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과를 마치고 퇴근한 B 교사는 ‘오늘은 뭘 할까’ 생각한다. 보통은 지쳐서 집에 오면 쉴 시간도 부족하다. 그런데 막상 정해진 일이 없어 TV를 보는 오늘 같은 날에는 동학년 단톡방이나 전국구 밴드에 올라오는 다른 교사들의 퇴근 후 행적에 눈이 간다. 이 순간에도 많은 교사가 끊임없이 뭔가를 배운다. 누군가는 대학원을 가고, 누군가는 원데이 클래스에 가고, 누군가는 책을 읽어 인증한다. 어딘가를 가지 않는 사람은 그 주에 수업할 교재개발연구를 하나 보다. 나만 이렇게 하루를 보내도 되는 걸까?
어느새 교사 카페에 글을 쓰고 있다. “선생님들은 무엇으로 자기계발을 하세요?” 쓰고 나니 한결 낫다. 그래도 다른 교사들은 어떤 자기계발을 하고 있는지 물었으니, 나의 자기계발을 위해서도 뭐라도 한 게 아닐까.
왜 나는 나를 쉬지 못 하게 하는가
필자는 현직 교사들과 함께 ‘해보고 싶었지만 해보지 못했던’ 일을 실행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 일의 종류는 다양하다. 미술치료사 공부, 동화작법 공부, 책 쓰기 등. 각자 마음은 있었지만 실행해보지 못했던 꿈들이다. 프로젝트는 3주간 진행된다. 1일 차에는 ‘진짜 나를 발견하는 10문 10답’이라는 설문지를 작성하며 자신을 되돌아본다. 그 후에는 지금껏 그 일에 도전하지 못하게 막았던 마음의 장애물을 확인하고 먼저 그 길을 개척한 롤모델을 선정한 후, 그 일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준비물과 단계를 알아보며 자신을 위한 커리큘럼을 직접 짠다. 필자는 내면·시간·공간 등 참가자가 자신이 가진 자원에 최대한 집중하고 관찰하며 가능성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매일 다른 미션을 제공한다. 이 미션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미션이 있다. 바로 ‘쉬는 날 푹 쉬기’이다.
커리큘럼이 진행되면서 참가자들은 성실함과 인내가 결과를 만드는 데 아주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3주간 직접 실행해보면 더 실감난다. 학교 일을 하는 것만도 힘든데 매일 자아실현을 위한 미션을 수행하고 수행과정과 결과, 자신의 감정 상태를 적어야 하므로 자신의 한계와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어렵게 쌓은 습관일수록 소중하다. 그러다 보니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매일’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진다. 그래야만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 같고, 이 작은 일도 매일 하지 못하면 내가 이루고 싶은 그 큰 소망은 이룰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망감이 엄습한다. 참가자가 2주 넘도록 매일 성실하게 수행하며 고삐를 조이고 있을 때, 탁. 15일차, ‘오늘은 그냥 쉬기’라는 미션을 준다. 그러면 모처럼 생긴 여유에 참가자들이 기분 좋게 푹~ 쉴 것 같지만, 생각보다 그렇지 않다. 어제까지 마치기로 자기 자신과 약속했는데 마치지 못한 미션이 머릿속에 맴돌고 하루 쉬면 애써 만든 성실함에 균열이 생기는 것 같은 불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선생님은 자신의 일지에 솔직하게 적었다. ‘왜 나는 나를 쉬지 못 하게 하는가?’
달려야 제자리인 세상
학교 일이 바빠 쉴 시간도 없다고 느끼던 B 교사가 막상 여유 있는 날에는 교사 커뮤니티를 들락날락하고 다른 교사의 SNS를 기웃거리며 자신과 비교하는 심리의 기저에는 ‘머물러 있으면 도태된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는 달려도 달려도 제자리인 것만 같다고 느끼는 엘리스가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달렸으면 어디론가 가게 되는데 이상하다”고 하자 붉은 여왕이 “‘여기’에서는 계속 같은 곳에 있으려면 쉬지 않고 달려야 해. 다른 곳으로 가고 싶으면 그보다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하고!”라며 대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끊임없이 달려야 겨우 도태되지 않는 수준이고, 남들보다 두 배는 빨리 달려야 진전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현상. 이것을 레드 퀸 효과라 한다. 엘리스는 이상한 나라에서 느낀 점을, 우리는 지금 현실에서 느끼고 있다.
자기계발 프로젝트에 참가 중인 교사가 왜 시간이 있어도 마음 편히 쉬지를 못하는지,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 이유는 적절히 쉼을 선택하는 여유도 자기계발에 포함되는 과정이라는 사실이 낯설기 때문이다.
일의 성공적인 완수 안에는 ‘일’과 ‘쉼’의 반복과 리듬이 있게 마련인데, 흔히 일은 그 자체로 훌륭한 것이며 고독하게 진격해나가야만 완성되는 것이라는 오개념이 있다. 학창시절에 원 없이 쉬어보지 않고, 스스로 쉼을 선택해본 경험 없이 공부라는 일만을 강요받아 온 습성이 성인이 되어서도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쉼이 주는 해방감, 그 해방감이 맘 편히 머물다간 자리에 남은 에너지가 다시 일어설 힘이 되고,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는 경험이 부족한 어른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끊임없이 공부를 ‘해라, 해라, 해라’하고 결과를 ‘내라, 내라, 내라’ 한다. 그렇게 말하는 교사 자신도 역시나 끊임없이 자신을 ‘하얗게 불태운다.’ 그리고 따라오는 허무함과 체력고갈에 파묻혀 말한다. ‘번아웃이 왔다’고. 사실은 번아웃이 온 게 아니라 자기가 자신을 태운 것이다.
나는 혹시 성과주의의 노예인가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우리 사회는 ‘할 수 있다’는 긍정이 넘쳐 과잉긍정상태가 되어 끊임없이 자신을 성과를 향한 압박으로 내모는 피로사회라 말했다. 그리고 관련 원고인 <우울사회>에서는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과 경쟁하면서 끝없이 자기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강박,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추월해야 한다는 파괴적 강박 속에 빠지는 것이다. 자유를 가장한 이러한 자기 강요는 파국으로 끝날 뿐이다’고 했다. 성공했다는 사람 중에는 ‘할 수 있다!’는 자기최면이 자신도 모르는 가능성을 일깨워주었다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끝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는, 숨겨진 평범한 인생은 어떻게 보듬어질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사례나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더군다나 학창시절에 IMF를 겪으며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를 외치는 사회에 살았고, 꽤 공부를 열심히 했으며 웬만큼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고, 끊임없이 ‘할 수 있다’를 외치며 입시경쟁이 치열한 교대나 사대에 들어왔던 사람들. 여전히 ‘할 수 있다’를 외치며 임용시험에 합격하고 아이들 앞에서도 ‘할 수 있다’를 외치는 교사가 되어있지는 않은가. 그래서 그들은 쉬는 법을 모른 채 자신에게 채찍질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들에게 자기계발과 꿈이란 그마저도 혹시 자유를 빙자한 성과주의의 혼령이 아닌가. 직면하고 싶지 않은 의문들이 떠오르는 피로사회의 밤이 깊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