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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교육 칼럼] 혁명

최근에 상상을 초월한 충격적인 일들이 교육계에 줄지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학교폭력과 입시지옥 등 고질적인 문제 위에 교사 자살, 학생 마약, 교사 데모와 명퇴, 폐교 급증 문제가 덮치고 있습니다. 수년간 계속해서 청소년 자살률 세계 최고, 행복도 세계 최하위라는 섬찟한 성적표가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학교폭력 빈도수가 저학년으로 갈수록 더 많다는 사실에 미래가 참으로 절망스럽게 느껴집니다.


더 암울한 문제는 학생과 교사 관계가 대립으로 치닫는다는 사실입니다. 교권과 학생인권이 부딪히면서 둘 사이가 아름다운 사제관계가 아니라 불신과 두려움이 지배하는 적대관계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학생인권을 너무 내세우면 교권 강화가 요구될 것이며, 두 인권의 대립이 제로섬 게임이 되는 순간 학교현장은 황폐화될 것이라고 말해왔습니다. 교사가 학생에게 교육전문가가 아니라 스승으로 다가가는 길만이 학생인권을 지키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역설적으로 그럴 때만 교사가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힘을 합쳐도 어려운 판에 서로 단절되고 적이 되어서는 문제만 더 커지고 함께 불행해질 뿐이지요. 갈등 봉합을 외부 조직에 의존할수록 자정 능력이 약해질 것이고, 결국 자생력은 사라질 것이며, 현대 교육의 종말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교육혁신이 아니라 교육혁명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혁신은 기존 체제를 유지하되 문제점을 개선하는 일입니다. 문제의 원인을 규명하고, 해결책을 찾고, 업그레이드해나가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교육혁신이란 구호가 나온 지 벌써 40년이 지났지만, 나아지기는커녕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고, 더 큰 절망만 안겨주고 있습니다. 다양화·자율화·정보화·창의융합·영재교육진흥법·인성교육진흥법·자유학기제·학생중심·행복학교 등 수많은 혁신 구호와 제도들이 줄줄이 도입되고 추진되었건만. 교실붕괴는 더 가속되고 스승이란 단어는 아예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마치 지구를 중심에 두고 천체가 둥근 원을 그리는 천동설의 부족함을 개선하기 위해 80개의 주전원을 추가해야 하는 등 우주가 더 복잡해지고 난해해졌듯이, 그럼에도 시스템이 어정쩡했듯이, 그래서 지동설 혁명이 필요했듯이, 한국교육도 혁명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혁명이라. 우리에게 참 부담스러운 단어지요. 위대한 4·19혁명은 비싼 대가를 치렀고, 역사적인 촛불혁명은 나라를 쪼갰고, 혁명인지 정변인지 5·16은 여전히 파괴적인 이념전쟁 중입니다. 하지만 혁명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류는 코페르니쿠스혁명, 산업혁명, 프랑스혁명, 디지털혁명 등 사명을 다한 낡은 기존체제를 허물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환영하면서 새 시대를 열어왔기 때문입니다.


혁명은 혁신과 달리 미래에 대한 비전에서 시작합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의 원인을 따지는 게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미래모습을 규명하고, 그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을 그냥 시작하는 것입니다. 
물론 왜 교육이 망가졌는지 이유를 알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10명의 전문가가 100가지 이유를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100가지가 다 타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혁명은 과거를 분석하기보다는 못마땅한 현재가 미래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시도입니다. 

 

현재 한국교육은 혁명해야 할 조건, 즉 못마땅한 모습을 충분히 갖추었습니다. 외람된 표현이지만 한국교육은 MAD·SAD·BAD이기 때문입니다. 내용을 달달 외우고(Memorizing), 분석하고(Analyzing), 계산(Data processing)하는 게 MAD 교육입니다. 이를 최고로 잘하는 우등생마저 챗봇 발끝도 따라가지 못하는 시대이니까요. 부모의 꼭두각시(Slavish)가 되어 입시 위주(Admission oriented)로 꿈을 박탈당한(Dreamless) 게 SAD 교육입니다.

 

꿈이 아니라 부모가 주입한 악몽을 꾸는 건 매우 슬픈 이야기지요. 과보호로 거지 근성(Beggar-minded)과 갑질 근성(Arrogance)을 키우고, 의존적(Dependent) 결과로 이어지는 게 BAD 교육입니다. 기여하는 인재가 아니라 기생하는 둔재를 양성하는 건 옳지 않잖아요. 


왜 이 모양이 되었는가는 우리 다 압니다. 교육이 입시 중심으로 움직이는 한 미래가 없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알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최근에는 학교폭력 사안을학생부에 기록하여 입시에 불이익을 준다고 합니다. 입시가 교육의 숨통을 틀어쥐고 있는 병목현상이고, 학력 독점체제이건만, 이에 더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급하더라도 사명을 다한 교육제도에 생명을 연장하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성공적인 혁명에 세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패러다임 이동이 간단명료해야 합니다. 코페르니쿠스혁명은 천체의 중심을 지구에서 태양으로 옮기고 동선을 원이 아니라 타원으로 바꿨지요. 그러자마자 80개의 주전원들이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교육혁명도 입시 중심으로 돌아가는 원을 두 원점으로 이루어진 타원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교육은 입시가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어야 합니다. 교사와 학생이 두 중심을 이루어야 합니다. 교권과 학생인권을 법으로 규정하면 곤란합니다. 원칙 하나에서 시작하더라도 많은 세칙이 따라오게 되어 결국 천동설의 주원과 주전원이 같아질 것입니다. 법이 아니라 윤리로 다스려야 합니다. 


둘째, 혁명에는 새로운 가치관(윤리관)이 등장해야 합니다. 인권이란 개념을 만든 프랑스혁명이 법률이 아니라 해방·평등·형제애라는 가치관을 내세웠듯이 교육혁명에도 이 세 가지 개념이 도입되어야 하겠습니다. 앗, 프랑스혁명은 자유·평등·박애가 아니었던가요. 아쉽게도 우리는 그렇게 잘못 배웠습니다. 인권의 기본 가치관은 자유(freedom)가 아니라 ‘억압으로부터 해방’(liberty)입니다. 


프랑스혁명의 훌륭한 가치관이 한국에는 번역 실수로 엉뚱한 개념으로 둔갑되고 왜곡돼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목격합니다. 자유랍시고 제멋대로 하거나 지 맘껏 요구하는 꼴사나운 사람들을요.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존중은 눈곱만치도 없고 오로지 자신의 권한만 내세우는 흉한 사람들을요. 


인권이란 자신의 권한을 쟁취하는 게 아니라 서로 침해하지 않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 평화로운 결과를 위한 수단이 바로 평등(equality)이란 두 번째 가치관입니다. 평준(standardization)이 아니라 평등(equality)입니다. 하나의 잣대에 모두를 맞추려고 하는 건 무리이고 또 하나의 억압입니다. 평등이란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차별과 역차별이란 끝없는 말싸움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형제애(fraternity)입니다. 사랑(love)이 아니라 형제애입니다. 모든 차이에 눈감는 정의로운 사랑이 아니라 형과 아우라는 뚜렷한 차이가 있음에도 정다운 형제애입니다. 
저는 교사·학생·학부모가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여 함께 입시라는 최악의 억압에서 해방되고, 학생이 평준화가 아니라 평등하게 활짝 열린 교육의 기회를 누리고, 앞서 살아가는 선생과 뒤따라 사는 후생(학생)이 서로 정을 나누는 미래를 그립니다. 그런 미래에는 피비린내가 없지요.


그래서 혁명의 세 번째 조건은 혁명과정에 피비린내가 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육혁명은 훨훨 타오르는 횃불 들고 타도할 적을 밝혀내는 일이 아니라 잔잔한 등불 하나 들고 각자 자신의 마음 안을 비추는 일입니다. 

방법은 딱 한 가지입니다. 어른이 먼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형제애를 나누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말로 가르치면 따지고, 행동으로 보여주면 따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미래는 우리가 먼저 그 모습을 실천해야 이루어질 것입니다. 


저는 교육혁명에 동참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수업교안을 한 번 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저는 바로 옆 동료에게 커피 한 잔 타 주고자 합니다. 오늘 저는 학생에게 ‘안녕’ 인사말 한마디 먼저 건네고자 합니다. 나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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