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 1급 정교사 자격 취득 후 대학원에서 취득한 석사학위 이수성적을 1정 자격연수 성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A1. 「교육공무원인사관리규정」 제12조 제1항 제1호에 의거 교(원)감과정연수 응시대상자 순위명부작성 시 평정하는 자격연수는 ‘1급 정교사·전문상담교사 또는 1급 정교사 자격증 취득 후의 사서교사’로 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1급 정교사 자격 취득 후에 석사학위를 취득한 경우 대학원 이수성적을 1급 정교사 자격연수 성적으로 대체할 수 없습니다. 1급 정교사 자격연수 성적은 전문상담교사(1급) 또는 1급 정교사 자격증 취득 후의 사서교사 자격연수 점수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Q2. 교육경력 7년인 중등교사입니다. 교육경력 4년차 되는 해에 00교대 교육대학원에 입학하여 올 8월에 석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직 1정연수를 받지 않아 석사학위로 대체하려고 합니다. 석사학위로 1정자격연수를 대체할 수 있는지요? A2. 「초·중등교육법」 별표 2에 의거 초등학교 정교사(2급)자격증을 가지고 교육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자로서 1년 이상의 교육경력이 있는 자는 정교사(1급)자격기준에 부합됩니다. 선생님의 경우 위 요건에 부합되므로,
심영옥 | 경희대 겸임교수·미술사 기교 없는 무작위의 질서 창출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 돌이나 흙으로 소박하고 질박한 담장을 만들어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고 즐겁게 해 주었다. 담장을 쌓는 사람은 돌 크기나 흙 양을 미리 계산하지 않고,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쌓는 동안 질서를 찾아가며 담장을 표현하였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기교를 부리지 않으면서 무작위의 질서를 창출하는 지혜와 멋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담장은 한국인의 정서와 잘 어울려 소박하면서도 분방한 듯한 추상적인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 쌓은 돌 사이사이에는 사람들의 추억도 묻어주면서 욕심 없이 쌓은 돌들은 은근한 멋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면서 자신이 원하는 문양을 만들어 낸 것이 바로 꽃담이다. 대체로 담장치레만 보더라도 그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흙담은 흙담대로 돌담은 돌담대로 꽃담은 꽃담대로 궁궐과 민가의 얼굴 역할을 했다. 옛 궁궐의 꽃담은 화려한 것 같지만 야하지 않아 선비 같은 은근한 멋을 풍긴다. 이에 반해 일반가옥의 꽃담은 질박하면서도 분방한 멋을 느끼게 해 준다. 깨진 기왓장을 이용하여 투박한 솜씨로 토담에 꾹꾹 박아 놓은 기와담장이나 흙담
“사람은 일생동안 사랑을 합니다.” 며칠 전 TV에 나온 ‘이혼 전문’ 변호사가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이혼 전문 변호사 입에서 나온 말이어서 조금 어안이 벙벙해졌었지요. “말도 안 돼!” 그러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의 말은 사랑도 사람처럼 일생이 있어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일생에 빗대어 생로병사라 해도 좋고 삼라만상(森羅萬象)에 빗대어 성주괴공(城主魁公)이라 해도 좋겠지요. 누군가 때문에 가슴 두근거려 본 일이, 마지막 불꽃이 스러진 게 언제였던 지, 기억이 나시는지요. 자칭 애정학 박사라는 한 선배가 그러더군요. 혼자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실 때 떠오르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증거라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음악을 들을 때 같이 듣고 싶고, 맛있는 것은 같이 먹고 싶고, 재미있는 영화는 같이 보고 싶으며, 드라마를 볼 땐 그 사람도 이걸 보고 있을까 궁금해지는 거라고. 그래요. 그 말이 맞는 거 같습니다. 사랑을 할 때, 그는 길에도, 차안에도, 현관문에도, 사무실에도, 아침의 첫 커피 잔 바닥에도 저녁에 친구와 기울이는 술잔 바닥에도 있었습니다. 잠의 고갯마루를 넘는 순
박현정 |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지난 2005년도는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공교육이 60년째를 맞이하는 해였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한국전쟁, 4.19 혁명, 군사정권 주도하의 고도성장기, 87년 민주화 운동 이후의 급속한 민주주의의 진척, 88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 그리고 92년 문민정부, 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민의 정부, 현재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온갖 시련을 딛고 발전성과를 이루며 급속히 성장해왔다. 이제 우리나라는 GDP 규모가 6790억 달러로서 세계 11위에 이르고 있다(World Bank, 2005년 7월). 과거 해방 직후, 즉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후진국이었던 한국이 2005년도에는 거의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선 것이다. 이러한 경제의 양적, 질적인 성장 못지않게 해방 이후 60년 동안 교육 역시 비약적으로 성장해왔다. 우리나라는 2004년도에 중학교까지 전국적으로 무상의무교육을 실시하게 되었으며, 사실상 거의 모든 학생들이 고등학교까지 교육을 이수할 뿐만 아니라 대학 진학률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OECD 2006 교육지표). 그리고 지난 2003년도에 실시된 만 15세 학생을 대상으로
뭔가를 배우는 활동은 즐거운 ‘놀이’에 해당하는가 아니면 힘겨운 ‘노동’에 해당하는가? 아마도 사람에 따라 그 답이 달라질 것이다. 배우기를 즐기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에게는 배우는 활동이 놀이일 것이다. 배우기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배우는 활동은 힘겨운 노동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교육을 연구하며, 교육활동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모두가 배우는 일을 즐긴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워지며 풍요로워질까 생각하곤 한다. 미국에서 이루어진 한 조사에서, 지금하고 있는 일이 ‘일’처럼 생각되느냐 ‘놀이’처럼 생각되느냐 물어보았더니, 6학년 아이들이 학교 공부는 일 같고 운동 시합은 놀이 같다고 약속이나 한 듯이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아이들의 경우도 이러한 질문에 대해 크게 다르지 않게 대답할 것으로 생각된다. 오호 통재라. 왜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놀이가 아니라 일처럼 느껴진다는 말인가? 인간은 한편으로 누가 뭐래도 ‘배우는 존재’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이다. 인간이 배우는 활동을 놀이처럼 즐기는 것은 불가능한가? 인간은 본성적으로 배우는 것을 놀이처럼 즐기는 존재라고 필
나무, 새 2008년 4월! 한국인 최초 우주인이 러시아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납니다. 경쟁률만 18,000:1. 요즘엔 이벤트 상품으로 우주여행권도 등장하였으니 바야흐로 우주탐험이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실제 상황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옛사람들이 우주라고 여겼을 하늘을 바라봅니다. 저 멀고 높은 하늘세계에 우리 사람들이 근접할 수는 없을까? 옛사람들의 이러한 염원에 답하기라도 하듯 신수(神樹)가 등장했습니다. 시베리아의 세계수(World Tree)나 우주나무(Cosmic Tree), 단군신화의 신단수(神檀樹)가 그것입니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 나무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지상으로 내려오는 교통로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지금껏 산신제를 지내고, 당수나무에 제를 지내고, 무당들이 신대라는 대나무를 통해 신내림을 받는 것으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신성한 나무를 길게 잘라 만든 것이 바로 장대입니다. 나무나 장대가 신과 교감하는 통로였다면 나무 위에 앉아 있는 새는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전령입니다. 그래서인지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새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컸던 것 같습니다. 고구려의 상징인 삼족오(三足烏)는 태양 속에 사는 세 발 달린 까마귀입니다
박경민 | 역사 칼럼니스트(cafe.daum.net/parque) 근대로 가는 역사 구분의 전환점 우선 개념정리부터 필요하다. ‘소생’ 또는 ‘재생’을 뜻하는 프랑스어에서 유래된 ‘르네상스(Renaissance)’는 역사상 어느 특정사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구분을 뜻하는 말이다. 즉, 중세를 졸업하고 근대로 가는 역사 구분의 전환점에서 바로 르네상스가 동행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르네상스가 이탈리아 특히 북부지역에서 시작된 배경은 옛 로마제국 시대로부터의 유산을 직접적으로 물려받고 일찍부터 다른 유럽 국가보다도 도시 활동이 활발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십자군 운동기간에 이탈리아 상인들은 동방의 여러 나라와 접촉하여 고도로 발달되고, 아라비아의 과학이 접목된 그리스 자연과학 및 철학사상과 접할 수 있었으며 이때 그리스-로마신화가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당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적극적 후원자였던 교황들과 제후들은 미술과 문학 분야에 있어서 인문주의자의 활동을 마치 자기 일처럼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였는데, 특히 교황 율리우스 2세와 레오 10세, 피렌체의 메디치가(家), 밀라노의 비스콘티가(家)가 대표적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쟁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