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이후의 법치국가는 국민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제정한 법에 따라 운영된다. 학교 역시 작은 사회이기 때문에 법에 따라 운영되며, 학교의 법이 학교규칙(이하 ‘학칙’이라고 함)이다. 학교규칙의 기본적인 사항은「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9조 제1항에 열거되어 있으며, ‘학교운영에 관한 사항’과 ‘학생생활에 관한 사항’으로 구성된다.
‘학교운영에 관한 사항’은 관계법령 및 별도 지침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학교에서 독자적으로 정하는데 제약이 따르지만, ‘학생생활에 관한 사항’은 학생·학부모·교원 등의 의견을 수렴하여 학교별로 법령의 범위에서 정할 수 있다. 특히 ‘학생 생활에 관한 사항’은 생활지도의 근거가 되며, 학교폭력·아동학대(체벌)·학교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교사의 책임 소재를 판단하는 일차적 기준이 될 수 있으므로 신중하고 체계적으로 제정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교는 과거 학칙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서 상위법에 부합하지 않거나, 현재의 시대상과 맞지 않는 학칙을 가지고 있다. 실제 학칙을 예시로 하여 문제가 될 수 있어 개정이 필요한 사항을 살펴보자.
1. 학급규칙
원활한 학급운영과 학생·교사의 소통, 민주적 교실을 위해서 학급규칙을 제정하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 2017년 5월 교육부 누리집에 게시된 <우리 학급의 비밀병기 ‘교실 속 규칙’>에는 학급규칙을 만들어 실천하고 있는 교사를 소개하고 있다. ○○중학교의 어느 학급은 다음과 같은 학급규칙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중학교의 학교규정집에는 학급규칙에 관한 근거가 전혀 없다. 위 학급규칙은 법적효력(구속력)이 없는 담임교사와 학생들 사이의 약속에 불과하며 학칙의 효력을 가지지 못한다. 학급규칙의 효력에 관하여 법적 다툼을 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겠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므로 절차와 규정을 지켜서 나쁠 것은 없다. ○○중학교 학칙 제40조는 다음과 같다.
○○중학교 학칙 제40조 제4항에 ‘담임교사는 학생·보호자와 협의하여 학급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라는 규정을 넣어둔다면 위 학급의 학급규칙은 학칙의 세부규정이 되어 학칙과 동등한 효력을 갖게 될 것이다.
2. 징계 전력과 학생회 임원 자격 제한
많은 학교가 징계를 받은 전력을 학생회 임원 선거의 피선거권 제한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위 학교들은 모두 징계받은 전력 또는 벌점을 학생회 임원의 결격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ㅁ고등학교는 벌점·징계 이외에 성적을 학생회 임원 자격으로 규정하고 있다. 어떤 학생이 임원으로 선출된 이후 징계를 받아 임원에서 해임되었거나, 임원을 하려는데 결격사유가 있어 출마를 못 한다면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위 학교들을 상대로 소송이 제기된다면 ㄱ고와 ㅎ고는 학교가 패소할 확률이 높다.
제한의 정도는 ㅁ고등학교가 가장 강력하고, ㅎ고와 비슷한데 왜 ㄱ고와 ㅎ고가 패소할 확률이 높을까? 답은 학생인권조례에 있다. 서울·경기·광주·전라북도는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어 시행 중인데, 서울과 전라북도 학생인권조례는 다음과 같은 조항이 있다.
학생인권조례의 효력이나 정당성은 별론으로 하고 학칙보다는 조례가 상위법임에는 틀림없다. 따라서 조례를 위반한 학칙은 무효이다. 이에 서울과 전라북도의 학교가 징계 전력을 학생회 임원의 제한 사유로 삼는다면 소송에서 패소할 확률이 높은 것이다. ㅁ고등학교가 있는 강원도는 학생인권조례는 없지만, 소송이 제기된다면 역시 패소할 확률이 높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2년 다음과 같이 결정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징계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임원의 자격을 박탈하고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은 이중처벌의 소지가 있으며, 경미한 징계를 받았다는 이유로 자격 자체를 박탈하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징계를 임원 자격 제한 사유로 삼으려면 경중에 차이를 두어야 타당성을 갖출 수 있다. 특히 징계와 별도로 성적을 자격 제한 사유로 삼는 것은 헌법 제11조에 반하므로 성적이 저조하다는 것을 학생회 임원의 자격 제한 사유로 삼는 것은 결코 인정될 수 없다. 이에 모든 징계와 벌점, 성적을 학생회 임원의 제한 사유로 삼는 것은 지나친 제한으로 볼 수 있어서 소송이 제기된다면 패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서울 ㅅ중학교 학칙이 매우 합리적으로 규정되어 있어 학칙 개정 시 참고할만하다.
3.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및 교권보호위원회 운영 규정
지난 2019년「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과「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이 개정되었다. 법률 개정으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는 폐지되고 교육지원청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로 이관되며, 학교교권보호위원회가 교육활동침해행위(교권침해)에 대하여 (기간 제한이 없는) 출석정지·학급교체·전학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
법률 개정과 함께 학칙도 개정되어야 한다. 교육청은 학교폭력에 관해서는 학칙에 별도로 규정을 두지 말고 생활규정에 ‘학교폭력에 관한 사항은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및 같은 법 시행령, 관련 지침에 따른다’고만 규정하라고 안내하였는데, 아직도 많은 학교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운영규정’과 같은 학칙을 가지고 있다. 학교폭력에 관련된 세부 규정이 있는 학교들은 이를 개정하거나 폐지하여 학칙이 개정된 법률을 위반하지 않아야 한다.
종전까지는 교육활동침해행위는 선도위원회(생활교육위원회)에서 심의하여 징계하는데 개정된 교원지위법은 학생징계를 학교교권보호위원회 심의사항으로 규정하였다. 따라서 학교는 생활규정을 개정하여, ①모든 교육활동침해행위를 학교교권보호위원회 심의사항으로 규정하여 일반징계 사항과 교육활동침해 사항의 징계절차를 이원화를 하던가, ②종전과 같이 선도위원회가 심의하고 (기간 제한이 없는) 출석정지·학급교체·전학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선도위원회가 학교교권보호위원회로 이송할 수 있다.
2020학년도에는 학칙을 꼼꼼히 개정하여, 상위법에 어긋나거나 구시대적인 조항은 폐지하고, 우리 학교만의 특색있는 학칙을 제정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