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맨발의 꿈 촉망 받던 축구선수 원광은 동티모르에서 커피장사로 대박을 꿈꾸다 사기를 당하고 만다. 원광은 실망하여 친구 인기를 찾아갔다. 원광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넋두리를 한다. 이야기를 들은 인기는 동티모르를 떠날 것을 권유한다. 원광은 귀국하기로 마음먹었다. 공항으로 가는 길, 그러나 눈을 멈추게 하는 것이 있었다. 차창가 맨발로 공을 차는 아이들이다. ‘맞아. 저 아이들에게 축구화를 팔면 돼. 잃어버린 돈이 얼만데, 이대로 갈 수는 없어.’ 성공을 확신한 원광은 짝퉁 축구용품점을 차리고 아이들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그러나 찾아오는 아이들은 있어도 축구화를 살 아이들은 없다. 아이들에게는 축구화가 그림의 떡이다. 마침내 원광은 짝퉁 축구화도 살 돈 없는 아이에게 하루 1달러씩 2개월 동안 할부판매를 한다. 하지만 아이들과의 계약은 세상에서 가장 지키기 힘든 약속이 되고 만다. 원광의 권유에 축구화를 구입한 아이들은 열심히 돈을 벌지만 하루 1달러는 너무 큰돈이다. 어떤 아이들은 돈을 마련하지 못해 1달러 대신, 닭 한 마리가 오가고 그것도 여의치 못해져 축구화는 반납되고 원광은 가게를 접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원광은 축구팀
1. Sister Act : 라스베이거스의 삼류 가수, 들로리스는 유부남, 빈스와 내연의 관계다. 어느 날 들로리스는 빈스가 살인을 지시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한편 잔인한 범죄조직 보스인 빈스를 잡으려던 형사반장 에디는 들로리스에게 증언을 부탁한다. 이때부터 들로리스는 빈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형사반장 에디는 공판이 열리기까지 두 달 간 들로리스를 보호하기 위해 신부를 통해 성 캐더린 수녀원 피신을 부탁한다. 수녀원 원장은 들로리스의 단정치 못한 외양을 보고 거절하지만 신부의 간곡한 설득과 서더 반장의 기부금 약속을 받고는 승낙하고 만다. 이렇게 하여 들로리스는 수녀원으로 들어가고 수녀원 원장은 클라렌스 수녀라고 소개한다. 졸지에 수녀가 된 들로리스는 수녀로서 3대 규율인 절제, 순종, 순결을 지켜야 한다. 이때부터 들로리스는 원장 수녀의 감시 하에 성 캐더린 수녀원 생활을 한다. 하지만 찬송가도 부르고 기도도 해야 한다. 수녀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그녀는 말썽만 피우며 힘든 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성가대의 지휘봉이 그녀에게 쥐어진다. 그녀는 카지노 가수 출신답게 화끈한 노래와 율동으로 성가대를 지휘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들로리스는 침체된
늘어나는 이혼율과 노인 고독사 이야기는 어제 이야기가 아닌 우리사회 일상이다. 존속살인 이야기도 뉴스거리를 자주 장식한다. 뿐만 아니라 결혼을 기피하고 독신자로 사는 것이 평상의 모습이다. 가정 붕괴는 이렇게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이 시대 효 교육은 어쩌면 사치품인지 모른다. 하지만 효는 가정의 근본이다. 성경에 나온 말처럼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는 일은 가정에서부터다. 가정의 회복 없이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시대 효 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흔히 효(孝)하면 맹자왈(孟子曰), 공자왈(孔子曰)처럼 위에서 아래로 하는 가르침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맹자왈(孟子曰)을 말하기 전에 아이들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도록 만든 책임은 어른에게 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 부모들은 자녀의 미래에 대해 너무 불안해하고 걱정한다. 그 결과 교육만이 답이라고 오로지 성적에 매달려왔다. 늘어나는 사교육비는 부모와 자녀의 고통을 함께 늘려주는 일이 되고 아이 낳기를 꺼린다. 뿐만 아니라 사교육비 충당을 어머니까지 위해 직업전선으로 나간다. 결과는 가족과 함께하는 식탁이 사라지고 대화는 사라져갔다. 아이는 텅 빈 집에
올해는 인성교육 실천 운동의 해다.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인성교육진흥법안을 실천하는 해인 것이다. 인성교육은 매년 되풀이되는 구호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현장에 있는 학교폭력, 자아존중감, 행복지수, 어른공경, 스승공경, 공동체의식 등 그늘을 없애야 한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입시와 같은 성과지향적인 학업관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 이에 우리는 학생들의 학업관을 바꾸고 사회 구조도 기본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교육도 그렇다. 시험에 나타난 결과보다 종합적인 능력을 갖는 사람만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고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원하는 삶을 성취할 수 있는 것도 인성이 바탕에 있으며 공동체를 대하는 삶의 태도도 인성에서 나온다. 따라서 우리 교육은 많이 가르쳐 시험에 합격시키는 것에서 자아실현과 사회 구성원으로서 바람직하고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하는 태도를 기르도록 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과지향적인 좌뇌교육이 아니라 우뇌교육에 더욱 충실해야 한다. 우뇌교육은 뇌교육 단체에서 부르짓는 구호가 아니다. 교육 내용을 우뇌활동 중심으로 재편하여 운용하자는 것이다. 우뇌교육은 감성에 호소하는 교육이다. 한권의 위인전을 읽거나
대다수 부모들은 자녀를 키우면서 상급학교(대학) 진학에 모든 것을 건다. 대학시험 결과가 자녀교육 성공의 척도가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대학입시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 대입시험을 정점으로 참고서, 온라인 강의 등 사교육 시장은 발달하고 대치동으로 대변되는 학원시장은 다른 나라까지 수출된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들은 사교육비 때문에 대책 없는 노후를 맞이하고 늘어나는 빚더미에 신음한다. 역대 정권은 늘 사교육 없는 나라, 대입시험의 고통을 들어준다고 정책을 바꿔보지만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생들, 정말 공부를 잘 할까? 지식강국 대열에 들어갈 자격이 될까? 노벨상 수상자 수를 살펴보면 ‘아니올시다.’라고밖에 할 수 없다. 전공대로 진로를 정한 사람을 살펴보아도 ‘아니올시다.’, ‘성인 독서 인구를 살펴봐도 ’아니올시다.‘ 이렇게 우리는 정작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 인성교육도 그렇다. 이제는 변해야 한다. 교육이 변해야 한다. 부모들도 변해야 하고 자녀들도 변해야 한다. 시험을 잘 치루는 기능인보다 하고 싶은 공부를 잘 하는 사람, 인성 좋은 사람이 행복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 인성이 결여된 사람이 기업을 이끌 때는 존립마저 어렵게 만든다.
을미년(乙未年), 양띠 해가 왔다. 고래로 인류는 양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동양에서는 한자어를 통해 양과 밀접한 관계를 유추해볼 수 있다. 양은 천지신명이나 종묘에 제사지낼 때 올렸다고 한다. 양(羊)자와 결합된 한자어 가운데 아름다울 미(美)자는 큰 양이라는 뜻(羊+大=美)이다. 즉 제사에 쓰일 양은 클수록 보기에 좋다는 뜻이다. 상스러울 상(祥)자도 양(羊) 머리를 제물(示 ; 제단을 본 뜬 글자)로 바치면 길하고 복된 일이 생긴다고 믿었던 데서 파생됐다. (羊+示=祥) 자세할 상(詳)자도 양(羊)을 제물로 바치고 신에게 말할(言) 때 숨기지 말고 말해야 한다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羊+言=詳) 착할 선(善)자는 ‘제사를 마치고 양고기를 나눠 먹으면 성질이 착해진다.’에서 유래했다. (羊+口=善) 양은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무리지어 생활을 하는데 이에 유래한 한자가 무리 군(群)자이다. (羊+君=群) 양은 속이거나 해치지 않아 의로움을 상징하며(羊+我=義), 가축으로 소중한 식량자원을 상징한다. (羊+食=養) 이렇게 양은 특별히 제사와 관련하여 쓰임을 받은 동물이다. 양이 인류와 함께 가축으로 살아온 역사가 오래 되었지만 특별히 제사에 쓰임을 받은 이유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대학수학능력 시험 출제방식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 수능출제 시스템 문제를 언급했다. 사실 이번 수능 오류는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먼저 EBS 교재부터 그렇다. 신문사 보도에 의하면 올해 초부터 지난 4월까지 4개월 동안 EBS 교재에 대해 모두 898건의 오류가 제기됐지만 제대로 수정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출제의 과정도 그렇다. 오류투성이 EBS 교재를 바탕으로 출제위원들이 외부와 격리하여 보름 만에 수능 문제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수능문제의 출제 오류가 늘어가는 이유가 여기에 숨어있다. 매년 이런 방식으로 수능문제를 출제하다보니 정답이 두 개인 문항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여 학생을 보내는 학부모나 고등학교, 받아들이는 대학교 모두 입학시험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또한 수능이라는 시험 불신은 학교교육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EBS 강의 내용을 수능에 대폭 반영하도록 한 것은 이명박 정부시절 늘어나는 사교육 대체재로서 30%에서 70%로 끌어올리도록 한데서 생긴 일이다. 그때부터 EBS 강의 내용을 따라하는 학교가 경쟁적으로 늘어 일선학교 교육이 파행적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고등
누구나 훌륭한 글을 쓰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좋은 글을 쓸 수는 없다. 훌륭한 글쓰기는 타고난 것이 아니라 평소 많이 써본 사람만이 쓸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글쓰기를 생활화해야 하는 것이다. 요즘은 사생활 보호차원에서 학교에서 일기쓰기를 검열하는 것은 인권침해가 된다고 하여 쓰기를 않는 아이들이 많다. 더구나 스마트기기가 생활을 점유하여 공책정리가 사라지고 손으로 글을 쓰는 것도 점점 멀어지고 있다. 예전 같으면 자녀로부터 편지글을 받아보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었지만 요즘은 편지대신 이메일이나 메시지로 주고받는 것이 훨씬 많다. 이렇게 글쓰기가 사라지면 문학적 작품을 쓰는 힘이 줄어들어 수준 높은 문화콘텐츠를 만들기 어렵게 된다. 또한 보고서, 연구물 작성, 다른 사람 앞에서 하는 연설, 발표, 프리젠테이션 등 여러 분야의 기본 능력도 글쓰기다. 이렇게 글쓰기는 문화생활을 영위하는 수단이며 사회생활에서 성공하는 열쇠다. 글쓰기 생활화를 위해 가장 쉽게 하는 일이 일기쓰기다. 좋은 일기란 무엇일까? 일기 쓰기는 역사적 사실의 기록, 인물의 자취를 살피는데 중요한 기록물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를 통해 전쟁과 나치의 잔학상을 살
1. 줄거리와 구성 주제와 소재, 그리고 작품의 제목이 결정되고 나면 뼈대 만들기인 구상에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는 줄거리(스토리)와 구성(플롯), 문체, 인물의 심리 묘사와 갈등 양상이 다루어지게 되는데, 가장 먼저 줄거리가 결정되어야 한다. 줄거리는 단편적인 사건의 나열이지만, 구성(플롯)은 장면과 장면, 사건과 사건 사이에 인과관계를 설정하여 작품의 리얼리티를 살리는 일이다. 나의 경우 시간 순서에 따라 장면과 사건의 줄거리를 적어놓다. 그런 다음 인과관계를 생각하며 장면과 장면, 사건과 사건을 이리저리 맞춘다. 또한 리얼리티를 살리면서 문학적 상상력과 감수성을 소진한다. 나의 동화 ‘춤의 요정’에 나오는 ‘울보 동생’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내 동생은 내가 다니는 병설유치원에 다닌다. 하지만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 난리를 치른다. 나는 이런 동생 때문에 공연히 다른 유치원 아이도 미워진다. ① 내 동생은 내가 다니는 병설유치원에 다니는데 아침마다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한다. ② 오늘도 엄마는 동생을 떼어놓느라고 한바탕 했다. ③ 병설유치원 선생님이 오셔서 달래 겨우 울음을 그치고 교실로 들어갔다. ④ 쉬는 시간에도 동생이 울까 봐 유치원으로 눈길을 보냈다
세상의 모든 문학작품은 스토리를 벗어날 수 없다. 스토리(Story)는 읽는 자체로 즐거움을 주지만 오랫동안 기억에 남도록 만든다. 스토리는 어떤 글일까? 시, 일기, 편지 등 간단한 글도 스토리가 들어가지만 긴 글 즉 장편동화나 소설은 대표적인 스토리 글이다. 스토리 글은 어떻게 써야 할까? 주제와 소재, 제목이 결정되면 줄거리를 짜는 구상에 들어간다. 줄거리(스토리)와 구성(플롯)의 관계를 설명한다면 줄거리는 물리적이고 단편적인 사건의 나열이지만, 구성(플롯)은 장면과 장면, 사건과 사건 사이에 인과 관계를 설정하여 작품의 리얼리티를 살리는 일이다. 이야기를 구성할 때는 인물, 사건, 배경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세 가지를 이야기의 3요소라고도 한다. 이 세 가지가 인과관계로 얽혀질 때 작품의 리얼리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작품의 ‘리얼리티’라는 것은 실제로 있는 것이라고 느끼도록 하는 일이다. 그래야 읽는 사람들이 사실인 것처럼 착각하여 글 속의 장면으로 빠져든다. 그러므로 리얼리티는 읽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설득력이다. 흔히 리얼리티는 사실적인 글에만 필요한 것인 줄 알지만 해리포터나 오즈의 마법사와 같은 판타지도 리얼리티를 이용하여 써야 한다.
글을 쓸 때 무엇에 대해 쓸까 분명하게 정해야 한다. 막연하게 글을 시작하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슨 말인지 모를 때가 많다. 예컨대 매일같이 쓰는 일기에 대해 오늘은 무슨 일을 정해 쓸까 확실하면 훨씬 좋은 일기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무엇을 쓸 것인가에는 다음의 세 가지 차원이 있다. 무엇을 소재로 할 것인가? 무엇을 제재로 삼을 것인가? 주제는 무엇으로 할 것인가? 소재란 이야깃거리다. 이야깃거리란 작품의 바탕이 되는 재료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 어떠한 설명이나 해석이 들어가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이야깃거리가 정해지면 무엇을 중심으로 써야할지 고민을 갖게 된다. 이것을 제재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제재란 소재가 가진 속성 중 글쓴이가 주로 관심을 갖고 주목하는 중심적인 것을 말한다. 그리고 주제란 글쓴이가 글 전체적으로 어떤 의미나 가치를 내세워 중심적인 의미나 사상으로 삼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정리하면 소재란 작품의 바탕이 되는 재료로서 환경, 사람들의 생활, 행동, 감정 따위가 모두 될 수 있다. 이에 비해 제재(題材)란 글을 쓰는 바탕이 되는 소재 중에서 주제나 제목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를 말한다. 따라서 소재 중에서 중심이 되는
글짓기를 잘 하려면 이야기를 잘 만들어야 한다. 이야기를 스토리(Story)라고도 한다. 스토리란 주위에 널려있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혹은 할머니) 무릎에 누워 듣던 옛날이야기나 이솝 우화가 스토리다. 아이는 할아버지가 하시던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이야기에 취해 눈이 반쯤 감기면 자장가를 들으며 꿈나라 여행을 가고는 했다. 매일같이 들었던 이야기나 자장가라도 말이다. 이렇게 아이들은 스토리를 먹으며 자랐다. 옛날이야기든, 라디오 연속 방송극이건 말이다. 세상은 스토리를 벗어나서 살 수가 없다. 적게는 가족의 역사가 그렇고 한 국가의 역사, 다큐멘터리, 위인전의 이야기도 스토리다. 스토리는 역사, 다큐, 위인전 등 비문학적인 글에 차용되지만 노래나 시, 소설이나 동화, 드라마 등 문학적 글도 스토리로 만들어야 한다. 스토리를 벗어나 글짓기나 글쓰기를 말할 수는 없다. 문학에서 스토리(story)는 ‘글로 된 작품을 어떻게 만들까’ 하는 고민이다. 그것은 이야기가 들어있는 사상이나 생각을 전달하는 형식에 대한 문제다. 이야기 만드는 형식을 플롯(plot)이라고 한다. 플롯(plot)이라는 것은 소설이나 동화, 시나리오, 만화 등 픽션에서 작가
요즘 우리의 언어생활 뉴스가 자주 나온다. 우리나라 언어파괴는 정치인, 경제인, 연예인 가릴 것 없는데 그 중 청소년 언어파괴가 가장 심각한 것이라는 것이다. TV 뉴스나 신문 기사 등에 나온 10대들의 언어사용 실태를 보면 깜짝 놀랄 만하다. 10대들의 언어 사용은 같은 세대끼리도 서로 이해 못 하는 암호에 가까운 축약형 합성어가 많고 말뜻도 거칠어지고 비속화되고 있으며 욕설로 변해가기도 한다. 얼마전 기사에 소개된 청소년들의 암호에 가까운 대화를 살펴보자. “셤 때문에 엄마가 전화 와서 심쿵했어. 이번 셤 솔까 개 짱났음. 이러다 대학 입학 광탈할 것 같아.” (시험 점수 때문 엄마한테 전화 연락 받고 심장이 두근거렸어. 이번 시험 솔직히 너무 어려워서 짜증났어. 대학입학 시험, 불합격 할 것 같아.) 최근 급속히 일어나는 청소년들의 언어파괴는 심각한 단면이다.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가장 큰 이유는 눈을 마주치고 대화하는 건강한 정서적 교류가 사라지고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통한 정보교류 의존 때문인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앉아서 배우는 대학입시 중심의 공부에 시달리고 있다. 즉 체육활동이 부족하여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공부와 생활을 지배하고 있
우리나라 청소년 행복지수는 다른 나라보다 매우 낮다. 연이어 보도되는 청소년 자살 뉴스만 봐도 그렇다. 확실히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행복하지도 못하며 인성교육에 문제가 많다. 이 많은 문제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학교교육이 바로 가지 않아 생기는 문제일까? 우리나라 교육하면 PISA 점수로 자랑하는데 따져보면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젊은이들의 자아존중감, 공동체 의식, 효 의식, 자기효능감 등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말이다. 그 때문 자살률이 높고 행복지수가 떨어지고 군에서 하는 ‘관심사병’이라는 말도 들린다. 결과주의 교육, 입시중심의 교육을 향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정의 교육적 기능도 미약하기 그지없다. 이혼율이 그렇고, 결혼과 아이 낳는 일을 기피하여 1인 가족이 늘고 가족공동체의식이 미약해져가는 것이 그렇다. 맞벌이 부모, 다문화가정, 조손가족, 한부모 가정, 재혼가정 증가 등 아이의 정서적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가정 기능 미약으로 학교 교육이 황폐화되고 있다. 이 때문 학교는 점점 가르치기 어려운 곳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권의 잣대로 학생 생활지도를 해결하려 하기 때문 힘들어지는 것이다. 권리 찾기를 법이나 규정을 만들어 해결하
요즘 들어 학부모 민원에 시달리는 학교가 많다. 사소한 문제로 생기는 민원은 초등학교가 많고 상급학교로 올라갈수록 진학이나 성적 등과 관련한 민원이 많아진다. 초등학교 민원의 경우 생활지도에서 일어나는 짝과의 갈등이 주류를 이루고 중고등학교의 경우 가출 청소년 등 학교 폭력과 관련한 문제, 평가 결과에 대한 불만족 등이 많다. 모든 학부모들은 학교를 대상으로 민원을 제기고 도움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민원으로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려고 하는 학부모보다 문제를 야기하여 학교를 힘들게 하는 부모들은 특별한 경우가 더 많다. 민원으로 학교를 힘들게 하는 부모 유형을 살펴보면 학교에 대한 무관심형, 과잉기대형, 과잉보호형, 그리고 막무가내형을 들 수 있다. 무관심형 학부모들은 자녀와 의사소통 시간이 부족하며 교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심지어 자녀의 학급, 담임선생님의 이름, 짝의 이름, 자녀가 잘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가 많다. 이런 학부모들에게는 가정통신문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 일어나는 민원이 있다. 필자가 근무한 학교의 병설유치원에도 그런 학부모가 있었다. 민원의 내용은 전화 불친절, 그러니까 유치원에 자녀를 둔 학부모인데 오후 활동이 없다는 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