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본(경기 영덕고 교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사람들은 참, 이상한 구석이 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칭찬보다는 남을 비판하고 헐뜯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비판을 이용하여 남의 습관을 고치려 한다거나 더 나아가서 자기를 내세우기 위하여 남을 헐뜯는 행동은 이 세상을 너무 삭막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반대로 남을 칭찬하고 그 칭찬을 기본으로 하여 상대를 격려해준다면 정말 가치로운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칭찬은 칭찬을 낳고 인정을 샘솟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비판이나 헐뜯는 행동은 꾸중과 가깝고 그 꾸중은 인간을 절망으로 안내한다. 반대로 칭찬은 관용이나 용서와 가깝고 그것은 바로 인간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이다. 꾸중은 인색과 가깝지만 관용은 인정과 가까운 것이다. 인색과 관용은 교육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날 초등학교의 F선생님이 과학 시간에 학생들과 실험을 하고 있었다. 그때 한 학생이 실험기구 하나를 잘못 다루어 깨트렸다. 그러자 F선생님은 불같이 화를 내면서 “공부도 못하는 주제에 실험기구나 깨고…”라면서 면박을 주었다. 그 다음부터 그 학생은 과학이나 실험을 싫어하게 되었
황석근(한국교총 대변인) 교육부는 지난 6월 학교 구성원들의 공동생활규칙을 담은 ‘학교생활규정’ 예시안을 발표했다. 학교단위에서 자체적으로 생활규정을 만들기 곤란하므로 예시안을 제공해 달라는 학교현장의 요구가 빗발쳤다고 한다. 또 어디까지나 예시에 불과하므로 반드시 그대로 따라야 할 의무는 없으며 학교현장에서 적의하게 활용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예시라고 하더라도 학교현장의 지원에 그 취지가 있는 만큼, 도움은커녕 혼란만 조장한다면 이는 당초 예시안의 발표 취지에 맞지 않는 것이다. 학교생활규정은 예시안의 목적에서 밝히고 있듯이 학생, 학부모, 교직원이 준수해야 할 제반사항들을 규정함으로써 자주적 학습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의 생활 및 준법습관을 습득하게 하여 학교, 지역사회, 국가의 발전과 법치주의 사회 실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즉 초·중등교육법이나 학칙에서 정할 수 없는 세세한 내용을 규정하고 이를 스스로 준수함으로써 학교내 공동체간의 일체감을 높이고 학교생활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그 취지가 있다. 따라서 학교생활규정은 무엇보다도 구체적인 실천수칙을 담고 있어야 한다. 법률체계로 볼 때에도 가장 하위에 속하는 만큼, 보다 구체적이고 명
허 숙(인천교대 교수·한국교원교육학회장) 교육에 대한 거창한 이론이나 관점이야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주 간단히 말해서 교육이란 교사와 학생이 교실에서 만나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은 교육이론을 연구하는 학자의 연구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교육정책을 결정하는 교육인적자원부의 장관실에서 행해지는 것도 아니다. 교육은 교실에서 시작해서 교실에서 마무리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교실수업은 모든 교육의 근본이요 본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 교육의 개혁이나 개선을 이야기할 때면 흔히 제도나 정책의 변화를 거론하고는 하지만, 그런 모든 변화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결국 교실수업을 통하여 교사와 학생의 교육활동에 반영되고 구현되지 않는 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교육의 정책이나 제도, 행정, 시설 등은 교사와 학생에게 도움을 주어 교육(교실수업)을 잘 하자고 필요한 것이지, 교육행정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밥벌이나 승진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너무나 쉽고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우리의 교육현실을 보면 선(先)과 후(後)가 뒤바뀌고 본(本)과 말(末)이 전도된 느낌을 받게 되는 경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