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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이참에 학부모평가라도 해보면 어떨까?

“안녕하세요. ○○이 아빠입니다. 얼마 전에 실시한 과학전람회 대회에서 우리 아이가 왜 상을 못 받았는지 알고 싶어서 연락드렸어요. 제가 보기엔 우리 애가 잘한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떤 애들이 상을 받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 엄마입니다. 우리 애가 선생님 과목을 정말 열심히 공부했는데 중간고사 볼 때 긴장을 했는지 잘 못 봤거든요. 그래서 아이가 많이 힘들어해서 그런데 기말고사는 조금 쉽게 출제해 주세요.”

 

“이번 선택과목 조사에서 아이가 물리학Ⅱ를 신청했더라고요. 신청기간이 끝난 것은 알지만, 아이가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서 지금 전학까지 생각하고 있으니 생명과학Ⅱ로 바꿔주세요.”

 

“아이가 과학 경시대회를 깜빡하고 신청하지 못했다네요. 저희 애 신청 좀 해주세요.”

 

“아가씨, 우리 손자가 그 학교 졸업생인데 외국 유학을 가서 너무 보고 싶은데 혹시 졸업앨범을 구매할 수 있나요?”


작년 한 해 내가 받은 학부모들의 전화 중 일부이다. 작년은 코로나로 인해 개학 연기·온라인수업·학사일정 조정 등으로 교사·학부모·학생 모두 처음 겪는 일들이 많았고, 예년보다 더 많은 전화가 걸려왔다. 학년 초에는 온라인수업과 관련한 문의가 많았고, 내가 담당한 교육과정 업무 때문에 선택과목 관련 문의나 요청도 끊임이 없었다. 내내 전화를 받느라 아무 일을 할 수 없는 날도 있었고,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해서 설명하기도 했다.

 

홈페이지에 자세히 안내되어 있음에도 제대로 찾아보지 않고 전화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대부분의 학부모는 정중했으나, 다짜고짜 화부터 내거나 막무가내로 우기는 사람도 있었다. 말꼬투리를 잡아서 협박하는 사람도 있었다.

 

작년 1학기에 1학년 학생들의 2학기 선택과목을 조사하던 중이었다. 1학년 2학기 선택과목의 경우 입학하기 전 신입생 예비소집에서 조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야 교원채용 여부를 결정하고, 교과서 주문도 할 수 있으니까(「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제30조에 따르면 매 학기에 사용할 교과용 도서를 해당 학기 시작 4개월 전까지 주문하여야 한다). 하지만 입학도 하지 않은 학생들, 특히 개학이 연기되어 등교는커녕 고등학교 생활을 경험해보지 못한 1학년 학생들에게 과목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그래서 5월에 등교수업이 이루어진 뒤에 학생과 학부모 대상 설명회를 실시하고, 5월부터 6월 말까지 신청을 받았다. 학생들을 위한 배려였다. 그러다 보니 부득이하게 인원 제한을 할 수밖에 없었다. 1학년 2학기에 신청이 몰린 특정과목에 대해서는 2학년 1학기에 동일한 과목을 편성했으니 2학기에 신청을 하지 못해도 무리가 없었다. 

 

 

신원을 밝히지 않은 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1학년 학부모인데요. 이번 선택과목 조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선택과목을 인원을 정해놓고 받는 것이 어디 있나요?”


“똑같은 과목이 2학년 1학기에도 개설되어 있으니 이번에 수강을 못 하면 다음 학기에 수강하시면 됩니다. 교원수급 때문에 이번 학기만 그렇게 하고 다음 학기에는 수강인원에 제한을 두지 않았어요. 이런 내용을 학생과 학부모 대상 설명회에서 모두 안내해드렸는데요.”


“아니 자사고가 교원수급이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나요? 그리고 교원수급이 안되면 한 학급에 40~50명씩 놓고 수업하면 되지 않나요? 자사고면 당연히 그 정도 공간이 있는 거 아닌가요?”


“학교에 40~50명씩 놓고 강의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습니다. 있더라도 40~50명씩 놓고 수업을 하게 되면 학생들이 피해를 보게 됩니다.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인원 제한을 설정한 것이고, ‘인원 제한을 하겠다’는 사전 공지에 따라 다른 선택과목을 신청한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번복할 수 없습니다.”


“아니 어떤 학교가 이런 식으로 인원 제한을 두고 선택을 받나요? 공부 잘하는 애들 내신 잘 받게 해주려고 그러는 거 아닌가요?”


“아버님, 저는 누가 성적이 좋은 학생인지도 모르고,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어떤 과목에 몰렸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저희가 내년 선택과목 조사라면 인원 제한을 두지 않고 조사결과를 내년도 교원수급계획에 반영하면 되겠지만, 당장 두 달 뒤 실시할 2학기 수업을 지금 계획하고 있는 거라서 지금 교사를 더 채용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선생님은 자녀가 있나요? 애가 안 그래도 중간고사 성적이 안 나와서 가뜩이나 풀이 죽어 있는데 원하는 과목을 신청하지 못해서 더 기죽어 있어요. 그런 아이를 보는 부모 마음을 이해는 하시나요? 아니 도대체 선택과목을 왜 이런 식으로 운영하는 겁니까? 자사고라서 당연히 될 줄 알고 학교 선택을 했는데 이게 뭡니까? 너무 실망스러워요. 개선이 되지 않으면 교육청에 정식으로 민원을 신청하겠습니다.”


점점 언성이 높아졌고, 대화가 한 시간가량 이어졌다. 알고 보니 이 학부모는 인근 학교 교사였다. 나한테만 전화한 것이 아니고 담임교사에게도 전화해서 항의했다고 한다. 사전에 모두 공지하고 몇 번씩 강조한 사항인데도 자신의 아이가 원하는 과목을 신청하지 못했다는 민원전화였다.

 

이런 전화를 받고 나면 일주일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잘못 운영해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 걸까? 내가 부족했던 것일까? 뭘 더 어떻게 했어야 하는 것일까? 자책·후회·자괴감 등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혔다.

 

 

학교는 동네 주민센터가 아니다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민원인은 행정기관에 대하여 질의·건의 등을 할 수 있으며, 행정기관에는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설치된 각급 학교도 포함된다. 학부모 또는 누구라도 학교에 질의나 건의를 할 권리가 법으로 보장되어 있고 학교도 행정기관으로서 민원인의 요청을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학부모들은 학교를 주민센터나 시청과 같은 일반 행정기관이라 인식하지만, 교사들이 인식하는 학교는 일반 행정기관과 같이 학교 밖의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집중해야 할 공간인 것이다. 교사들은 학부모들의 민원 해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직접 아이들을 상대하고 그 과정에서 수행하는 일이라고 여긴다. 학부모들의 민원을 듣고 교육환경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학교의 의무이긴 하지만 학부모 민원을 처리하느라 교사가 해야 할 수업준비를 못 하거나 학생지도를 못 하게 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학부모도 교육의 주체 중 하나라고들 한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민원전화를 받아보면 우리 교육의 건설적 변화를 위한 요구가 아닌, 대부분 본인 아이에게만 해당되는 개인적인 요구사항을 말하는 것이다.

 

작년 9월 중순부터 2021학년도 선택과목 조사 작업을 시작했다. 안내자료를 제작하고 설명회를 실시했다. 일회성으로 하면 못 들었다고 하는 경우가 많아 동영상을 제작하여 언제든 볼 수 있게 게시해 두었다. 진로가 수시로 바뀌는 학생들이 있어 신중히 선택할 수 있도록 기한을 충분히 주고자 12월 말까지 3차에 걸쳐 조사했다. 선택과목 조사가 늦어지자 교원수급, 교과서 주문 일정도 빠듯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지만, 학생들을 위한 배려 조치였다.

 

선택과목 조사기간에도 과목선택 문의와 관련한 수많은 전화를 받았고, 선택과목 조사가 마감된 뒤에는 바꿔 달라는 전화에 방학 내내 시달려야 했다. 바꿔 달라는 전화를 받으면 일단 대화를 나눠봐야 했다. 왜 바꾸기를 원하냐, 아이의 진로가 뭐냐 등등. 내신에 불리할 것 같아서, 내신이 나오지 않아서 수시보다는 정시 준비에 주력해야 할 것 같아서, 애들이 선택을 많이 하지 않아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너무 몰려서 등등. 너무 힘들었다. 올해는 교무기획업무를 하지 않기를 희망했으나 올해도 맡게 되었다. 학교에서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니까. 올해도 이 작업을 해야 하는데 선택과목 조사 시즌이 오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2021학년도가 시작된 지 두 달여가 지났다. 올해도 온갖 민원전화에 시달리고 있다. 온라인수업을 하면 등교수업을 해달라고, 등교수업을 하면 온라인수업을 해달라고 요구하고 교육청에 우리 학교에 대한 민원을 넣는 방법으로 압박을 가하는 학부모들도 있다. 심지어 일부 학부모들 사이에는 돌아가며 한 통씩 민원전화를 하자는 단체 행동까지 있었다. 학교에 민원전화를 받는 직원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학생지도를 하는 교사들이 그 시간을 할애해 민원전화도 받고 있는 것이다. 학부모들의 이와 같은 행동이 학생지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오로지 순간의 문제만 중요한 것일까. 학교에서 어떤 정책 결정을 내릴 때 아무 생각 없이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학부모 민원이 주는 엄청난 스트레스
학부모들의 민원이 교사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이고, 그로 인해 직무만족도가 저하된다는 기사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교육부에서 ‘교육활동 보호 매뉴얼’을 만들어서 배포하는 것도 이유가 있다. 학부모들의 건의사항이 우리 교육환경을 더 낫게 만들어가기도 하지만 아이들과 소통하며 행복한 학교생활을 꿈꾸고, 열정적으로 교직에 임하려던 교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면 옳은 것일까? 학부모들이 원하는 것이 교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학교의 상황을 모른 채 요구하면 무조건 들어 달라는 식의 전화를 받으면 진이 빠지곤 한다. 우스갯소리로 교원평가만 할 것이 아니라 학부모평가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교사도 있다. 


학부모들로부터 민원전화가 자주 오는 것은 학교교육에 신뢰가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학교가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라는 신뢰를 주었다면 아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일일이 전화하는 일은 없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민원전화가 많이 올수록 학교는 더 발전하기보다는 위축되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행사 하나를 기획하더라도 민원 소지가 없는지 신경을 쓰게 되고, 교육적 가치보다 학교가 곤란해지지는 않을지를 우선으로 고려하게 된다. 교육청에서도 늘 학교에 당부한다. 민원 소지가 없도록 해달라고.


학교가 정말 행정기관이 된다면 학부모들의 교육에 대한 신뢰는 더 떨어질 것이고 그럼 학교는 점점 법적으로 해야 할 최소한의 것만 이행하는 기관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부모·학생·교사 중 누구도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학교·교사도 당연히 신뢰회복을 위해 아이들의 입장에서 신경쓰고 소외되거나 피해보는 학생이 없는지 챙겨야겠지만 학부모들도 민원인이 아닌 교육의 주체로서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해 주기를 바란다. 내 자식만을 위한 학교가 아닌 모든 아이들에게 더 나은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학교로 발전하기 위한 학부모의 역할과 참여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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