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의 영끌 투자가 부동산 시장을 흔들었다.’ 영끌은 ‘영혼까지 끌어모았다’는 뜻의 신조어이다. 부동산 시장의 불안이 20대와 30대의 영끌 투자 때문이라는 분석 기사가 쏟아지던 시기, 필자는 동료교사 셋에게 새로운 스터디 모임 제안을 받았다. 서로 알지 못하는 친구들이 각각 제안해 주었는데, 신기하게도 모두 같은 제안을 해왔다. “부동산 공부 같이할래? 이제 뭔가 좀 해야겠다.”
경제와는 거리가 먼 직업?
현대 사회의 여러 직업 가운데서도 유난히 돈과 거리가 멀다는 인식이 있는 직업은 아마도 교사일 것이다. 소명으로 가르치며 헌신하는 삶. 사람들은 여전히 교사에게 그런 모습을 기대한다.
교사의 월급은 많은 편일까, 적은 편일까. 우문이다. 비교 대상도 분명치 않다. 그러나 서울에 사는 초등교사들은 상당수가 이렇게 대답한다. “서울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기엔 팍팍하다.” 대부분의 이유는 집값 때문이다. 인기 유튜버로서 여러 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는 교사 G는 얼마 전에 아파트를 계약했다.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서는 절대 집을 살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사 G는 ‘서울 집값은 오늘이 가장 싸다’는 말에 동의한다. 교사 월급으로는 도저히 못 살 것 같은 서울 아파트를 사기에 가장 유리한 날은 오늘이기에, 오늘의 가격에 베팅을 하고 다양한 추가수익으로 이자를 내기로 했다.
광역시에 사는 교사 B 역시 전세를 사는 사이 두 배로 솟은 집값에 분통이 터졌다. 어느 날 충격은 현실로 다가왔다. 집을 살 돈이 없는데 이사를 가야 했다. 같은 전세자금으로는 더 이상 아파트에 살지 못하고 주거 환경을 바꿔야 했다. 돈 가치가 떨어진 것이 체감되었다. 그동안 자신은 뭘 했나 한탄스러웠다.
2015 공무원연금개정 당시 인사혁신처가 시뮬레이션한 결과에 따르면 2016년에 임용된 중등교사가 30년 재직할 경우 65세부터 받을 수 있는 연금액은 월 146만 원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나온 최소 노후생활비에 관한 기사에서는 1인 가구의 적정 노후생활비는 164만 원이라고 했다. 그것도 질병이 없는 경우를 가정한 것인 데다 현재 50대 이상 중고령자의 의견이다. 정년보장과 연금은 내 젊은 날의 경제적 윤택과는 별개라는 사실을, B는 그제야 절감했다. 그 뒤로 B는 재테크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매일 경제신문을 보며 용어를 공부하고 종잣돈을 모으기 위해 무지출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다. ‘교사로서는 청렴하게, 그러나 자본주의를 사는 인간으로서는 내 능력껏 윤택하게 살 테다’고 B는 다짐했다.
나는 경제적 자유를 꿈꾼다, ‘FIRE족’
교사도 경제적 자유를 누리는 게 가능할까? 유튜브 리치커플TV를 운영하는 리치커플은 초등교사 커플로서 경제적 자유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업로드한다. 이른 퇴직, 경제적 독립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FIRE족은 리치커플을 잘 설명해주는 말이다. FIRE족은 밀레니얼세대 사이에서 하나의 꿈이자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밀레니얼세대 누군가는 ‘인생은 한 번뿐이니 원 없이 즐기자!’며 YOLO(You Only Live Once)를 외쳤다. 그 반대편에서는 ‘욜로 욜로’하다 골로 간다며 절약과 투자로 무장한 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를 외쳤다. 2030교사들 사이에서도 FIRE족은 늘고 있다.
그들에게 경제적 자유란 단순히 돈이 많음을 뜻하지 않는다. 돈이 충분하면 내가 머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외부영향을 받지 않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안다. 내가 원할 때 원하는 것을 해도 돈 걱정이 없는 상태. 그것이 경제적 자유다. 경제적 자유를 추구함, FIRE라는 말이 조기 퇴직과 경제적 독립으로 이루어진 이유는 ‘독립’이 자유의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교사는 어쩌면 가장 독립적이기 힘든 직업이다. 국가라는 가장 큰 조직에 속한 공무원이고 가치적으로도 여러 미덕·교육이라는 특수한 업무에 매여있다. 본인이 놓지 않는 이상 웬만하면 정년이 보장되는 환경이다. 스스로 정신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깨야 할 것이 많다. 그러니 교사 중에서도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사람들은 어쩌면 돈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유연하고 적응에 능한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는 자신들이 받는 월급 그 이상의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한다. 능력계발·겸직·투자·소비와관련하여 행할 수 있는 모든 자유를 행한다.
가성비, 가심비와 합리성
2030 교사들은 가성비와 가심비를 따진다. 가성비는 가격 대비 성능을 말한다. 투자되는 비용에 비해 성능이나 효과가 좋아야 한다는 의미다. 가심비는 가격 대비 심적 만족감을 말한다. 투자되는 비용에 비해 심적 만족도가 높아야 함을 말한다. 투자되는 비용이란 돈·시간·공간·체력, 그것이 아니었다면 누렸을지 모르는 어떤 기회까지. 모든 기회비용을 말한다.
2030 교사들에게 가성비와 가심비는 물건뿐만 아니라 행위에도 적용된다. 교직에서 하게 되는 여러 업무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런 그들에게 보직교사수당 7만 원은 가혹하다. 조직에 있으니 안 할 수 없어 하긴 하나, 열과 성을 다해 희생하지는 않는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해서 그 시간과 노력을 내가 하고 싶은 다른 일에 쏟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약아서가 아니다. 이미 사회가 그들이 가진 것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나의 시간과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니 최대한 가성비·가심비 좋은 곳에 쓰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성과급 지급체계는 등급으로 나뉘었으나 고려되지 않는 사각지대가 많다. 등급별 액수의 차이만큼 업무량이나 강도가 달랐다고 말할 수 없을 때도 많다. 열심히 일한 사람은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나, 합당한 정도의 차이는 사람마다 다르다. 오히려 보직의 성격과 업무 강도에 따라 이미 수당이 정해져 있다면 차라리 합리적이다. 그러나 수당 7만 원은 아니다. 부장을 달면 해야 할 일이 얼마이고, 쏟아야 할 시간이 얼마인데 고작 7만 원이냐고 그들은 묻는다. 7만 원은 귀한 돈이지만, 가심비를 생각하는 그들은 한 끼에도 7만원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다.
2030 교사들의 경제관념은 선배 세대와는 확실히 다르다. 돈 때문에 결혼·연애·출산·내 집마련·인간관계·꿈을 포기해야 한다는 ‘N포 세대’와 ‘아닌 세대’가 돈에 대해 인식하는 방향이 같을 수 없다. 2030 교사들에게 더 일을 시키고 싶다면 그들의 합리성에 맞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서로 모르는 관계인 동료 셋이 각각 동시에 부동산 공부를 하자고 제안해왔다니. 그 점에서 필자는 또래 교사들 사이에서도 적극적으로 경제적 부를 추구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분명히 느꼈다. 사명감과 청빈함은 교사의 미덕이요,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니 정신적으로 고매하게 살면 된다는 인식은 2030 교사들에게 더 이상 현실적이지 못하다. 자본주의를 이해하고 이용한다는 것이 청빈하지 못함이 아니며, 탐욕스러움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 고정된 생업이 없으면 흔들림 없는 마음을 갖기 어렵다. 그러나 2030 교사들은 고정된 생업이 있어도 불안한 시대에 살고 있다. 정년 보장과 연금과 월급이 채워줄 수 없는 자본주의의 갭을 메꾸려 하는 그들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들은 그냥 자유롭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