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어린시절은 전쟁이 끝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먹는 것이 풍족하지 않았다. 6살로 기억된다. 사과 한 알을 먹겠다고 밤새 울었지만 엄마는 주지 않았다. 국민 1인당 GDP가 유엔 회원국 116개국 중에서 거의 꼴찌 수준이었으며, 일반 국민은 ‘하루에 두 끼를 먹었으면 좋겠다’가 소원이었던 시절이다. 곡식은 먹기도 모자라니 술이나 과자는 언감생심(焉敢生心) 생각할 수 없었다. 필자의 형제들은 방학이면 영종도에 계신 외할아버지댁에 갔다. 외할아버지는 손주들의 손을 잡고 논으로 가셨다. 논둑에는 빨간 깃발이 꽂혀져 있었고 넓은 논에 벼가 자라고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벼를 가리키며 ‘이게 통일벼이다’ 하며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먹거리가 풍족해지니 너희들이 놀러올 수 있고, 먹일 것이 많으니 좋다’ 하셨다. 통일벼는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에서 신품종개발에 매진하여 얻은 결과물로 세계 벼 육종 역사에서도 한 획을 그은 성공작이다. 1972년부터 전국 농가에 보급되었는데 외할아버지댁 논도 이즈음이었을 것이다. 1977년에는 국내 수요를 충당하고 남아 해외에 수출도 하였다. 이제는 쌀이 흔해져 쌀로 빚은 술이 각광을 받는다. 요즘 한국을 가리키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 ‘인일여자고등학교 축제’ 인일제 동영상을 발견하였다. 흐뭇하고 반가웠다. 인일여자고등학교는 필자의 모교이다. 50년 후배들의 생기발랄함과 교정을 보며 모처럼 옛 시절을 되돌아보았다. 인일여자고등학교는 인천에 있으며, 70년대 당시 인천은 경기도에 속해있었다. 필자는 1970년대에 고등학교를 다녔다. 당시는 고등학교도 입학시험이 있었으며,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두 개의 지역, 즉 서울지역과 경기도 혹은 경기도와 충청지역 등 두 곳을 정하여 지원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에는 필기시험뿐 아니라 체력장 시험 점수도 합산하였으며, 본고사를 치러야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은 고등학교를 정하는 시기에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하여 부모님과 당사자인 필자와 더불어 입학할 학교를 의논하고 최종 결정을 하였다. 담임선생님은 체육을 담당하였는데 필자의 체육점수가 형편없어 걱정을 많이 하셨다. 체력점수가 무려 20점이나 되었던 것이다. 학생들은 대체로 만점을 받았다. 선생님은 ‘100M 달리기는 깃발이 들어올려지는 순간에 바로 뛰어나가라’ 등 걱정의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 당시 명문이었던 인일여자고등학교에 필기시험을 보던
필자는 1980년대 초반에 결혼을 하였다. 어느 한 날 교수였던 필자가 기차를 타고 출장을 갔다. 옆 좌석에 앉은 60대 아주머니가 ‘어디 가우?’ 하고 물었다. ‘출장을 가요’ 하였더니 ‘남편이 벌이가 신통치 않우? 직장을 다니게’ 하였다. 당시의 보편적 인식이다. 임신을 하면 눈치가 보이고, 방학에 맞춤 출산을 하지 못함은 민폐였다. 맞벌이 부모만 힘든 것이 아니다. 아이들도 어려움이 많다. 30대 후반인 큰 아이가 ‘예전에 친구에게 크게 잘못한 것이 있어요’하고 말하였다. 아파트 옆 동에 사는 아이 친구 엄마는 필자와 남편이 모두 박사이며 지위가 있으므로 좋은 가정이라 생각하고 필자의 아이를 자주 집에 초대하였다. 가정을 따듯하게 지키며 아이들돌봄에 전념하는 엄마로 좋은 책도 같이 보게 하고, 먹거리도 차려주며 아이들이 서로 잘 지내게 하려 노력하였다. 필자의 아이는 늘 엄마가 곁에서 돌보아주는 친구가 샘이 났는지 친구의 책에 온통 낙서를 하고 더러 찢고는 돌려주지도 않았단다. 생각할수록 너무도 미안하다는 것이다. 필자도 결혼, 아이키우기 모두 처음이니 아이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빚어진 참사이다. 햇살같은 엄마가 늘 곁에서 돌보아주는 친구를 보는 큰
필자는 은퇴 후를 위해 텃밭있는 작은 집을 마련하였다. 매우 잘한 선택이다. 텃밭가꾸기를 생각한 이유는 운동이다. 햇볕과 바람이 있는 공간에서 온몸을 사용하며 조졸한 먹거리도 얻을 수 있다. 재직동안 짬짬이 굵은 돌, 작은 돌 걷어내어 밭을 만들고, 은퇴 1년 차인 올해는 상추 몇 개, 고추 몇 개를 넘어 콩도 팥도 심었다. 콩씨 80개를 심었는데 수확이 제법 있었다. 팥은 실패하였다. 때가 되어 고개숙인 잎과 가지를 들어내어 천막지 위에 콩꼬투리를 널어놓았다. 이웃은 꼬투리가 바싹 마르면 막대로 탁탁 털라고 말씀해 주었지만 필자는 많은 양이 아니므로 손가락 운동을 겸하여 꼬투리를 열고 까만 열매를 손으로 받기로 결정하였다. 음악을 들으며 작업을 하노라면 어느새 새벽이다. 피아노 치는 거와 마찬가지로 뇌운동이 되겠지. 맷돌호박은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먹고 남은 음식물이 있을 때마다 한 곳에 모아 두니 좋은 거름이 되어 모종 3개를 심었는데 크고 작은 결실이 30개나 달렸다. 가족과 친지에게 나누어주고도 꽤 남았다. 어떻게 요리를 하면 좋을까? 보편적인 것이 호박죽이다. 이웃은 말려서 만두속을 하라고
21세기 기술발달의 정점은 인공지능이다. 이제까지의 인간역사에서 그저그런 모든 인간들이 가장 사람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하는 기술이다. 여기서는 인간의 행복에 기여하는 인공지능의 기술측면만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아래는 외롭고 힘든 상황에서 로봇강아지를 반려로 삼아 행복하게 살아가는 일본 선생님 이야기이다. ’일본 중학교 음악선생님‘ 은 어머니와 함께 살다 홀로 되어 강아지로봇과 살았다. 강아지로봇은 일본 소니사에서 개발한 아이보다. 아이보는 주인의 차가 주차장에 들어오면 감지하고 문가로 나가 맞이할 준비를 하고, 에너지가 떨어지면 스스로 충전기로 들어간다. 주인의 얼굴을 인식하여 꼬리를 흔들며, 무엇을 해달라고 손짓하고 멍멍 짖고, 하품도 하며 재롱을 부린다. 외로운 선생님의 노후에 가장 친밀한 친구다. 일본 선생님은 안전한 공간에서 평화롭고 안정되게 살아간다. 그러나 행복과 안전은 상황에 따라 개인이 온 힘을 다 하여도 부서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 라디오와 TV는 행복하고 기쁜 소식만 전해주면 좋으련만 방송에서 전하는 험악한 일들이 일상을 무난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도 경악을 불러일으킨다. 거리를 걷던 10대 아가씨가 모르는 사람이
필자는 2024년 6월 초순 지중해 서부 크루즈 여행을 다녀왔다. 그간 준비해온 은퇴 후 계획 중 하나였다. 우리의 인생 2막에는 부부동반하여 국내외 여러 곳을 다니며 맛난 것 먹고, 재미난 것 보고 즐거운 사람들 만나 깔깔거리는 것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무엇보다도 부부가 궂은 일없이 여행을 계획할 수 있음이 가장 감사할 일이다. 몇 년동안 자금을 모아왔으며, 4월에는 은혼기념으로 신혼을 보낸 강원도를 여행하였고, 친구 가족과 함께 베트남을 다녀왔다. 그리고 6월에 지중해 크루즈를 다녀온 것이다. 어떠한 계획이든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이다. 우리 부부는 아는 사람이 전혀없는 크루즈 일행과 함께 하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여행사는 크루즈 시작 전에 일행 중 시간이 가능한 멤버간의 상견례를 주선하였고, 신랑은 즐겁게 한 잔하며 일행과 소통하고 돌아왔다. 2024년 6월 6일(목) 첫날. 새벽 6시 대전 시청 앞 지정된 장소로 가서 전세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이동하였다. 영양바, 과자, 껌 등 간식거리가 주어졌고 일행들의 약식 소개가 있었다. 공항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잘 들을 수 있도록 무전수신기도 받았다. 13시간 비행을 거쳐 로마공항에 도착하였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