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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강마을에서 책읽기-청춘의 문장들

화단에 주근깨가 귀여운 산나리가 피기 시작하였습니다. 키 큰 여름꽃이 울타리 위로 쑥 아름다운 얼굴을 드러내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쳐다봅니다. 어리석은 자의 정원 안주인으로 만개한 붉은 산나리의 건강한 모습과 보랏빛 벌개미취꽃의 사랑스러운 풍경이 보석 같은 계절입니다. 그대로 뜨거운 청춘입니다. 김연수 작가의 젊은 날을 사로잡았던 한 문장을 찾아가는 책 『청춘의 문장들』을 장맛비가 우수수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읽었습니다.

 

정릉 산꼭대기에서 보낸 그 마지막 겨울이 사실 내게 봄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사람은 당나라 시인 두보였다. 두보는 「곡강 이수 曲江 二首」의 첫 번째 수는 이렇게 시작했다. ‘人生七十古來稀’ 라는 유명한 구절이 담긴 시다.

 

한 조각 꽃이 져도 봄빛이 깎이거니

바람이 불어 만 조각 흩어지니 시름 어이 견디리

스러지는 꽃잎 내 눈을 스치는 걸 바라보노라면

몸 많이 상하는 게 싫다고 술 머금는 일 마다하랴

 

一片花飛減卻春 風飄萬點正愁人

且看欲盡花經眼 莫厭傷多酒入脣

江上小堂巢翡翠 苑邊高塚臥麒麟

細推物理須行樂 何用浮名絆此身

 

그해 겨울, 나는 간절히 봄을 기다렸건만 자신이 봄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만은 깨닫지 못했다. 한 조각 꽃이 져도 봄빛이 깎이는 줄도 모르고...<중략> 연탄의 검은빛이 허공 속 연기로 사라지듯 우리 청춘의 꽃잎은 그렇게 한 조각 한 조각 져 버렸고 봄빛이 깎이었다. pp. 130~131

 

문단의 중진으로 자리 잡은 김연수 작가의 청춘 시절의 고뇌를 따라가다 그를 움직였던 문장들을 만나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청춘은 아름답지만 미숙하고 안타까운 시절입니다. 가슴 한구석이 아려오는 통증 같은 시절, 안개 속을 걸어서 출구 없는 미로를 더듬어 나가는 것 같은 힘겨움, 눈부신 봄꽃에 아른거리는 젊은 광기...

 

여름 야생화가 핀 화단의 중심에 자리 잡은 배롱나무가 붉은 꽃차례를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여름 화단 청춘들의 짧은 향연이 지나가면, 진정한 주인인 꽃무릇이 조용하게 무수한 가을꽃을 피울 것입니다. 이렇게 꽃들이 피어서 지고 그러면 그 자리에 다른 꽃이 다시 피어나는 것이 세상 이치일 것입니다. 이제 청춘을 지나온 저는 이 자연의 순리에 맞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삼복지절입니다. 더위 조심하십시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마음산책,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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