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져 나오는 정보의 양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다보니 포털사이트마다 그 시간의 주요 기사거리만 모아 소개하는 란이 있다. 당연히 가장 눈길을 끄는 메인 화면의 중앙에서 사이트에 접속한 사람들이 클릭해 기사의 내용을 확인하도록 유혹한다. 며칠 전, 국내 최고를 자랑하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못 볼 것을 봤다. 그날 내 눈에 들어온 게 '못가르치는 교사 쫓겨난다'였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제목을 클릭했다. 서울시교육청이 내년 3월1일부터 시행하겠다는 '2010학년도 중등학교 교원 및 교육전문직 인사관리원칙 개정안'에 정기전보 기간 이전이더라도 학교장이 교사를 전보 조치할 수 있는 '특별전보 사유'가 신설됐다는 내용이었다. '쫓겨나다'를 네이버 국어사전은 '어떤 장소나 직위에서 내쫓김을 당하다.'로 풀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쫓김'은 무엇인가? 물론 네이버 국어사전에 의하면 '밖으로 몰아내다. 있던 자리에서 강제로 나가게 하다.'이다. 기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서울시교육청에서 직무수행 능력이 부족하거나 근무 성적이 저조한 교원 등을 전보 조치할 수 있는 '특별전보 사유'를 신설했다는 것이다. 이 기사에 '쫓겨난다'는 내용이
장릉에서 가까운 곳에 신라시대인 686년 의상조사가 창건한 천년고찰 보덕사가 있다. 이 사찰은 발본산 지덕사로 시작하여 노산군으로 유배생활을 하던 단종이 죽은 후 노릉사가 되었다가 태백산 보덕사로 다시 장릉 보덕사로 이름을 고쳤다. 특히 단종 왕릉인 장릉의 수호사찰이었기에 돌아보면 좋다들릴 필요가 있다. 태백산 자락의 평지사찰 보덕사는 역사에 비해 규모가 작고 시내에서 가깝지만 조용해서 좋다. 입구는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천왕문을 지나면 극락보전, 산신각, 사성전, 칠성각 등 사찰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극락보전(강원도문화재자료 제23호)은 1161년에 증축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안내판에 의하면 조선 후기의 건물양식이다. 주불로 모시고 있는 삼존불은 목조불이다. 보기 드물게 극락보전 오른편에 부도가 1기가 홀로 있다. 칠성각에 태백산 산신령이 된 단종의 혼령을 추모하는 영정이 모셔져 있다. 보덕사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 근심을 해결하는 장소인 해우소(강원도문화재자료 제132호)다. 1882년에 건립되어 사찰 화장실의 전통 형식을 지닌 보덕사 해우소(解憂所)는 2층 누각으로 원형이 잘 보존되었다. 해우소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유배지 청령포,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던 자규루, 사약을 받고 죽음을 맞이한 관풍헌, 무덤이 있는 장릉 등 영월은 발길 닿는 곳마다 단종의 한과 넋이 같이한다. 장릉(사적 제196호)은 조선 제6대 임금 단종의 무덤이다. 숙부인 수양대군(세조)에게 왕권을 빼앗기고 청령포에 유배된 단종은 애환을 품은 채 한양에서 먼 영월읍 영흥리 야산에 묻혔다. 죽음을 당한 후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 그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이 있었음에도 단종의 시신을 몰래 수습한 사람이 있다. 바로 영월의 호장이었던 엄흥도였다. 집안 살림을 팔아 수의를 마련하고 야밤에 아들과 함께 시신을 거둬 양지바른 산기슭에 장사지낸 후 몸을 숨긴 엄홍도는 옛 사람이지만 현대인들마저 본받아야 할 충신이었다. 엄홍도의 후손을 통해 오랫동안 위치조차 알 수 없던 단종의 묘를 찾아내고 묘역을 정비한 영월 군수 박충원도 훌륭한 사람이다. 장릉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세우지 않아 석물이 단출하다. 장릉 주위의 소나무들이 모두 능을 향해 절을 하듯 굽어있는 것도 이채롭다. 30여년 전 단양에 근무할 때부터 찾던 곳이지만 소나무들이 올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느끼게 한다. 장릉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위화도회군으로 고려왕조를 무너뜨린 태조 이성계가 1392년 임금으로 즉위한 후 1910년 순종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길 때까지 519년간 27명의 임금이 다스린 나라가 조선이다. 고등학교 시절 사회시간이면 달달 외워야 했던 게 27명의 임금 '태조 정조 태조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연산군 중종 인종 명종 선조 광해군 인조 효종 현종 숙종 경종 영조 정조 순조 헌종 철종 고종 순종'의 첫 글자를 외우기 쉽게 네 파트로 나눈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이었다. 역사는 아는 만큼 보이고, 알수록 재미있다. 이참에 역사공부 한번 해보자. 우리가 알고 있는 임금들의 이름은 어떻게 붙여졌을까? 임금의 이름은 삼년상이 끝나고 신주가 종묘에 들어갈 때 추증된 칭호인 묘호로 사후에 붙여진 것이라서 정작 본인들의 살아생전에는 들어 보지 못한 이름이다. 후대의 평가에 따라 창업을 일으키거나 나라의 정통성을 회복시킨 공이 있는 임금에게는 조(祖), 왕위를 정통으로 계승하거나 위기에서 나라를 보존한 덕이 있는 임금에게는 종(宗)을 붙였다. 왕의 자격을 박탈당해 종묘에 묘호가 없는 연산군과 광해군을 제외한 25명의 임금 중 조가 붙은 임금이 7
영상문화와 한방건강을 자랑하는 Nice 제천. 해마다 여름이면 청풍호반에서 감미롭고 낭만적인 '음악영화축제'를 열고, 내년에는 약령시장이 열리던 제천의 약초를 알리기 위해 '2010제천국제한방바이오엑스포'를 개최한다. 충주호나 제천의 관광지에서 청풍문화재단지를 빼놓으면 앙꼬 없는 찐빵이다. 문화재단지까지는 자동차로 82번 지방도의 굽이 길을 돌며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거나 유람선에 올라 충주호가 펼쳐 논 호수의 풍경에 취하며 청풍나루로 가면 된다. 가까운 곳에 능강솟대문화공간, 청풍랜드, 드라마촬영장, 금월봉 등 볼거리들도 많다. 청풍문화재단지는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문물이 번성했던 청풍에 충주호 수몰지역의 문화유산을 원형대로 이전 복원한 곳이다. 문화유산의 산실답게 보물 2점(한벽루, 석조여래입상)과 지방유형문화재 9점(팔영루, 금남루, 금병헌, 응청각, 청풍향교, 고가4동), 옛 도호부 시대의 부사나 군수의 송덕비ㆍ선정비ㆍ열녀문ㆍ공덕비 등이 세워져 있다. 정문인 팔영루에 들어서면 고가, 석조여래입상, 금병헌, 응청각, 한벽루 등이 차례로 나타난다. 고려 때 관아의 연회 장소였던 한벽루에 오르면 청풍호반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호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공기
그동안 바쁜 일이 많아 직원들끼리 얼굴 맞대고 오순도순 대화 한 번 나누지 못했다. 바쁠수록 돌아가라고 이럴 때는 스스로 여유를 누리면서 즐거운 일을 만들어내야 한다. 즐거운 일이 있으면 엔도르핀이 저절로 나온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광고에 나오는 얘기가 아니라 생활에 활력소가 필요할 때는 여행을 떠나는 게 최고다. 문의초 직원들이 사면이 층암절벽으로 둘러싸여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든 모습이 여인들의 치마를 닮았다는 적상산을 다녀왔다. 한국 백경 중 하나로 꼽히는 적상산은 단풍으로 붉게 물든 가을철에 찾아야 제 맛이 난다. 철이 조금 이르지만 안국사로 가는 굽이길 초입부터 붉은 단풍들이 맞이했다. 정상으로 가는 고갯길에 제법 너른 공터가 있다. 차를 세우고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을 수 있는 장소다. 이곳에서 숲속으로 100여m 올라가면 깊은 산속을 닮은 골짜기를 수십 길의 암벽이 가로막는다. 하늘 아래 하나뿐이라는 천일폭포다. 갈수기라 아래로 떨어지는 물의 양이 적지만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 같다. 정상에 올라가면 적상호(산정호수) 둘레의 단풍이 예쁘다. 해발 800m에 위치한 적상호는 무주 양수 발전소에 필요한 물
10월 10일 아내와 해미읍성을 다녀왔다. 서해안 여행길에 일제에 의해 헐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청주읍성을 생각하며 자주 들리던 곳이지만 최근에는 찾을 때마다 공사 중이라 문 앞에서 돌아섰었다. 복원공사가 끝나고 관광객이 늘어났다더니 볼거리도 많아졌고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훈훈한 인심이 느껴져 읍성의 주막에 앉아 막걸리를 한 주전자나 마셨다. 지방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와 행정을 담당하던 읍성이 일본의 철거령으로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낙안, 고창, 해미에 가면 옛 모습을 간직한 읍성을 만난다.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의 해미읍성(사적116호)은 서해안고속도로 톨게이트와 가까워 서해로의 여행길에 들리기 쉽다. 천주교 성지이고 주변에 볼거리들이 많은 해미읍성은 고려 말부터 서해안에 출몰한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조선시대인 1491년에 만든 석축물이다. 해미는 태안반도에서 육지로 들어가는 요충지라 한때는 해미읍성에서 주변의 내포지방은 물론 청주까지 관활했다. 해미읍성에서 처음 만나는 것이 예전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진남문이다. 입구인 진남문은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 위에 팔작지붕의 단층 문루가 있다. 충청도병마절도사가 200여 년 동안 서해안 방어의 중요 임무를 담당하던
추석날 오후면 으레 고향 마을과 들판을 한 바퀴 돌아본다. 거절하는 아이들과 달리 아내는 꽁무니를 따라나서며 옛 추억을 챙겨준다. 자연을 벗 삼은 순수의 세계를 즐기며 아내와 대화를 많이 나누는 날이기도 하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 내곡동. 청주의 서부에 위치한 내 고향마을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청원군 강서면 내곡리가 1983년 2월 15일 강서2동 관할의 내곡동으로 청주시에 편입되었다. 시가 되고 26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자연환경은 여전히 변두리의 농촌마을이고, 사람들도 도회지물을 덜먹어 순박하다. 디지털 청주문화대전에 '골짜기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 안골, 소래울 또는 내곡(內谷)이라 했다.'고 소개되어 있다. 내곡은 안골이 한자화 된 이름인데 소래울이라는 지명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온다. 정확한 증언을 들어보지 못했지만 지형이 좁은 마을의 모양에서 붙여진 이름이라 생각한다. 고향의 산에서 쇠꼬챙이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만나던 시절이 있었다. 이곳이 삼국시대의 접경지였고, 가끔 옛 유물들이 발견되고 있다는 것은 청주시 신봉동의 백제유물전시관에서 고향의 유물을 보고나서야 알았다. 나이 들면서 고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청동기
오사카 성에는 아직도 풍신수길의 야욕이... "안내말씀 드리겠습니다. 탐방대원 여러분!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지금 시간은 오전 6시입니다. 밖의 날씨는 무척 맑습니다. 오늘은 6시 30분에 14호차부터 식사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아침잠을 깨우는 선내방송마저 정겹게 들렸다. 선상에서 자고, 씻고, 먹는 일이 일상처럼 느껴지는데 탐방은 마무리로 접어들었다. 오늘은 탐방 닷새째인 9월 9일이다. 오전 9시 10분경 임진왜란을 일으켜 한일관계를 적대국으로 만든 도요토미가 자신의 거처로 만든 오사카성으로 향했다. 인구 260만의 오사카는 한반도의 대륙문화가 들어온 관문이자 일본 제1의 상업도시다. 일찍부터 수로와 운하가 발달한 이곳에 오사카성이 있다. 오사카성의 박물관 앞에서 손승철 교수님의 문화해설이 있었다. 이날 손 교수님은 여러 가지를 얘기 하셨는데 2천년 전의 일본과 그 당시 일본 문화의 뿌리였던 한국의 모습, 2009년의 일본과 한국의 모습을 비교하고 일본이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월등히 높은 이유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을 특히 강조하셨다. '사무라이는 귀인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자, 섬기는 자를 뜻한다. 무사들은 중앙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보호한 대가로 교토,
나라의 법륭사와 동대사를 찾아... "한민족사 탐방단원 여러분,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지금 후지마루호가 아카시 대교를 지나고 있습니다. 밖으로 나가셔서 아카시 대교를 구경하시기 바랍니다." 탐방단원들은 단꿈에 빠져 있었지만 후지마루호는 부지런히 이동해 목적지인 오사카항이 가까워졌다. 5시 50분경 9월 8일을 알리는 선내방송을 듣고 밖으로 나가니 고베와 아와지섬을 연결하는 총길이 3911m의 아카시 대교가 눈앞에 있다. 연륙교이자 현수교인 아카시 대교는 단일교로 세계에서 가장 길고 주탑의 높이도 해면에서 298m나 된다. 같은 자리에서 전날 저녁에는 산 너머로 사라지는 석양을, 다음날 아침에는 대교 아래 수면 위로 붉게 떠오르는 태양을 보게 된 것은 우연의 일치였다. 아침을 먹고 나라의 법륭사(호류지)와 동대사(도다이지), 교토의 광륭사(코류지)를 관람하는 탐방 4일째 일정이 시작되었다. 오전 8시 20분경 하선하기 위해 입구로 가자 필리핀 승무원들이 상냥하게 웃으며 우리말로 "안녕하세요. 계단 조심하세요"라고 인사한다. 교육 받은 대로 행동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라는 서기 794년 교토로 천도 할 때까지 일본 최초의 국가를 유지했던 곳이라 도시 자체가
우사신궁에 신라범종이... 일본에서 맞이하는 9월 7일에도 태양은 밝게 떠올랐다. 호텔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오전 8시 30분경 우사신궁으로 향했다. 해지옥과 피지옥을 보러 다시 벳부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어떻든 '짧고 굵게 보는 날'이 될 것이라는 말을 기대하며 길 옆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구경했다. 나라와 민족이 다를 뿐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은 대부분 비슷하다. 다만 아무 곳에나 버리지 않는 일본인들의 습관 때문에 길거리가 깨끗한 것은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 오전 9시 20분 경 입구에 도착해 안내판을 보니 우사신궁을 '전국 하치만신의 총 본궁으로 상궁 본당은 국보, 광대한 경내는 국가사적, 이치이떡갈나무 숲은 국가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일본인의 마음의 고향'으로 소개하고 있다. 하치만은 대륙문화를 수입해 추앙받는 오우진 천황의 신령이다. 작은 다리를 지나자 '고마(코마)이누'가 맞이했다. 고마이누는 신사를 지키는 상징물로 '고구려 개(犬)'를 뜻한다. 가야 사람들이 이곳에 철을 전해줬고, 최초에 철의 신을 모셨던 곳이 우사신궁이다. 탐방에 같이 참여한 포철 직원에게 포항제철에 제련기술을 전수했던 NSC(신일본)제철소 공장이 이곳 오이타에 있다는 얘기를
탐방단의 일원이 되며... 9월 5일부터 10일까지 일본속의 한민족사 탐방을 다녀왔다. 1988년 11월 중순 서울올림픽의 뜨거운 열기를 자랑하며 우리 조상들의 발자취를 돌아본 지역이었고, 21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그때의 추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설렘이 가득한 탐방 길이었다.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고 지역의 답사 모임에 열심히 참석하고 있던 터라 탐방단 모집에 관한 공문을 보고 주저 없이 지원했다. 내심 기다리고 있다 탐방단의 일원이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고 탐방 경비부터 입금시킨 후 차근차근 탐방에 관한 준비물을 챙겼다.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담아오는 것은 물론 잘못된 역사를 똑바로 배워와 아이들에게 제대로 전해주는 탐방을 계획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보여줄 사진자료를 많이 담아올 수 있도록 준비했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탐방지로... 한민족사 탐방의 일정상으로는 전국의 단원들이 부산영도국제크루즈터미널에 모여 후지마루호를 타고 일본으로 출항하면서 시작되지만 마음은 부산으로 가는 우등버스가 오전 9시 30분경 청주고속버스터미널을 출발하면서 일본의 탐방지로 향했다. 차안에서 탐방지에 관한 안내책자를 읽다 먼저 출근한 아내의 전화를 받았다. '하
바다가 없는 내륙도 충북. 호수가 바다인줄 알고 갈매기가 없는 것을 궁금해 하는 아이들을 만난다. 그래서 한번쯤은 유람선을 타고 청정 자연속의 아름다운 단양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좋다. 쾌속선과 대형 유람선이 떠있는 충주호 선착장의 풍경이 아이들에게는 낯선 풍경이다. 시간이 되면 관광객을 태운 유람선이 뱃고동을 울린다. 충주호는 충주시ㆍ제천시ㆍ단양군에 걸쳐 있을 만큼 면적이 넓다. 물길이 막히며 섬이 된 산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사라지는 호수의 풍경을 살피노라면 여러 가지 레저시설을 갖춘 청풍랜드와 호반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청풍문화재단지를 지난다. 유람선 선상에서 호수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하며 162m 높이의 물줄기를 구경하려면 수경분수의 가동시간에 맞춰야 한다. 유람선이 장회나루로 향하면 좌우의 아름다운 산들이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경관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유럽풍의 리조트를 지나자 옥순대교가 나타난다. 충주호의 물길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 옥순대교부터 장회나루 사이에 있는 옥순봉과 구담봉이다. 대나무 싹같이 보이는 옥순봉과 기암절벽이 거북을 닮은 구담봉이 중국의 계림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답다. “와! 멋지
사회의 빠른 변화에 순응할 뿐 사람들의 속마음은 느림을 그리워한다. 옛길은 여유를 누리며 느림을 실천하기에 좋다. 예전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보며 천천히 걸으면 심신의 피로가 저절로 풀린다. 산 깊고, 물 맑고, 경치가 수려한 괴산군 칠성면에 그런 옛길이 있다. 장을 오가는 사람들이 생활용품들을 짊어지고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며 지나던 산막이 옛길이 바로 그곳이이다. 괴산읍내에서 연풍방향으로 가다 갈읍교차로에서 칠성면소재지 방향으로 우회전한다. 칠성초등학교와 수전교를 지나 외사리로 가면 산막이 옛길 이정표를 만난다. 괴산군이 8억여 원의 사업비를 들여 조성한 산막이 옛길은 외사리 사오랑 마을에서 사은리 산막이 마을까지 2.3㎞ 구간이다. 산과 물로 막힌 길이지만 옛길을 걸어보면 농촌이나 산촌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이 느껴져 공해로 찌든 도시인들이 편히 쉬며 재충전할 수 있는 쉼터역할을 한다. 외사리 마을을 지나면 숲에 빼곡히 들어서있는 소나무들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물가의 옛길은 나무데크 등 자연훼손을 최소화하며 탐방객의 안전과 편의위주로 만들어졌다. 쉼터에서 솔 향을 맡으며 그네, 그물침대, 출렁다리도 즐길 수 있다. 옛길 전체가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궁도는 국궁과 양궁으로 나뉘는데 옛날부터 우리에게는 심신단련과 호연지기를 기르는 무예였다. 무기로 사용되던 활이 오늘날에는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레저스포츠가 되었다. 그동안 궁도의 명맥을 유지하며 궁도인을 많이 배출한 충북 괴산읍 서부리의 사호정. 일제강점기인 1931년부터 1939년 사이에도 활약상이 신문에 활자로 보도되었던 국궁장이다. 괴산공설운동장 옆에 있는 사호정이 2004년 전국체전 궁도부 경기를 열기 위해 새롭게 단장한 후 전국단위 궁도대회를 잇따라 개최하며 궁도 동호인 저변 확대는 물론 충북 지역 궁도장의 메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바로 옆에 김형탁 양궁훈련원이 있다. 어느 곳이건 궁도장은 한적하고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사호정의 멋진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