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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체험의 재발견

01

소년기의 체험 중에 뒤에까지 영향을 끼치며, 나의 전인(全人)을 발달시켜 준 것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와 함께 8㎞ 떨어진 구미 장에 염소를 팔러 갔다. 아버지는 가난한 시골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그 무렵은 나라도 몹시 가난하여 선생님 봉급을 곡식으로 주었다. 집에서 새끼로 낳아 기르던 염소가 자라자, 돈을 마련하려고 염소 두 마리를 팔러 갔다. 한 마리는 아버지가, 다른 한 마리는 내가 끌고서, 이십리 들판을 걸어서 갔다.

 

사람에게 이끌려 가는 염소 중에 고분고분한 염소는 없다. 얼마나 뻗쳐대며 머리를 다른 방향으로 가져가는지, 한 걸음도 순하게 따라오지 않는다. 나는 염소의 본성을 온몸으로 배웠다. 첫째, 둘째, 셋째… 하며, 책에 정리된 지식으로 학습한 것이 아니었다. 몸으로 배운 것이다. 염소 본성이 무엇이더냐? 누가 물으면 정리된 언어로 말하기는 어려워도, 나는 안다. 내 몸이 이미 염소의 성질을 알아버렸다.

 

그날 4학년짜리 나는 충격을 받았다. 염소 팔러 장에 간 아버지께서 시장바닥 장사꾼들의 농간에 속수무책 어리숙한 모습으로 당하신 것이었다. 학교에서 인자함과 위엄을 보이시고, 특히 마을에서는 주민들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으셨던 아버지 아닌가(1960년대 농촌 학교와 마을은 대개 그러했다). 그러나 여기 구미 장터는 완전 타지이다. 행정 구역상 군(郡)이 다르다. 아버지를 선생님인 줄 아는 사람도 없다.

 

닳고 닳은 장사꾼들과 거간들은 생전 처음 염소 두 마리 팔아보려고 장에 온 아버지를 으름장으로 가격을 후려치거나, 거칠게 놀려대는 언사로 건드렸다. 아버지는 시종 공손한 언어로 대응했는데, 그게 더 그들의 심술을 키우는 듯했다. 어린 내 눈에도 아버지의 곤경이 보였다. 나의 충격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아버지의 ‘위대한 능력(?)’에 대한 믿음이 무너진 것이었다. 이 경험은 나에게 사회화(socialization) 학습을 한순간에 하도록 했다.

 

다른 하나는 이른바 장사꾼 어른들의 벌거벗은 욕망과 거친 언어에 충격을 받았다. 나 역시 온실에서 자란, 세상 체험의 면역이 전혀 없는 소년, 어리숙한 시골 선생의 아들이었으므로 충격이 컸다. 나는 그날 세상 밖으로 나와서 세상의 매운맛을 혹독하게 보았다. 내 안에 만들어진 윤리적 갈등은, 그 자체가 학습이었다. 어른 공경하라고 배웠는데, 아 저런 어른들을 어찌 내가 공경해야 한단 말인가. 뒷날 시장의 기능과 자본이 부추기는 욕망, 그리고 상행위(商行爲)의 윤리 등을 배울 때, 나는 이미 아는 것이 많았다. 체험의 은덕이라고나 할까. 그때 그 체험을 감당했던 몸이 나를 일깨워 학습으로 인도하였다.

 

그날 아버지와 나는 늦도록 염소를 팔지 못해 고생했다. 시장바닥 장사꾼, 그들이 만들어 놓은 덫에 걸려든 것이었다. 해가 넘어갈 무렵에야 간신히 팔았다. 아니 그들에게 싼 가격으로 넘겨버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와 나는 어두워지는 들판 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말씀이 없으셨다. 분하고 억울하고 우울한 체험이었다.

 

나는 이 체험에서, 내가 학습한 것 모두를 설명할 수는 없다.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의식 아래로 잠긴 것도 있을 것이다. 사실 뭘 학습했는지 나 자신도 그 전부를 모른다. 그러나 그 학습은 두고두고 나를 다른 학습의 영토로 이끌어 갔을 것이다. 장터에서 나의 의식은 초롱초롱 살아있었다. 나는 강한 주체로서 현장에 있었다. 체험이란 그러하다.

 

6학년이 되어서는 더 극적이고 격렬한 체험이 있었다. 우리 학급에서 기르던 100근 정도의 돼지를 학교 안 돼지우리에서 도난당했다. 아침에 당번 학생이 먹이를 주러 돼지우리에 갔는데, 문이 부서져 있고, 돼지는 없었다. 밤새 비가 온 탓인지 숙직 선생님도 눈치를 채지 못했단다. 누군가 훔쳐 간 것이다.

 

그날 우리는 수업을 제대로 못 했다. 남자아이들 20여 명은 학교에서 12㎞ 떨어진 ‘해평’이란 곳으로 갔다. 나도 갔었다. 그날 해평에서는 5일장이 섰다. 도둑이 해평 장터에 돼지를 팔려고 올 것이다. 집단 지성이랄까. 나름의 중지를 모아서 간 것이다. 우리는 마침내 해평 장터에서 우리의 돼지를 찾았다. 도둑은 돼지를 버리고 사라졌다. 찾은 돼지와 함께 우리는 비가 부슬거리는 길을 걸어 학교로 돌아왔다. 왕복 60리를 걸었지만, 지친 기색도 없었다. 우리는 개선장군으로 돌아왔다.

 

참으로 엄청난 체험을 했다. 지식 체험은 물론, 정서·사회성·도덕성·인성 등이 동시 학습의 기제로 나의 체험 안에서 발효되었으리라. 체험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 체험에서 내가 학습한 것은 무엇일까. 이걸 제대로 분석해 볼 수 있을까. 분석으로 쉽게 파악될 성질의 학습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분석의 방법은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상당한 양과 질의 학습이 이루어졌으리라. 지금도 울림과 떨림이 있는 체험으로 남아 있다. 그 학습은 이후 나의 배움에 어떤 동력으로 작용했을까.

 

02

근대 ‘이성의 시대’에 지식은, 논리화되고 개념화된 이른바 ‘과학으로서의 지식’이어야 했다. 학교는 바로 그 지식을 가르치는 데에 힘을 다했다. 그리고 그 지식은 언어적으로 정제된 기술(記述) 방식을 가지고 학문의 체계에 녹아들었다. 지식 능력이 언어 능력과 비례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이런 지식 토양 위에서 학교 교육은 근대의 ‘합리성’을 강화하였다. ‘합리성’이란 이성에 부합하는 정신과 지식을 표상하는 개념 아니겠는가.

 

학문의 체계를 갖춘 ‘분과 학문(분과 지식)’이 ‘학교 교육의 내용(curriculum content)’으로 굳건한 자리를 점해 왔다. 근대를 보내고 탈근대의 담론이 무성하지만, 학교 교육을 둘러싼 지식 문화의 유전자는 이런 분과 지식을 표준형으로 한다. 그 문화 유전자는 지금도 강하게 남아 있다. 극단의 경우, ‘언어로는 아는데 실제로는 잘 모르는 앎’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런 입지에서는 일상의 경험이나 체험이 이들 지식과 맞먹는 위상을 가지기란 쉽지 않다. 체험 자체를 전통의 지식과 맞먹는 자격으로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근래에 와서이다. 더구나 앎의 선험성(先驗性) 즉, 직접 경험을 하지 않고도 본능적으로 또는 이전에 들은 기억으로 앎이 생성된다는 관점과 마주칠 때, 체험은 더욱 왜소해지고 위축된다.

 

지식에도 문화가 있다. 무엇을 지식으로 볼 것인가. 어떤 지식은 가치 있는 지식이고, 어떤 지식은 가치가 부족한가. 지식을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 등에 대해서 한 국가나 사회가 일정하게 공유하고 있는 인식이나 태도가 ‘지식 문화’이다. 예컨대 체험에서 얻은 앎은 정제된 지식으로 개념화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널리 받아들여지면, 이는 곧 그 나라의 지식 문화에 해당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체험에서 얻은 앎도 충분히 논리화·개념화할 수 있다는 인식을 한 사회가 널리 공유하고 있다면, 이 또한 일종의 지식 문화에 해당한다.

 

우리의 지식 전통은 어떠한가. 지식이 진리를 표상하는 역할을 하고, 이치의 이상을 담을 때, 높은 수준의 지식이라고 인식하지 않았던가. 몸으로 하는 것은 선비들의 일이 아니고, 아랫것들에게 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 그런 지식관의 전형이다. 그래서 지식을 인식하는 태도에서 ‘체험’을 지식으로 보지 않고, 지식을 구성하는 하위의 재료 정도로 보려 했다.

 

조선 후기에 성리학에 대한 대척의 위상에 있던 실학이 구박받는 학문으로 있었던 것도, 경험 실체를 지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당시의 지식 문화 때문이었다. 우리가 세계사의 흐름에서 제대로 근대를 각성하기도 전에, 조금 앞서 근대를 섭렵한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 것은 ‘경험의 과학’을 우리의 지식 전통이 받아들이지 못한 탓이라고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융합과 창의를 강조하는 시대이다. 목표의 융합, 학습의 융합, 사고의 융합, 교과의 융합 등이 시대의 구호처럼 들려온다. 지금의 교육과정이 강조하는 ‘역량’이란 개념도 학생의 융합된 능력이 그가 실제로 발휘하는 능력임을 강조한 것 아닌가.

 

융합의 프로세스가 가장 강한 ‘배움의 방법(학습법)’은 무엇인가. 나는 ‘체험’이라고 말하고 싶다. 체험에 관여하는 모든 지각 작용과 인지적·정의적 전략과 반응들은 분절하여 늘어놓을 수가 없다. 해체할 수 없을 정도로 다채롭고 복합적이다. 고도의 융합적 프로세스이기 때문이다. 그 융합의 프로세스를 언어적 기술(記述)로 완전 복기(復棋)하기도 어렵다.

 

체험학습은 무성한데, 체험 연구는 없다. 체험이 어떤 학습 프로세스를 동반하는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우선 ‘지식으로서의 체험’을 깊이 구명하고, ‘체험의 지식 상관성’을 폭넓게 연구해야 한다. 교육은 ‘체험’을 일반상식의 레벨에서 다루어서는 안 된다. 전문성 담론으로 탐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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