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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강마을에서 책읽기>모든 살아남고자 하는 것들에 대한 보고서

정유정의 '28'

이 이야기는 ‘불볕’이라는 뜻의 도시 화양(火陽)에서 28일간 펼쳐지는 재난 속에서 인간 본성을 탐구하는 소설이다. 아이디타로드 개썰매 경주에 참가했던 최초 한국인 머셔였던 수의사 서재형, 익명의 투서를 받고 그를 저격하는 기사를 써서 나락에 빠뜨린 기자 한윤주, 119구조대원 한기준, 동물살해에 이어 방화와 무차별 살인하는 사이코패스 박동해, 응급실 간호사 노수진, 그리고 팀버울프의 혈통을 지닌 개 링고 이렇게 5명의 사람과 1마리 개의 시선으로 지옥으로 변해가는 도시의 뒤엉킨 현장에서 서로 응시하고 미워하며 사랑하고 물어뜯는다.

 

‘빨간눈의 괴질’이라는 별명을 지닌 원인불명의 전염병은 개와 인간 사이에 무차별적으로 전염되며 치사율이 100%에 가깝다. 괴질에 대한 소문으로 대통령의 담화문이 발표되고 도시 화양 전체를 완전히 고립시킨 정부는 시청 앞에 모여드는 시민을 향해 ‘해산하시오’라는 명령만 되풀이한다. 이 장면은 문득 우리 역사의 아픈 상처를 되살린다. 봉쇄된 도시 속에서 인수공통전염병이 지나간 삶의 폐허를 철저한 리얼리티로 그려내는 작가의 서슬 푸른 필치가 책을 읽는 내내 서늘하게 와 닿는다.

 

작가 정유정이 소설의 시놉시스를 쓴 것은 돼지 생매장을 접하던 밤이라고 한다. 눈보라 치던 밤, 깊은 구덩이 안에서 죽음을 직감한 돼지 수백 마리가 두려움에 울부짖었고, 산채로 묻힌 그들의 울음소리는 이튿날 아침까지 지상으로 울려 퍼졌다고 한다. “우리는 천벌을 받을거야.”라고 하며 그녀는 잠들기를 포기하고 노트를 펼쳤다고 한다.

 

책을 읽고 난 후 도시 화양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방송 보도를 접했다.

“2021년 8월 8일 강원도 고성의 한 양돈 농장에서 아프리카 돼지 열병(ASF) 확진 판정을 받았다. 고성군 간성읍에 위치한 양돈 농가에서 이상 증세가 발견돼 7일밤 검사 후 최종 양성으로 확인되었다. 해당 농장은 돼지 약 2400마리를 기르고 있다. 8일 오전 농림축산부 장관에게 ”발생 농장에 대한 살처분을 신속하게 하라.“ 긴급 지시했다. /2021.8.9. <강원일보> 보도

아득한 슬픔이 몰려온다. 그들의 울부짖음이 남쪽의 작은 도시로 들려올 것같다.

 

코로나 19 집단감염으로 인해 우리 지역도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적용되고 있다. 개학이 며칠 남지 않은 상황에서 2학기 학사일정이 어떻게 될지 걱정이 앞선다. 이러한 사태의 한 원인은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한 자연 파괴와 생태계 최고의 포식자로 가축에게 한 짓도 포함되리라는 생각을 한다. 작은 바이러스에게 휘둘리는 우리는 이 초록별의 주인이라는 자만심을 내려놓을 때가 된 것 같다. 사라보예 지젝은 현재의 사태에 대해 ”이 사태는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들을 무자비하게 착취해온 인류에게 내린 잔혹하지만 정당한 천벌이다.“라는 메시지를 찾는다. 그는 ”우리가 정말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지금 유행하는 감염병이 자연의 우연성이 가장 순수하게 발현한 결과요, 그냥 생겨났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숨겨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더 거대한 사물의 질서 한가운데 인간은 아무런 중요성도 없는 한갓 종에 불과하다.“라고 일갈한다.

 

마틴 루서 킹 목사가 반세기도 전에 했던 말을 기억하자. ”모두 다른 배를 타고 왔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지금 같은 배를 타고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은 같은 배를 타고 바이러스의 강을 건너고 있다. 강의 가운데를 지나왔기를 이제 저 멀리 푸른 강나루가 보이기를 기도한다.

『28』, 정유정 지음, 2013,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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