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전 근무하면서 마음속에 남았던 기억을 되살리면서 자유로운 시간을 이용하여 구마모토를 찾기위해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에서 제공하는 냉수 한 잔을 마시는 사이에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했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올해로 92세를 맞이하신 할머니가 마중을 나오신 것이다. 자신의 몸도 가누시기 어려운데 이렇게 구마모토에서 나오신 것을 보니 눈물이 날 정도였다. 몸은 나이가 들어서 야위였지만 대화를 하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모진 세월 고향을 떠나 견디기 어려운 시간을 보내면서 자녀들 뒷바라지 하고, 삶을 유지하는 것 조차 힘드셨을텐데 오늘까지 건장하신 모습을 보면서내가 저 나이가 된다면 과연 가능할 것인가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 비결은 성서를 교과서로 삼고 매일 아침 세계, 아시아.일본, 한국을 가슴에 안고 한 시간 기도시간을 갖는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자녀들에게 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못하여 안타깝게 생각하고 재산도 유산으로 남기지 못하였노라 후회하지만 이 이야기를 들은 아들이 내가 지금 여기에 건강하게 살아있지 않느냐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전에는 깨닫지 못하여 행하지 못한 것을 몸으로 실천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 재일동
두 살이 된 손자 녀석이 추석명절이라며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와, 신나게 놀아야겠다.”고 외쳤다. 어린 눈에 창문 너머로 놀이터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눈에는 보이지도 않은 달팽이까지 찾아내어 "달팽이가 있다." 면서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아이의 눈에 놀이터가 비쳐서 놀겠다는 생각이 정확한 감동의 말로 표현된 것이다. 이전에 놀이터를 경험해 보지 않고 처음 만났다면 결코 이러한 감동은 표현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 어린 녀석에게 과거의 경험과 시각이 작용하여 핑크 빛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면 이같은 언어 표현도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 인간에게는 기쁨이라는 감정이 먼저 찾아온다. 우리는 맑은 가을 하늘을 바라보면서 감탄하고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 열매를 보면서 곧장 스마트폰을 꺼낸다. 그러나 이렇게 찍은 사진은 본질이 아니다. 내 마음에 일어난 기쁨이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사물을 보면 망막에 비친 것은 허상에 불과하며 이를 지각하고 감정이 먼저 움직인다. 이때 어떤 사람, 어떤 사물, 어떤 사건이 우리 시선에 의미있는 것으로 경험될 때 감정이 움직이게 되면서 관심의 다발이 되어 축적 된다. 그래서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
우리는 무슨 일을 계획하면서 과연 잘 해 낼 것인가라는 두려움을 갖고 살아간다. 학창 시절 높이뛰기나 멀리뛰기를 시도할 때 ‘과연 할 수 있을까’ 라면서 의심한 경우 성공했던 기억이 거의 없다. 자신도 모르게 심리적 한계를 긋고, 그 한계가 몸을 움츠러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포츠 선수들은 도전 과제를 앞에 두고 “나는 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자기 주문을 건다고 한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관건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운동선수들은 삶의 한 계단을 더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 생각할 수 있다. 삶의 여정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를 가졌다. 정년은 하였지만 지금도 1학년 학생들과 1주일 한 번 만나는 기회를 갖고 이 학생들에게는 내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여러 인물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특수교육을 하면서 보통 사람들이 만나기 쉽지 않은 분들을 만났다. 몇해 전 돌아가신 강영우 박사와 정유선 교수다. 강영우 박사님은 내가 특수교육을 전공하면서 대구에서 처음 만난 분이다. 두 사람에겐 공통점이 많다. 우선 두 사람 모두 장애를 극복하고 놀라운 성취를 이뤄낸 입지전적 인물이시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은 이렇다. “ 모든 행복한 가정은 닮았고, 불행한 가정은 제 나름대로 불행하다.” 건강하게 사는 일, 공부를 잘 하는 일도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잘 되는 것들은 서로 닮은 이유로 잘 된다. 공부에도 기본적으로 바탕이 되는 것이 성실성이다. 이 성실성이야말로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잠재력을 의미하는 ‘공부력’의 핵심 요소다. 성실성을 키우려면 자녀의 작은 실천이나 성취에도 부모가 아낌없이 칭찬을 해주는 것이 좋다. 그러나 현실은 다음과 같다. “우리 애는 ‘지금부터 공부할 테니 조용히 해 달라’고 방에 들어가서는 침대에 누워 빈둥대고 있어요. ‘공부한다더니 뭐하느냐’고 하면 넉살 좋게 ‘배운 걸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중’이라며 공부는 앉아서만 하는 게 아니래요. 말은 잘해요. 주변에서는 성격 좋고 친구도 많으니 부럽다는데 말만 번지르르 하게 하고 할 일은 제대로 안 하는 게 답답해요.” 이것이 바로 공부 안하는 머리 아픈 엄마들의 속 마음이다. 올해 고2가 된 한 어머니는 딸을 가리켜 ‘말로만 전교 1등’이라고 했다. 장래 희망이나 공부 계획은 장황하게 말하지만 정작 실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간단한 학습 검사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83년 하반기 대한민국은 이 주제가로 날밤을 새우며 눈물바다가 됐다. 내가 이 방송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지도 벌써 3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KBS가 한국전쟁 33주년과 휴전협정 30주년을 맞아 기획한 대형 생방송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인간 드라마를 쓰면서 한민족의 분단 비극을 전 세계에 알렸다. 83년 6월 30일 밤 10시15분부터 11월 14일 새벽 4시까지 138일간 총 453시간45분 동안 생방송한 비디오 녹화원본 테이프가 463개에 이르고, 담당 제작진의 업무수첩과 이산가족이 작성한 신청서, 사진 등 2만522건이 5개월여 대장정의 기록으로 남았다. 냉전체제를 60여 년 안고 가는 한반도의 아픔을 생생하게 드러낸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됐다. 국가를 초월해 세계사를 이해하는 데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이 중요한 기록물로 평가받았다. 유네스코는 이 생방송이 전쟁과 분단의 참상을 전 세계에 고발하고 인권과 보편적 인류애를 고취시킨 생생한 기록물임을 평가했다. 그런가 하면 한국국학진흥원에서 보존·관리하고 있는 책판은 305개 문중에서 기탁한 718종 6만4226장이다. 국가
갈수록 취업의 문은 좁아지고 기술은 발전하여 단순한 육체노동은 기계가 빼앗아 가는 등 일의 세계가 변하고 있다. 그렇지만 전혀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좁은 문이라도 완전히 닫힌 세상은 아닌 것 같다. 지난해 11월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선정하는 기능 한국인에 뽑힌 김영호(50)씨는 영진하이텍 대표이사다. 연매출이 260억원인 강소기업이다. 이 업체가 개발한 세계에서 가장 작은 진동모터는 자동차나 휴대폰과 같은 전자제품의 필수 부품으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구미전자공고에 다니다 실습생으로 회사에 입사해 기술을 배웠다. 여기서 그는 장비 소프트웨어 전문가로 입지를 다졌다. 이 기술로 1997년 회사를 설립했다. 김 대표는 “기술이든 공부든 하겠다는 집념이 중요하다”며 “끝까지 책임지려고 노력하다 보면 결국 원하는 것을 얻는다”고 말했다. 김 대표처럼 기능한국인으로 선정된 사람은 지난 달까지 99명이다. 이달에 100번째 기능한국인이 나온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그동안 선정된 이달의 기능한국인 70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 한 해 1억 이상 버는 사람이 10명 중 6명에 달했다. 77%가 자영업을 하고, 나머지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이들의 스펙은
오늘은 한글날이다. 한글을 통하여 한국인은 문맹이 없는 국가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문맹을 벗어났다고 해서 자만할 것은 아니요 한글을 통하여 국민의 지적인 수준을 향상시켜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그러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바로 독서하는 것이다. 지금은 계절적으로 덥지도 춥지도 않아 책 읽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그런데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좋은 시설을 갖춘 도서관에 가 보면 거의 텅 비어있는모습이 안타깝다. 어느 곳 무엇인가가 우리는 부르는 소리가 많아서 그 무엇에 홀려 있기에 도서관은 멀리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이 무엇으로 가득 차있는가를 알기가 쉽지않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책도 팔리지 않아 출판사들이 문을 닫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어제 만난 시인 용혜원씨는 "항상 하는 말만 반복하니 싫어한다면서 책좀 읽으라."고 권고하고 있다. 책도 영화도 보면 우리의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미 영화 '광해'를 통하여상당히 알고 있는 인물광해군은 임금이 되면 어떻게 백성들을 다스리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 이미 경험하였다. 그는 임진왜란으로 선조와 광해군으로 조정을 둘로 나눠 국사를 처리를 한 것이었다. 전쟁 중에 나라
한일간에는 역사적으로 교류가 빈번하였으며 문화적으로도 거리가 가까운 나라이다. 얼굴도 거의 비슷하지만 삶의 모습, 문화면에서는 상당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차이 속에서 상호간 이해를 도모하고 친선을 위한 가교역할을 위한 사람들이 있다. 그 분이 바로 후쿠오카시 동하코자키공민관 관장이다. 올해로 72세인 그는 젊은이들에게는 물론 지역 주민들에게도 평상시부터 한일간 이해를 위한 강좌를 개설하는 등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일본 지역주민들에게교류기회를 만들었다. 한국요리를 통한 지역민의 교류와 유학생들과의 교류, 그리고 한글 이해를 위한 장을 만들어 냈다. 이 지역은 공민관이 중심이 되어 한국 중학생들과 교류를 추진하여 지역 활성화에 공헌하고 있다. 또한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기관이 후쿠오카 시립하코자키중학교이다. 지난 1월 한국 중학생 3명을 필자가 인솔하여 갔을 때, 주민 60여명이 참여하여 일본요리를 만들어 융숭한 대접을 받았고 일본 전통문화 공연도 하였다. 올 4월에는 사전 답사차 이곳을 방문하였고 8월에는 학생들을 손수 인솔하는 모범을 보이신 분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다양한 교류를 계획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한일양국 주민이 상
취업 시즌이 다가 왔다. 취업을 앞둔 학생들이 언제라고 마음 편했을까만 명문대 학생이라도 열 군데 가까이 지원해야 취업이 될까 말까 한 각박한 현실이우리 앞에 놓여 있다. 중위권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이러다 인생의 낙오자가 될까 가슴 졸이며 수십 장의 지원서와 자기소개서를 쓴다. 얼마 전 한 학생이 이렇게 하면서까지 번듯한 직장에 꼭 다녀야 할 것인가를 물었다. 그렇다. 성서 창세기에서 인간을 규정한 것이 "네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고..."이다. 이 법칙을 벗어날 수 없다. 인생의 바다는 더 넓다. 큰 풍랑이 일고 있다. 젊은 시절에 인생의 그물을 잘 만들기 위하여 땀이 필요하다. 그것이 공부였다. 그러나 잘 못하면 이런 준비가 되지 않게 된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행복과 출세는 다른 게 아니냐,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면 안 되느냐?"고 비장하게 물었다. 십 년 전만 같았으면 당당하게 대답했을 것이다. 꿈을 좇아 살라고. 예순을 넘은 나는 꿈을 좇아 사는 아름다움을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차마 그러라고 용기를 북돋워줄 수 없었다. 꿈을 좇다 낙오자가 되거나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사람을 여럿 보았기 때문이다. 살아보니 꿈을 좇으며
한·중·일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멀게 느껴지고 있는 것이 있다면 노벨상이다. 언젠가는 우리나라에도 그기회가 오겠지만 한·중·일 3개국 중에서 한국만 과학 분야 노벨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제 발표된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투유유 중국 중의학연구원 교수가 선정돼 중국은 58년 만에 과학 분야 노벨상을 배출하게 됐다. 이같은 현실을 보면서 우리가 학문분야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되돌아 볼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일본은 오무라 사토시 기타자토대 명예교수가 투유유 교수와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고, 어제는 가지타 다카아키 도쿄대 교수가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과학 분야 수상자를 21명으로 늘렸다. 일본은 2년 연속 노벨 물리학상을 거머쥔 데다 이틀 연속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해 지금 일본 방송은 이 사실을 방송하는데 시간을 배려하고 있으며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다. 동아시아에서 한국만 노벨상을 받지 못한 데 대해 국내 과학자들은 단기 실적 위주인 쉬운 연구에만 치중한 데 따른 ‘자업자득’이라고 평가한다. 탁월한 성과를 내려면 성공률이 낮고 실패가 반복되는 창조적 연구에 오랜 시간 매달려야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
교육도 하나의 활동이다. 그 결과가 항상 주목된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평가에 주목하게 된다. 그러나 평가방식이 공장에서 만드는 물건 생산과정과는 달라야 한다. 협력적이며 배움 중심의 교육을 실시하면서도 국가 간 학업성취도 비교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고 있는 핀란드의 부모들은 자녀를 가르치려는 욕심이 없을까? 핀란드 부모들 역시 한국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자녀가 좋은 대학에 가기를 원했고 더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을 바라고 있다.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의 아이 가르치는 욕심은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다른 것일까? 교육제도 안에서 모든 것이 이뤄지다 보니 부모들은 하고 싶어도 자녀의 학업에 관여할 수 없게 되어 있다. 핀란드에서는 부모들의 욕망이 자녀의 학업에 개입할 여지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지, 예체능 영역처럼 사적인 선택 부분에서만 부모가 관여할 수 있는 구조이다. 표준화된 시험이 강조될수록, 객관식 평가가 우선할수록, 절대평가보다 상대평가가 우선할수록 교사의 수업 내용과 무관하게 사교육이 개입할 여지는 더 커진다. 학생 개개인의 배움보다는 수량화된 점수와 순위가 강조된다. 핀란드의 부모들이 학업에 개입할 수 없는 이유
소진아, 지난 번 광양여고에 갔는데 그날은 모의고사를 보는 날이어서 윤영훈 교장 선생님과 이야기만 나누고 돌아왔단다. 넌 어디를 지망하고 있는지? 네가 영어로 네 꿈을 이야기하여 나에게 가져 왔는데 기억하고 있겠지. 네가 수시를 지원한다면 도움이 될까 생각하여 몇 자 적어 보낸다. 올해 수시모집에서 논술 전형을 실시하는 대학은 소폭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상위권 대학을 중심으로 논술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전형요소이다. 특히 올해는 논술 전형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 최저학력 기준을 없애거나 학교생활기록부 반영 비율을 줄인 대학이 많아 논술의 영향력이 더 커졌다. 논술은 대학마다 출제 과목과 문제 유형이 다르기 때문에 무엇보다 해당 대학의 특징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 대학이 6∼8월에 걸쳐 실시한 모의 논술 문제는 올해 실전 논술고사에서 수험생이 지원하려는 대학의 출제 경향을 가늠할 수 있는 요소가 될 것이다. 최근 대학들이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2016학년도 모의논술 문항과 해설, 채점 기준 등을 보면 올해 논술은 고교 교육과정 내에서 종합적인 사고력을 요구하는 문항이 대세를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올해 논술고사는 사교육영향 평가가 적용될 예정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남보다 뛰어난 자녀, 즉 영재나 수재를 둔 부모는 얼마나 행복하겠느냐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런데 김 모군(18)은 중학교 때까지 수재로 유명했다. 중학교 2학년 무렵 토익은 만점을 받았고, 영문 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과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를 술술 읽었다. 매일 밤 정해진 시간엔 CNN을 들었다. 수학도 잘했다. 고교 과정은 이미 한 번 훑었고, 고3 수험생도 쩔쩔매는 심화 문제도 풀어냈다. 김군 부모님은 자신이 짜놓은 빼곡한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는 아들이 자랑스러웠고, 주변 사람들도 그를 부러워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들어간 아들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학원을 마치고 돌아온 김군은 "내가 공부하는 기계냐"고 소리쳤고, 이후 공부에서 손을 놨다. 학원 대신 PC방을 찾기 시작했고, 집에 오면 방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스 신화의 시시포스처럼 사교육이라는 바위를 10여 년간 쉬지 않고 밀어 올리다 지친 김군은 결국 학교를 자퇴하고 지금은 검정고시를 준비 중이다. 김군 부모는 "아들이 머리가 좋아 일찌감치 선행학습을 시켰는데 너무 일찍 시작해 일찍 지쳐버린 것 같다"고 후회했다. 이처럼 아이들이 시들어가고 있다. 김군처럼 공부를 잘
나는 가끔만난 아이들에게 약간의 시간 여유와 돈이 생기면 뭘 하겠는냐고 묻곤한다. 상당수의 학생들이 여행을 꼽았다. 이처럼 사람들은 왜 여행을 좋아할까? 여행은 우리에게 일상의 반복으로부터 탈출하는 기쁨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은 또한 시간과 돈과 마음의 여유를 필요로 한다. 시급히 해결하여야 할 일이 있는데 이를 남겨 두고 온다면 어느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이는 인간 마음이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아름다운 장면뿐 아니라 힘겨운 삶의 모습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아픈 장면들을 많이 목격하게 된다. 집시들이 어린 자식들의 손을 잡고 하루종일 구걸하는 모습, 어린아이에게 광장에서 악기 연주를 시켜 돈을 버는 어른들, 쓰레기통에 버려진 페트병과 캔을 뒤져 연명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우리는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 여행을 떠나지만, 막상 우리 힘으로 열심히 길을 찾아 떠나는 여행 중에 만날 확률이 더욱 높은 것은 비참한 존재들, 두려운 존재들, 가슴 시린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편안한 패키지 여행이 아닌 온갖 고생문이 활짝 열린 자유여행을 고집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 삶과 가장 닮았기 때문이리라. 원하는 것, 입맛에 딱 맞
내가 가르친 한 제자가 어느덧 11년차 직장인이 됐다는 것이다. 이 제자는 가끔 기회가 되면 만나기에 자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주중에는 여느 직장인처럼 한강 이남의 집과 종로의 사무실을 오가며 출퇴근 전쟁을 치르고, 주말이면 세 살 딸아이의 재롱을 보는 것이 즐거움인 평범한 가장이 되었다니 참다행이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결혼했지만 지난해 내 집 마련에 성공해 주변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요즘 부동산 시장에 화색이 돈다는 소식이 들리니 주변에서는 좋겠다고들 하지만, 집은 투자 대상이 아니라 모든 식구가 함께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중간에 이직을 한 적도 없다 보니 그동안 퇴직금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집을 사게 되면서 은행 대출을 받았고, 그래도 부족해 퇴직금 중간정산을 받게 되면서 퇴직금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니 역시 나이가 들어가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그는 안정된 가족의 보금자리 마련을 위해 중간정산을 받기는 했지만, 퇴직금이 직장인들의 최후의 보루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니 나름 경제교육을 잘 받은 셈이다. 퇴직금은 직장생활을 끝내고 다음 단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