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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크루즈 여행

필자는 2024년 6월 초순 지중해 서부 크루즈 여행을 다녀왔다. 그간 준비해온 은퇴 후 계획 중 하나였다. 우리의 인생 2막에는 부부동반하여 국내외 여러 곳을 다니며 맛난 것 먹고, 재미난 것 보고 즐거운 사람들 만나 깔깔거리는 것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무엇보다도 부부가 궂은 일없이 여행을 계획할 수 있음이 가장 감사할 일이다.

 

몇 년동안 자금을 모아왔으며, 4월에는 은혼기념으로 신혼을 보낸 강원도를 여행하였고, 친구 가족과 함께 베트남을 다녀왔다. 그리고 6월에 지중해 크루즈를 다녀온 것이다. 어떠한 계획이든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이다. 우리 부부는 아는 사람이 전혀없는 크루즈 일행과 함께 하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여행사는 크루즈 시작 전에 일행 중 시간이 가능한 멤버간의 상견례를 주선하였고, 신랑은 즐겁게 한 잔하며 일행과 소통하고 돌아왔다.

 

 

2024년 6월 6일(목) 첫날.

새벽 6시 대전 시청 앞 지정된 장소로 가서 전세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이동하였다. 영양바, 과자, 껌 등 간식거리가 주어졌고 일행들의 약식 소개가 있었다. 공항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잘 들을 수 있도록 무전수신기도 받았다.

 

13시간 비행을 거쳐 로마공항에 도착하였으며, 전세버스를 타고 호텔로 이동하였다. 정원이 잘 손질된 유럽풍 호텔이었다. 정원에는 허브가 많았으며, 호텔 앞 도로 표지판은 콜로세움과 바티칸으로 가는 길이 표시되어 있었다. 승선전 호텔에서 꼭 해야 할 일은 크루즈앱을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에 오르면 와이파이가 약해 앱설치가 쉽지 않다.

 

2024년 6월 7일(금) 둘째 날

오전 9시에 크루즈 배 승선이 예정되어 있어 일행 대부분은 일찍 일어나 조식 후 호텔 내를 산책하며 사진도 찍고 담소도 나누었다. 크루즈 배는 로마의 외곽 항구 치비타베키아에 정박해 있었으며, 호텔에서 버스로 1시간 거리에 있었다. 항구로 가는 길은 나무와 풀이 무성한 시골 길이었다.

 

기항지에서 짐은 배로 넘기고 4시간 정도 필요할 물건만 소지하고 배에 올랐다. 배는 승선 인원 6000명, 엘리베이터가 18층까지 있는 초대형이었다. 입국절차를 거쳐 승선카드를 발급받고 멤버들이 모이는 지정장소에 모였다. 단체톡을 만들고 각자의 선실로 들어갔다.

 

선실은 아담한 호텔방이나 발코니 밑으로 푸른 바다를 볼 수 있다. 발코니에는 등의자와 작은 탁자가 있어 필자는 시간이 나는 대로 나가 앉았다. 한낮에 따뜻한 남국의 햇살을 온 몸에 받으며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고, 한 밤에 잠이 안오면 컴컴함 아래로 언듯언듯 보이는 물결을 바라보았다. 무한처럼 느껴지는 광활한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배가 나아가다니 경이로웠고 두려움을 물리치고 망망대해로 나간 이들에게 감사했다. 저녁 10시 가까워도 해가 있고 공기가 따듯하며 수평선을 느긋이 볼 수 있어 이번 여행은 잘 왔다고 생각했다. 음료나 맥주 한 잔을 놓고 오랜시간 담소를 나눌 수 있는 바도 많고, 식당도 여러 층에 있어 기호대로 찾아다니며 식사하였다. 서양음식 위주이나 죽도 있고 날날이 쌀밥도 있으며 무엇보다 과일이 풍족하였다.

 

선실에서 바라보는 해돋이와 지중해

 

2024년 6월 8일(토) 셋째 날

오늘의 일정은 이태리 사보나 시내를 둘러보는 것이다. 사보나는 공업도시로 볼거리 먹거리도 없는데 마르세이유, 바르셀로나와 더불어 기항지를 만들었다. 지역 경제 차원에서 크루즈를 유치한 사람들을 칭찬할 따름이다. 도시 한 가운데 큰 개천 수준의 강이 흐르고 요트가 지날 때 강위의 다리가 열리고 닫혀 길가다 그냥 기다려야 한다. 예전에는 철이나 놋쇠를 운반한 뱃길이지 않을까 추측해보았다.

 

저녁 후 16층에서 ‘살사댄스’가 있다하여 올라갔다. 무대 위 고수들의 현란한 춤사위는 이해가 가나 무대 아래 일반인들도 너무 춤을 잘 추어 감탄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전세계 ‘살사동아리’가 일시를 정해 크루즈배에 올라 공연을 하였다는 것이다. 일행 중 몇몇이 말레이시아에서 온 살사멤버와 사진을 찍었다.

 

크루즈배는 여행이 목적이다. 당연히 집단의 질서를 존중하며 여행자의 자유와 해방을 누림이 중요하다. 무대 위와 아래, 동서양,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몸치든 아니든 남의식하지 않고 즐거워서 흔드는 집단 군무를 보는 것만도 신났다, 50대, 60대 한국 남성인 신랑과 우리 일행이 막춤일지라도 따라하며 둠칫거리는 것을 응원하고싶어 박수치고 동영상을 찍어주었다.

 

필자는 고등학교시절 포크댄스를 많이 배웠다. 페스탈로찌가 별명인 교장선생님은 당시 인천, 경기지역 명문인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컸으며, 학문뿐 아니라 음악과 무용, 예절교육을 강조하였다. 합창대회를 준비하며 무수히 연습한 지정곡 황철익의 ‘꽃 파는 아가씨’ 와 자유곡 이바노비치의 '다뉴브강의 잔물결'은 5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따라 부를 수 있다. 음악선생님은 자유곡 ’다뉴브강의 잔물결‘의 높은 음을 소화할 수 있을까 걱정하였는데 음이 모두 갈라져 우리 반은 등수 안에 들지못했다. 무용시간에는 각 나라의 포크댄스를 배웠다. 알렉산드로브스키, 미졸루, 푸른별장, 둘만의 세계, 구스타프스콜, 덩케르트의 종, 마임, 이별의 왈츠 등 각 나라의 춤을 배웠으며, 축제 때에는 신사를 담당하는 친구, 아가씨를 담당하는 친구로 나뉘어 하얀 치마에 분홍휴지를 붙여 분위기를 돋우기도 하였다.

 

2024년 6월 9일(일) 넷째 날

프랑스 프로방스지역에 위치한 아를에 갔다. 고흐가 사랑한 햇빛과 풍경이 있는 곳이다. 마르세이유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데 창밖으로 볼보, 테슬라 등 세계적 기업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넓은 평지, 온화한 날씨 뿐 아니라 기업을 위한 환경도 좋은가 보다. 도로 옆으로 돌산이 이어지는데 새하얀 석회암이며 한국 남부의 산보다도 완만하였다.

 

고흐 그림의 모델이 되었던 아를의 집과 사람, 풍경은 지금도 현실의 치열한 삶의 터전이나 그림 속은 환상적인 노랑과 파랑이다. 고흐의 카페는 문이 닫혀져 있었고, 고흐가 있었다는 ‘정신병원’은 노랑의 건물과 꽃으로 여전히 아름다웠으나 당시 정신병원은 환자치료에 무지하고 잔인하였다. 환자에게 회색의 요새는 공포 그 자체였을 것이다. 의학이 획기적으로 발전한 것은 20세기에 이르러서이며, 신체의 병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정신도 치료할 수 있는 ‘병’으로 인식의 전환을 이끈 프로이트에게 무한한 감사를 올렸다. ‘미쳤다’ ‘신이 버린 물건’ 취급을 받던 사람들이 정신의 상처에 연고를 바르고 소독약을 발라 인간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2024년 6월 10일(월) 다섯째 날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가우디의 성가족성당, 구엘 공원을 보았다. 다행히도 기다림 없이 성당안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필자는 성당안 긴 의자에 앉았다가 쫓겨났다. 긴 의자는 미사를 보는 신자를 위한 장소였다. 필자는 신자였으나 이 시간에는 관광객이었으므로 자격이 없었다. 성 가족성당은 온 마음과 온 몸으로 ‘신에의 귀의(歸意)’를 바라는 가우디의 간절함, 절절함이다. 신은 당신을 드러내기 위해 천재성을 주시고, 천재는 끊임없이 형상을 보여주시는 신을 구현해 내느라 온 생애를 바친다. 더러는 세상과 타협하여 부와 명예를 얻고 호사하나 가우디의 하느님은 세상의 기준과 부딪치는 고집을 주시어 인류는 한 걸음 진보하였으나 가우디의 삶은 인간적으로 힘들었다. 끊임없이 솟아나는 영감을 주셨으면 그를 완성시킬 도움도 사방으로 주실 것이지 왜 주다 마셨을까. 인류가 생존하는 한 끊임없이 회자될 명예를 주셨으니 넉넉한 은총이라 할 수 있겠는가.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활기가 느껴지는 도시이다.

 

2024년 6월 11일(월) 여섯째 날

배가 이비사에 닿았다. 스페인 남부의 큰 섬으로 클럽과 파티의 섬으로 유명하다. 우리 일행은 바닷가가 보이는 식당에서 파에야를 먹고 주변에 즐비한 상점을 드나들며 더러 물건을 구입하거나 구경하였다. 필자 일행은 간단한 간식거리와 음료를 파는 상점에 들어가 맥주와 음료, 아이스크림을 시켰다. 배로 돌아가는 시간이 꽤 많이 남아 있는 터라 여유가 있었다. 맥주, 음료,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은 한국에서와 똑같으나 그래도 이국 땅이라 들뜨고 신이나 소소한 이야기들이 끊임없었다. 건너편에 자리에 동양 아가씨가 샌드위치와 음료를 시켜놓고 혼자 오도마니 앉아 고개를 숙이고 움직임도 없었다. 수다 중에도 ‘왜 저러고 있을까?’ ‘집에 갈 수는 있나?’ 공연한 걱정을 하였다. 우리 일행이 나올 때까지도 그 아가씨는 그냥 그대로 있었다.

 

2024년 6월 12일(화) 일곱째날

크루즈의 날이다. 다음 일정이 이탈리아 팔레르모이므로 배는 하루종일 바다위를 달려가야 했다. 여행객들은 선상에서 쉬며 상점도 돌아보고, 쇼도 보고. 삼삼오오 놀았다.

 

우리의 크루즈 일행은 대부분 한 고향사람들 혹은 같은 지역거주인들로 구성되었다. 필자와 남편은 단지 일정이 동일하다는 이유로 느닷없이 함께하게 되었음으로 필자는 여행사 대표에게 우리집은 ‘깍두기”네요 하고 말하였다.

 

‘깍두기’는 어릴 적 놀이용어로 고무줄놀이나 줄넘기 놀이 등 편을 나누어 노는 집단놀이에서 등장한다. 필자는 고무줄이나 줄넘기를 잘하지는 못하였는데 놀이에 끼고는 싶었다. 친구들도 청군, 백군으로 누가 이기나 겨루는데 잘하지 못하는 필자를 끼워주고는 싶고, 지기는 싫어 선택한 것이 ‘깍두기’이다. 놀이에는 합류하나 점수는 합산하지 않는다. 못하는 친구를 끼워주기 위한 아이들의 슬기로움이다. 겨루기가 목적이 아니라 친구와 함께하는 즐거움이 목적이다. 우리 그룹에는 지체장애인도 있었는데 죽기 전에 크루즈여행을 하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여행 한달 전에 휠체어용 자가운전대를 구입하였단다. 고된 여행길이었으나 당사자도 열정이 넘치고 일행이 함께 해주어 어려운 곳은 더러 쉬면서 일정을 소화하였다. 일행은 예의를 지키며 서로서로 잘 지냈다. 

 

2024년 6월 13일(수) 여덣째날

배가 이탈리아 팔레르모에 도착하였다. 우리 일행의 목적지는 항구도시 체팔루이므로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달려갔다. 이 시기 유럽은 무더워지나 다행히도 날씨가 도와주어 비교적 선선하였으며, 차에 오르면 비가 내리고 차에서 내리면 비가 그치는 날씨요정의 도움이 있었다. 마르세이유나 바르셀로나는 나직한 구릉과 푸석바위가 보였으나 팔레르모의 산은 높고 바위도 단단해 보였다. 체팔루도 유명해져서 관광객들이 제법 많았다.

 

2024년 6월 14일(목) 아홉째날

드디어 로마여행이 있는 날이다. 여행이라기보다 그저 사람들 무리 속에 밀려다녔다. 콜로세움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진실의 입’은 철창 속에 있어 지나가다 보았다. 판테온 신전도 내부를 보지 못하였으나 입구 쪽에 오벨리스크가 있었고, 히에로클리프 언어가 보였다. 급히 검색을 해보니 이집트 이지스신전에 있던 오벨리스크라고 한다. 무슨 내용이었을까? 그리 높지 않았다.

 

지친 다리를 이끌고 ‘나보나 광장’ 주변 식당에 가서 화덕피자를 맛있게 먹었다. 광장 분수와 오벨리스크는 수리 중으로 둘러싼 천 틈으로 쓰윽 살펴보니 역시나 멋진 조각품이다. 분수에서 물을 보지 못하였다. ‘트레비분수’에는 물이 솟아나고 있었으며 분수의 조각상은 역동적이었다. 오대양을 관장하는 대양의 신 오케아노스가 중앙에 위치하고 양옆으로 바다의 신 트리톤이 보좌한다. 배경이 된 폴리 궁전은 분수가 완성된 후 앞면을 부수고 분수에 어울리게 재건축된 것이다. 2024년 한국의 양궁이 빛났던 프랑스의 앵발리드만큼은 아니나 빛나는 건축물로 보이는데 앞면만 그러하단다. 트레비분수는 로마에 물을 공급하는 수로의 끝자락인데 기능에 예술을 더했다. 풍요의 지속으로 아름다움과 디테일에 대한 추구가 강해졌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앤공주가 앉아 젤라또를 먹었던 ‘스페인계단’은 2019년부터 문화재보호 차원에서 앉거나 젤라또를 먹으면 벌금을 내게 되었다. 필자는 계단 아래에서 인증사진만 찍고 포폴로광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일행은 ‘포폴로광장 오벨리스크’ 앞에서 정해진 시간에 만나도록 약속하였다. 시원한 버스에서 심신의 피로를 풀며 배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작은 사고가 있어 로마에 대한 추억을 하나 더했다. 크루즈배는 정시에 출발하므로 조금 넉넉히 출발하였음에도 교통체증이 심하고 운전기사분이 돌아가는 길을 놓쳐 두 번 돌다 주차된 차와 사소히 부딪혔다. 터널 아래로 들어가야 배로 돌아가는 길인데 또 놓친 기사는 막무가내로 후진을 하니 십여대 줄지어 있던 차들이 좌우로 갈라져 일행은 무사히 제 시간에 배로 돌아왔다. 당시 이탈리아의 모든 차들이 올림픽 관련 파리로 갔는데 일행을 위해 달려와준 공로와 시간내 배로 도착하기 위한 노력을 생각하여 여행사대표가 운전기사에게 사례를 하였다고 톡에 올렸다.

 

내일은 한국으로 돌아간다. 저녁 후 짐을 쌌다. 짐은 직원이 크루즈입구까지 가져다 준다하였으나 우리집은 직접 들고가기로 했다.

 

2024년 6월 15일(금) 열흘째날

아침을 먹고 하선을 하였다. 하선하는 사람들이 한번에 몰려 승강기가 만원이라 몇 대를 보내고 맨 위 18층으로 거꾸로 올라갔다. 배 입구에는 직원이 가져다놓은 짐을 찾느라 기다랗게 줄을 섰다. 가능하면 자기짐은 직접 들고 오는 것이 번거로움을 덜한다. 13시간의 비행과 두 시간의 버스 탑승 후 대전에 도착하니 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차를 타고 편안히 집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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