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봄의 나른한 삽화 하나 봄볕이 나른하게 몽환적이다. 봄볕보다 더 나른하게 몽환적인 것은 학교 뜰 가득 피어난 벚꽃. 점심을 먹고 꿀벌이 잉잉거리는 벚나무 밑을 산책하던 난 마구 꺾인 채 시들어 가고 있는 벚꽃 가지들을 발견했다. 꽃잎은 흡사 흰 눈이라도 내린 듯 수북하게 쌓여 있다. ‘누가 이런 짓을 했지? 심술궂기도 해라.’ 주변을 둘러보던 난 미끄럼틀에 올라가 늘어진 벚꽃가지를 붙잡기 위해 발돋움하고 있는 승우를 발견했다. 우리 반 아이다. 개구쟁이 녀석. 유치원 시절부터 별나기로 소문난 아이다. 우리 반 여자 아이들은 걸핏하면 유치원에 다니던 녀석에게 맞고 울었다. 난 녀석을 불러 몇 번이나 혼을 내고 주의를 주었지만 매번 효과는 그다지 신통하지 않았다. 그녀석이 입학하였을 때, 난 녀석으로 인해 나의 일 년이 그다지 평탄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고, 역시나 그렇게 나의 신학기는 시작되고 있었다. 난 녀석을 불러내려 혼을 내기 시작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없이 꾸중을 듣는 녀석. 이유를 물어도 대답하지 않고 묵묵부답. ‘그냥 예쁘니까, 어쩌면 심심했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장난삼아, 놀이 삼아 그 예쁜 꽃들을 의미 없이 꺾었으리라’ 지레 짐
꽃무늬 옷 + “여자들은 나이가 들어가면 꽃무늬 옷을 좋아하게 되어 있어. 여자들이 꽃무늬 옷을 자주 입으면 그건 할머니가 되어간다는 뜻이야.” 문경이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얼른 내가 입고 있는 옷을 확인했다. ‘휴~, 다행이다.’ 난 검은색 벨벳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목과 가슴 사이쯤엔 같은 색상의 천으로 만든 장미가 몇 송이 붙어있다. 꽃무늬 옷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난 안도하면서 웃는다. 아직까지 내겐 꽃무늬 옷이 거의 없는 편이라서 또 다행이다. 난 가슴을 쓸어내린다. 아이들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기 가족을 그리고 있었다. 초등학교 신입생들의 학교 초 적응기간이 거의 끝나가는 3월 말쯤. 그 날의 학습문제는 가족을 그려 그 가족에게 자기가 주고 싶은 선물을 그리는 내용이다. 우리 여자들은 아이, 어른을 가릴 것 없이 대부분 참견하는 것을 좋아한다. 예진이가 그리는 그림을 흘낏 보던 문경이가 참견했다. “늬네 식구가 왜 다섯 명이야?” “우리 고모도 우리랑 사니까 가족이야. 같이 살면 가족이라고 선생님이 그랬어.” “누가 늬네 고모인데?” “여기.” “늬네 고모한테 왜 꽃무늬 옷을 그려놨는데?” “우리 고모는 꽃무늬 옷을 좋아해.” “이상
선생님이 틀렸어요 실로폰을 처음 연주해 보는 학생들에게 먼저 주법을 설명한 뒤, 다장조의 7음계를 두드려 보기로 했다. 실로폰 건반 위에는 학생들이 알아보기 쉽게 알파벳과 7음계의 이름을 적어 놓았는데, C(다)장조부터 배우기 때문에 C건반 위에 ‘ 도’라는 글자 스티커가 붙어 있다.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 아이들이 소리를 맞춰 실로폰 건반을 두드린다. 샘물처럼 맑은 실로폰 음률이 포롱포롱 교실 안을 날아다닌다. 마치 소리의 작은 새들이 줄을 지어 하늘을 날 듯. 그런데 줄을 지어 나란히 날아가던 새 한 마리가 줄을 이탈했나 보다. 같은 음이 아닌 다른 음이 섞여 있다. 실로폰을 치는 아이들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경환이 어깨 뒤에 섰다. “경환아. 도는 이곳이야. 여기 도란 글자스티커가 붙어 있지 않니? 글자스티커가 붙어있지 않아도 선생님이 C가 도라고 했는데, 넌 왜 자꾸 A부터 치니?” 내가 나무라자 경환이가 실로폰 채를 책상 위에 내려놓더니 입술에 힘을 주고 쳐다본다. “실로폰이 잘못되었어요. 선생님도 틀렸어요. A가 맨 앞이고, 도도 맨 앞이니까 A가 도예요. 그러니까 실로폰도 잘못되었고 선생님도 틀렸어요.”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