는 점도 지적하여 둔다”는 내용으로 입학 전의 행위를 징계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판시하였다.
그런데 대구고등법원은 2018누2620 판결에서 “①학교폭력예방법 제2조 제1호는 학교 외에서 발생한 학생에 대한 상해, 폭행 등의 행위도 학교폭력에 포함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학교폭력예방법상 학교폭력의 발생 시점이나 징계 시점을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아니한 점, ②학교폭력으로 인한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에 관해서는 그 조치권의 행사를 제한하는 제척기간이나 공소시효 등에 관한 규정도 존재하지 않는 점, ③가해학생에 대한 조치의 궁극적인 목적은 피해학생의 보호와 가해학생의 선도·교육에 있는 것이고(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 제1항), 학교폭력 발생 이후에 상급학교에 진학하였다고 해서 위와 같은 피해학생의 보호 및 가해학생의 선도·교육의 필요성이 소멸한다고 볼 수 없는 점, ④원고 주장대로라면, 중학교 졸업 무렵에 발생한 학교폭력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채로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상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가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어 법 적용의 사각지대가 발생하게 되는 점을 각각 들었다. 이를 종합해 학교폭력이 중학교 재학 중에 발생한 경우에도 당해 가해학생이 소속된 고등학교장은 가해학생에 대하여 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에 따라 소정의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며 입학 전의 행위라도 상급학교의 장이 징계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대구고등법원이 서울중앙지방법원보다 상급법원이며, 나중에 판시한 최신 판결이라는 점에서 징계가 가능하다는 논거가 조금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 개 모두 하급심 법원의 판결이므로 대법원 판결이 있기 전까지는 다툼의 소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보호자 간의 감정싸움은 학생에 대한 징계 양정의 고려사유가 “된다 vs 안된다”
대부분의 학교폭력 사안은 보호자들 간 감정싸움에서 시작된다. 가해학생 보호자가 깔끔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면 쉽게 끝날 수 있는 일인데, “우리 애도 억울하다. 그쪽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 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개최, 형사고소, 민사소송, 행정소송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개최되어 가해학생의 조치를 결정할 때 보호자끼리의 감정싸움 또는 갈등이 징계양정의 고려사유가 되는지에 대해서도 상반된 판결이 있다.
서울행정법원 2015구합71358 판결은 “원고와 ○○○의 각 부모는, ○○○의 모친이 2014년 11월 27일 학교 교실에서 원고 등을 야단친 것과 원고의 모친이 이를 문제 삼으며 ○○○의 모친에게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각서를 요구하고 협박죄로 형사고소하려 했다는 사실 때문에 서로 감정이 상하여 화해를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바, 사건의 본질에서 벗어난 학부모 간의 갈등이 원고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여서는 아니 되는 점”을 재량권 일탈·남용의 근거로 들었다. 그러면서 원고가 받은 1, 2, 5호 처분 중 2, 5호 처분을 취소하였다(이외에도 재량권 일탈·남용 사유가 더 있었음).
그러나 서울행정법원 2015구합76957 판결은 “원고와 원고의 부모는 피해자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거나 원만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등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아니라 목격한 학생에게 유리한 진술을 부탁하고 피해자를 먼저 고소하는 등 현명하지 못한 비교육적·감정적 대처로 사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고 판시하면서 원고가 받은 전학처분이 타당하다고 결정하였다.
보호자 간의 갈등은「학교폭력 가해학생 조치별 적용 세부기준」의 ‘가해학생의 반성 정도’, ‘가해학생의 화해 정도’에서 고려할 수 있는 요소이나, 사건의 본질에서 벗어난 학부모 간의 갈등은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 수준에 고려하면 안 된다는 것이 위 판결들의 취지이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본질적인 부분인지, 본질에서 벗어난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어려운 문제이다.
SNS 단체 대화방 험담은 학교폭력이 “된다 vs 안된다”
SNS 단체 대화방 내에서 다른 학생을 험담하거나 성희롱하여 학교폭력으로 문제 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초·중등학교뿐 아니라 대학교, 회사에서도 문제가 되며 최근에는 언론 기자들 단체 대화방도 문제가 되었다. 이에 대해서 법원은 대화방에 참여한 숫자, 구성원들의 관계, 자유롭게 대화방에 참여할 수 있었는지를 가지고 학교폭력 여부를 판단한다. 즉, 앞에 소개한 상반된 사례와 달리 이는 명확한 기준이 존재한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17가합544674 판결은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 내에서의 이 사건 대화 내용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원고 등의 대화는 전체적으로 ○○○과의 관계에서 발생한 불만 등을 토로하는 내용에 해당하고, 이러한 대화 과정에서 욕설이나 부적절한 표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욕설 중 상당 부분은 원고 또는 □□□이 스스로에 대하여 자조적으로 내뱉은 것에 불과하며, ○○○과 관련된 부분 또한 ○○○에게 직접 심리적, 정신적 피해를 가하기 위한 공격이 아니라, 위와 같은 비난이나 욕설이 ○○○에게 도달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하여 ○○○을 제외한 채팅방 구성원 사이에서 내부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대화 자체를 쉽사리 학교폭력예방법에서 규정한 사이버 따돌림 등 학교폭력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하여 소수가 참여한 대화방에서의 욕설이나 험담은 학교폭력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정하였다.
그에 반해 서울행정법원 2018구합84607 판결은 “원고 ○○○은 이 사건 채팅방에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피해자의 사진을 편집하여 수차례 무단게시하고, 피해자의 외모를 비하하였으며, 모텔 사장인 피해자가 콘돔을 많이 준다는 등 성적으로 비하하는 표현을 사용하였는 바, 당시 이 사건 채팅방에 피해자가 없었다 하더라도 불특정 다수의 동급생들이 가입해 있는 위 채팅방의 성격 및 회원 규모 등에 비추어 볼 때 소수의 회원 사이에서의 폐쇄적인 온라인 공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피해자에 대한 전파 가능성이 현저하고, 원고 ○○○으로서도 위 채팅방에서 발언하면서 위 발언 내용을 피해자가 알 수도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였을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위와 같은 채팅 내용이 피해자에게 알려져 피해자는 자살 충동을 호소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 등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 따라서 원고 ○○○의 행위가 반드시 피해자의 면전에서 이뤄진 직접적 가해행위가 아니더라도 피해자에게 전달될 것을 예견할 수 있었고 실제로 전달되어 피해자의 정신적 피해를 수반한 이상, 위 행위는 단순한 ‘뒷담화’ 정도에 그치지 않고 피해자에 대한 모욕으로서 학교폭력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하여 반 단체 대화방에서 특정 학생을 비하하고 험담한 것은 학교폭력에 해당한다고 결정하였다.
어떠한 행위가 학교폭력에 해당하는지, 해당 조치가 과한지 적정한지, 절차적 위법이 존재하는지는 명확한 기준이 없으며 그때그때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한다. 즉,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결정이 타당한지는 계량화되고 객관화된 수치로 표현할 수 없고 결국은 판단자의 주관과 상식, 경험에 의해서 규범적으로 결정하기에 정답은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아직까지는 변호사, 판사를 알파고가 대체할 수는 없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