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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특집> 나의 스승들

흔히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고 한다.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는 세 가지 요인을 강조하고 잊지 말라는 의미이다. 나는 이 용어를 두 가지로 달리 본다. 우선 내 인생에 영향을 끼친 순서를 고려하여 이 용어를 ‘부사군일체’로 변형하여 생각한다. 그리고 글자대로의 세 가지에 국한하지 않고, 내 인생에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로 확장하여 생각한다. 이렇게 보면 내게 가르침을 준 스승은 매우 많다. 이 기회에 내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스승들을 생각해본다. 매우 다양한 맥락·내용·사람이 떠오르지만, 나의 감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한결같은 공통점이 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인간의 감성이 이성보다 먼저 작용하고, 더 강하게 작용한다는 최근의 뇌 연구 결과와도 일치한다.

 

가장 먼저 영향을 미친 스승은 부모님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로 기억하는데, 우리 동네에는 뽕나무를 키워 누에를 치는 집이 있었다. 뽕잎을 따다 누에에게 주면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는 모습과 무럭무럭 자라 실크를 만들어 고치를 만드는 모습이 참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 집 아이는 이런 점을 크게 자랑하니 부러웠다. 부모님께 우리도 누에를 치자고 졸랐고, 드디어 우리 집에도 뽕나무를 심는 날, 학교를 조퇴하고 들뜬 마음으로 집에 왔는데, 어머니께서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냐? 당장 학교로 돌아가라!”라고 호통하셨다.

 

농촌 일손이 부족하던 나의 어린 시절에 아버지께서는 내게 “집에서 공부할래, 밭에 함께 일하러 갈래?”라고 선택권을 주셨다. 당연히 공부한다고 하고, 동네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고 왔다. 그다음에는 양심에 찔려서 밭에 일하러 갔다.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그다음에는 실제로 공부를 했다. 가끔 일하러 가서는 대충대충 하고 빨리 마치려고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아버지께서는 “콩밥 빨리 먹는 녀석은 변 볼 때 보면 안다”라고 말씀하셨다. 음식을 꼭꼭 씹어 먹지 않으면 제대로 소화되지 않고 그대로 몸 밖으로 배출된다는 의미로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는 교훈을 주셨다.

 

그다음은 학교 선생님이다. 초등학교 때, 산수시간에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칠판에 문제를 적은 후 나와서 다른 학생들에게 푸는 법을 보여주라고 하셨고, 시험 후에는 답안들을 채점하게 했으며, 틀린 학생들에게 개별적으로 왜 틀렸는지 설명해주라고 하시곤 했다. 기분이 좋았고, 행동까지 우쭐했었다. 이를 간파하신 선생님은 나에게 별도로 어려운 산수문제를 내주셨다. 풀지 못했다. 내게 겸손함을 가르쳐 주신 최영자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진학을 희망하는 대학을 적어내게 했는데, 나는 다른 학생들도 많이 적어내고 무난히 진학할 수 있다고 생각한 인근의 대학들을 적어냈다. 학년말 마지막 시간에 담임선생님께서는 1번 학생부터 마지막 학생까지 빠뜨리지 않고 각자의 장단점을 공개적으로 말씀해주셨다. 대부분의 학생이 수긍했다. 내게는 목표를 더 높게 잡으라고 하셨다. 그래서 더 높게 잡았고 성공했다. 도전의식을 심어주신 고 신성순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내가 다닌 대학의 생물교육과에는 교수님 전공별로 대학원생이 연구하는 실험실이 있었다. 3학년 때 교수님 한 분이 당신이 지도하는 실험실에 학부견습생으로 들어오면 어떻겠냐는 제안에 따라 실험실 생활을 했다. 대학원에 입학하자마자 다른 실험실에서는 지도교수님의 전체적인 연구계획에 따라 연구주제도 정해지고, 실험도 잘 구축된 매뉴얼을 따라 하면 큰 문제가 없었다. 결과도 비교적 깔끔하게 잘 나왔다. 그때는 그게 무척 부러웠다. 내 지도교수님은 대학원생에게 자율권을 주셨기 때문에 연구주제를 스스로 정하고 진행하는 게 무척 힘들었다. 내가 찾아 정한 연구주제는 ‘플라나리아의 학습에 따른 단백질 합성 패턴의 변화’를 규명하는 것이었는데, 실험방법에서의 난관, 특히 지방성분이 많은 실험동물의 단백질을 추출하여 2차원적으로 분석해야 하는 매우 어려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오랜 기간 다양한 자료를 읽고, 고심하며, 많은 날들을 밤새워 실험했다. 마침내 성공했을 때의 기쁨을 표현하려면 말로는 부족하다. 대학원 시기의 이러한 경험이 습성이 되어 오늘까지 내 생활에 깊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개척정신을 심어주신 고 장남기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지금은 다른 교수님들로부터 많이 배운다. 총장이 된 후, 우리 대학 모든 교수님들이 1년 동안 매주 수요일에 자신의 연구주제나 관심사를 발표하고 의견을 나누는 행사를 하였다. 한 주제를 평생에 걸쳐 깊게 파고드는 교수, 새로운 학문영역을 용감하게 개척하는 교수, 자신이 몸담고 있는 학문영역의 지식을 훌륭하게 체계화하는 교수, 신기술을 재치 있게 도입하는 교수 등 매우 다양하였다. 각 교수님들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는 수확과 함께 연구자·교육자로서 소중한 것들을 많이 배웠다는 점에 감사한 마음이다.

 

한편, 학생들도 나의 스승이다. 30년 가까이 학생들을 가르쳐 온 경험으로 나는 학생들을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비단 학생에게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첫째 유형은 ‘하라는 것도 하지 않거나, 못하는 학생’이다. 둘째는 ‘하라는 것만, 하라는 대로만, 하라는 만큼만 하는 학생’이다. 셋째는 ‘하라는 것 이상을 스스로 창의적으로 하는 학생’이다. 세 가지 유형 모두 내가 무엇을 잘못했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중요한 가르침을 준다. 특히 우리 모두가 세 번째 유형의 학생처럼 되어야 한다는 당위적 목표를 달성할 방도를 궁리해야 한다는 가르침과 숙제를 준다.

 

우리나라 교육시스템도 내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가끔 ‘내가 우리나라와는 다른 교육시스템에서 자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부질없는 회고적 상상을 해본다. 그래도 오늘의 나를 있게 해 주었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물론 아쉬움도 크다. 우리나라 교육시스템과 관련하여 두 가지 희망을 만들었다. 하나는 우리나라가 교육열 혹은 교육욕이 아니라 학습열이 높은 나라가 되면 좋겠다. 다른 하나는 내가 몸담고 있는 서울교육대학교 교훈인 ‘내 힘으로, 한 마음으로’와 관련된다. 즉 모든 학생이 스스로 잘하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 잘하는 자립력과 공동체정신을 균형 있게 갖춘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문화·시스템이면 더없이 좋겠다.

 

지금까지 나를 살아오게 했고 앞으로 살아가는 데 가르침을 준 부모님의 양육(養育), 학교 선생님의 교육(敎育), 국가의 육성(育成) 외에도 여기에 다 언급하지는 못한 친구 등 주변에 온통 나의 스승들이다. 스승이 내게 오는 게 아니라 내가 다가가야 비로소 그 대상이 나의 스승이 된다. 나의 스승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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