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속에 만 권의 책이 들어 있어야 그것이 흘러넘쳐서 그림과 글씨가 된다라고 추사 김정희는 말했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채우기 위해서다. 교감직을 수행하다 보면 에너지가 소진되고 텅 비워질 때가 온다. 내 안이 허하면 만나는 교직원들에게 괜히 상처를 줄 수 있다. 표정이 굳어 있으면 나를 찾아 교무실에 오는 교직원들도 덩달아 경직된다. 교감은 늘 노출되어 있다. 교직원들 개인 개인은 잠깐잠깐 교감을 보지만 교감은 늘 교직원들을 대한다. 교감은 학교에 딱 혼자이기 때문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하는데 학교에서는 모든 일은 교감을 통해 진행된다.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다. 생각과 정서를 가다듬는 비법이 있다. 바로 독서다.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책을 집어 든다. 정서가 메마르고 있다는 위기 신호를 감지할 때 나는 어김없이 책을 찾는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정리한다. 교직원들과의 관계를 다시 돌아본다. 비워진 마음을 책으로 채우는 과정을 가진다. 꽉 꽉 채워지면 흘러 보낼 수 있다. 나도 모르게 교직원들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가 달라진다. 친절하게 대할 수 있고 조금 더 배려할 수 있다. 추사 김정희는 글씨와 그림으로 유명하다. 그의 글
새로 쓰는 교감 취임사 교감으로 첫 발령을 받았을 때 떨리는 마음으로 취임사를 쓴 적이 있다. 앞으로 교감으로 이렇게 생활하겠다는 선언이자 결심이었다. 시간이 흐르니 교감 생활도 익숙해졌다. 처음 마음이 점점 사라졌다. 덜컥 위기감이 들었다. 잘 나갈 때 그때가 가장 위험한 시기라고 한다. 새 학기를 맞이할 즘 다시 취임사를 써 본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심정으로 썼다. 잊지 않기 위해 책상 위에 붙여 놓았다. 교감 취임사 오늘 새로운 옷을 입고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환대해 주시고 반갑게 맞이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역할에는 권한과 책임이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제게 주어진 교감의 역할은 더더욱 책무성이 요구된다고 생각됩니다. 현장에 답이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안에서 답을 찾겠습니다. 독단과 독선이 아닌 경청과 협력으로 답을 찾겠습니다. 학교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곳입니다. 학교가 교육하는 곳이 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지 않겠습니다. 학교는 모두에게 안전한 곳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보호하고 각종 민원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습니다. 갈등이 고조되지 않도록 조정하는 역할을 감당해 내겠습
살얼음판을 걸어본 적이 있는가. 교감으로 산다는 것은 살얼음판을 걷는 일이다. 조선시대 다산 정약용은 조심조심 상황을 주시하며 살았다. 그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있는 집의 이름을 여유당(與猶堂)이라고 했다. 살얼음판을 걷는다는 뜻이다. 청와대 연설비서관을 지낸 강원국 작가도 청와대 생활을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다고 회상한다. ‘오늘도 무사히’란 구호는 택시 기사님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_ 『대통령의 글쓰기』, 63쪽. 교감의 위치가 살얼음판이다. 학교라는 곳이 좋은 일만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사는 곳이 다 그렇지만 특히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마음 졸이는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 뒤에는 항상 학부모가 존재한다. 사건의 중심에는 늘 교감이 있다. 갈등 중재자로 때로는 사건 책임자로 살얼음판 위에 놓인다. 하루하루 무사히 퇴근하는 날은 발걸음이 가볍다. 교감은 말을 많이 한다. 마냥 듣기 좋은 말만 할 수 없다. 학교라는 공동체 안에는 다양한 구성원들이 함께 살아간다. 의견을 수렴하고 조정하는 일도 살얼음판을 걷는 일이다. 구성원들의 자발성을 끌어내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사람의 본
『언어를 디자인하라』의 저자 유영만 지식생태학자는 자신의 직업을 소개할 때 자신의 정체성을 담아낸 나만의 네이밍을 별도로 생각해서 지어 말하라고 강조한다. 그 또한 대학 교수가 아닌 '지식생태학자'로 만나는 이들에게 자신을 알리고 있다. 나도 내 직업을 소개할 때 교감(校監)이라고 하기보다 독감(讀感)이라고 종종 표기 한다. 讀은 '읽을 독', 感은 '감동할 감'이다. 다시 말하면 단순히 학교 안에서 중간 관리자로 학교장을 도와서 학교의 일을 관리하거나 수행하는 사람으로 불리우기 보다 나의 정체성을 좀 더 담아낸 '독감(讀感)'으로 살아가고 싶다. 책 읽는 교감, 책으로 소통하는 교감, 책으로 성장하는 교감 그리고 더 나아가 평생 책을 붙잡고 감동 받은 대로 살고 싶다는 의미를 담아낸 나만의 네이밍이다. 이번 2월에 전입한 교직원과 기존의 교직원들이 함께 모여 올 해의 교육과정을 고민하고 협의하는 시간을 3일간 가진 적이 있다. 교장 선생님도 새로 오신 터라 협의하는 주간의 첫 시간을 여는 역할을 내가 맡겠다고 했다. 교무부장의 간단한 안내와 학교장의 부임 인사 겸 학교를 운영할 청사진을 듣는 시간 이후에 나 또한 교육과정 전반에 관해 교직원들에게
작은 학교에는 특수 교사가 없었다. 특수 교사를 대신해서 담임 교사가 특수 학생을 돌보고 보조로 지원해주시는 분이 배치된 학교에 근무한 적이 있었다. 약간 규모가 있는 학교에 오니 특수 교사를 보게 됐다. 특수 학급 담임으로. 보통 일반 학교에서는 일반 학급과 특수 학급을 합쳐 학급 수통계를 낸다. 특수학급도 엄연한 정식 학급이라는 말이다. 특수학급에 배치된 학생들은 장애 정도에 따라 통합학급에서 주로 생활하고 가끔 특수 학급에 가서 수업을 받는다. 그러다보니 초등학교에서 특수 교사를 담임으로 인식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특수교사 뿐만 아니라 병설유치원 교사도 마찬가지다. 병설유치원에 교사가 있는 것을 인지 못할 때가 자주 있다. 꼭 전달해야 할 사항들을 공지할 때 누락시겼을 때 서운한 이야기를 듣곤 했다. 얼마 전 특수 선생님이 속상한 나머지 "저도 담임입니다" 라고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소식을 전달받지 못해 당황스러웠다는 얘기였다. 아차, 싶었다. 교감인 나도 깜빡 잊고 있었으니까. 소식을 전달할 때 특수교사을 누락한 담당 선생님도 아마도 깜빡 했을 것이다. 급하게 교사 단톡방에 앞으로는 꼭 특수교사를 빠뜨리지 말것을, 특수교사도 담임교사임을 잊지
고전 읽기는 언제나 후회되지 않는 선택이다. 단지 주저할 뿐이지. 고전은 깊은 우물과도 같다. 한 번 길어 마시기가 어렵지 갈증을 해갈하기에 이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살다보면 어려움에 직면하곤 한다. 승승장구하다보면 나 잘난 맛에 취해 자칫 교만하기 쉬워진다. 교만함은 다른 데있는 것이 아니라 고집을 굽히지 않고 자기만 옳은 줄 알고 설쳐대는 모습이 아닌가 싶다. 옹고집. 교만의 늪을 빠져 나오는 방법 중에 하나는 고난을 만나는 것이다. 아니 고난을 맞이할 수만 있다면 당장은 속이 쓰리고 힘에 겨워 지쳐 지낼 수 밖에 없지만 나중을 돌아보면 차라리 고난을 만난 것이 복이다. 자신을 돌아보고 겸손하게 만드니까 말이다. 노인과 바다는 젊은이들이 읽어야 하는 책이다. 인생의 정상에 오르고 있는 이들이필히 읽어야 한다. 이 책의 표지에 적힌 '85' 는괜히 써 있는 숫자가 아니다. 한 때는 팔씨름 대회에서 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팔 힘을 가졌던 청년이었지만 지금은 조금만 무리해도 손에 쥐가 날 정도로노약해진 그가 바다에 나갔다가 아무런 소득 없이 힘없이 돌아온 기간을 말한다. 만선을 꿈꾸며 나갔지만 85일 동안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돌아왔을 때 그의 심정은 어
“왜 그렇게 버릇이 없느냐? 너의 선생님에게 존경심을 표하고 항상 인사를 드려라” 기원전 1700년 수메르 점토판에 쓰인 글귀다. 당시에도 기성세대가 신세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나 보다. 역사는 반복되는 건가! 나도 신세대였을 때 될 수 있는 한 교감 선생님이 있는 교무실에 가고 싶지 않았다. 교감 선생님은 늘 지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X세대인 내가 교감이 되었다. 마음은 아직 청춘 같은데 말이다. 현재의 MZ세대들도 지금은 신세대지만 시간이 흐르면 기성세대가 되어 다음 세대들을 향해 ‘왜 그렇게 버릇이 없느냐’ 고 매몰차게 야단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나름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MZ세대를 이해하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한다. MZ세대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익숙한 IT 도구도 X세대 교감인 나에게는 따라가기가 버겁다. 특히 나는 기계치다. 디지털 시민으로 살아가야 할 세상에서 문맹자와 다를 바가 없다. IT도 따라가기가 벅찬데 갑자기 메타버스까지 익혀야 한다고 하니 눈이 똥그래질 수밖에 없다. 일하는 방식이 좀 더 스마트하지 못하더라도 조금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X세대는 권위에 순응하는 시대를
무임승차라는 말이 있다. 국어사전의 뜻을 보면 차비를 내지 않고 차를 타는 행위를 말하지만 좀 더 의미를 확장해 보면 사회 일반 분야에서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이익만 누리려는 현상을 뜻한다. 우리 교직에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갈수록 교원단체에 가입을 하지 않는 현상들이 두드러지고 있다. 해외사례를 보면 교원단체 가입률이 우리보다 월등히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교원단체에 적극적으로 가입하여 단체의 힘을 빌려 권리를 주장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단체에 가입하기보다 주변언저리에 머무르며 멀찍이 지켜보자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나는 신규 교사 때선배 교사의 권유로 교원단체에 가입했다. 그리고 지금은 교감으로 분회장 역할을 맡고 있다. 정기적으로 교원단체 신규 회원 유치에 힘써 달라는 각종 안내문을 접수 받는다. 고민이 깊어진다. 학기 중 바쁜 와중에 교사들에게 공람되는 안내문은 그리 효과가 없다. 어떻게 하면 교사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일대일로 접근하는 방법만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사실을. 물론 시기도 중요하다. 분주한 일과 중에는 안내문을 건네는 것 조차미안할 때
하루에 몇 시간이나 교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지 계산해보았다. 8시간 근무 중에 점심 먹는 시간 30분, 화장실 가는 시간 30분을 합해서 한 시간 정도를 빼고는 대부분 책상에 앉아 있는 것 같다. 아마 다른 교감선생님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올라온 공문을 검토하고 확인하고 결재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허리가 아파오고 목이 뻐근해지면 ‘아차, 벌써 두 시간이 지났구나’ 하게 된다. 뒤늦게라도 이때 일어나서 허리도 풀어주고 어깨도 돌리면서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 전화가 걸려오거나 행정실에서 교감을 찾으면 다시 일 모드로 돌아간다. 점심 먹을 때쯤이나 되어서야 잠깐 일에서 벗어나 주위를 돌아본다. 점심먹고 남은 시간에 쉬면 좋겠지만 산더미처럼 쌓인 일을 생각하면 다시 컴퓨터 앞으로 가게 된다. 오후라고 해서 형편은 나아지지 않는다. 오전보다 바빴으면 바빴지 한가하지는 않다. 선생님들도 수업을 마치고 오후부터 각자 맡은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오후 3시부터 퇴근까지는 결재로 올라오는 공문이 많게는 30건이 넘을 때도 있다. 에휴. 교감 생활을 하루 이틀 할 것도 아닌데 이러다가 병 날 수 있겠다 싶다. 어떻게든 이 바닥에서 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기존과는 전혀 다를 것으로 예측된다. 디지털 시민이 되지 않고서는 상식과 통념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될 것이다. 학교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최근 들어 학교도 일하는 방식이 바뀌고 있고 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교직원들이 일하는 방식이 디지털 기반으로 바뀌는데 교장, 교감이 옛날 방식만 고집하면 일이 제대로 진행될리만무하다. 그렇다면 디지털 리더십이란 무엇일까? 디지털 리더십은 현장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디지털이 기반이 되기 때문에 권한 위임도 충분히 할 수 있다.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표현할 수 있으니현장 교사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의견 수렴을 위한 IT 도구들만 잘 활용하면 디지털 리더십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미래가 소환되었다고 한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익혀야 하는 가장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학교는 다른 직장보다는조금 천천히 가도 크게 불편함이 없는 조직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로근무 형태가 다양화되고 수직적인 학교 문화도 수평적으로 변하고 있다. 또 일방적지시 형태의 문화가 서로 협업하고 공유하는 문화로 바뀌고 있다.
50이 되면 누구나 건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아침마다 식사를 제때 못 챙겨 먹어도 건강보조식품은 잊지 않는다. 누가 건강에 좋다고 하면 귀가 솔깃해 진다. 건강은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부터 챙기라는 말이 피부에 와 닿는다. 학교에 근무하다 보면 건강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술담배 전혀 하지 않고 살아왔음에도 2년마다 하는 정기 건강검사 때는 혹시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올해에는 아내의 간곡한 부탁으로 생애 처음으로 대장내시경을 받았다. 위와 대장을 한꺼번에 검사할 수 있는 수면 내시경으로. 검사받는 것보다 검사를 준비하는 과정이 고통스러웠다. 이구동성으로 교직원들이 하는 얘기가 있다. 요즘 학교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 교감이라고. 그렇다보니 점점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게 된다. 몸이 경직되는 것이 느껴진다. 손가락과 눈동자만 주로 움직이니 몸의 근육이 불균형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최대한 앉아 있는 시간을 줄이고 몸을 움직이려고 노력하지만 그게 잘 안 된다. ‘컴퓨터 모니터 높이를 조절하는 장치를 따로 구입해야하나?’ 라는 생각도 해 본다. 업무를 보면서 의도적으로 스트레칭을 하는 습관을 가져 본다.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좌우로 비틀고
사람들이 모이면 도시가 된다. 도시로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일 먼저는 생활의 편리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직업을 위해서든 교육 때문이든 결국 사람들을 모이게끔 하는 뭔가의 이유가 도시에게 있으며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자연스럽게 도시의 위용을 갖추게 된다. 현재도 그렇거니와 과거에도 수 많은 도시들이 만들어졌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해 왔다. 유서깊은 도시는 그만큼 사람들이 왕성하게 모여 활동을 했다는 증거가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와서 도시의 필요성을 회의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감지되고 있다. 아마도 감염병에 취약하기 때문이라는 생각때문이다. COVID-19 로 시작된 팬데믹 위기는 시작일 뿐 앞으로도 생각지도 못한 감염병이 인류를 지속적으로 위협할 것임은 분명하다. 감염병의 창궐은 현대의 도시의 모습을 변형시킬 가능성이 크다. 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한 가장 단순한 방법은 흩어지는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도시를 쪼개는 것이다. 감염병 뿐만 아니라 기후 재앙이라고 불리는 재난이 도시를 위협하는 존재로 남아 있다. 산불, 허리케인, 홍수, 가뭄, 지진 등 천재지변은 도시를 사라지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학교에 젊은 교사들이 유입되고 있다. 강원도 A시는 한 때 신규 교사를 포함한 20대 젊은 교사 비율이 전체 교사의 50%를 넘을 때도 있었다. 3년간 그들과 함께 근무하면서 꽤 속앓이를 많이 했던 경험이 있다. Z세대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였다. X세대에 대한 시각도 곱지 않았다 나는 X세대다. 당시에는 기성세대가 X세대를 바라보는 시각도 곱지 않았다. 개성이 강한 세대라고 여겨졌으니 말이다. 그런 X세대가 이제 교감이다. Z세대 신규 교사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은데 막상 직접 접해보니 부딪히는 게 꽤 많았다. 코로나19 이후 학교 근무 문화는 전과 비교할 수 없게 달라지고 있다. 수업 형태도 원격 수업이 이젠 자연스러울 정도다. 언택트 시대에 X세대들이 우왕좌왕할 때 Z세대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자기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이제 Z세대에게 배워야 할 정도다. X세대인 나의 사고방식과 행동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 같다. Z세대는 느슨한 연대와 인간적 거리두기를 노멀로 여기는 세대다. 직장 안에서 촘촘한 인간관계를 거부한다. 자신의 취향과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되 가급적 거리두기를 원한다. 사생활 언급은 특히 주의해야 할 사항이다. 과도
우리나라는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했다. 노인 인구 비율이세계 최고를 향해 가고 있다. 반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아이 한 명 한 명이 귀하다는 얘기다. 아이 한 명을 키우기 위해 마을의 이웃들이 함께 돌보며 마을에 있는 물적자원들을 적극 지원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학교만이 아이를 책임지는 분위기에서 마을이 함께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학교 교육과정 안에 마을 교육과정이 들어와 있다. 학교 교사만교육을 짊어지는 게 아니라 마을 주민들 중 자원하는 이들이 프로그램들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져 가고 있다. 교육에 대한 책임 주체도확대되고 있다. 학교를 넘어 지역사회가 아이들을 보호하고 키우는데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 곳곳에 마을교육공동체가 확산되고 있지만 보완해야 할 점 등이 많다고 본다. 마을선생님이라는 제도가 정착하고 있지만 예산에 종속되는 감이 없지 않다. 지자체에서 교육경비 명목으로 학교로 교부하는 예산은 강사비로 쓰게 되어 있다. 그렇다보니 외부강사로 다양한 분들을 학교 안으로 모신다. 양적인 면으로는 프로그램 숫자가 많아져 활성화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질적인 면은 평가하기아직 모호하다. 예산 지원이 중단되면 프로그
조용민 구글 커스터머 솔류션 매니저의 언바운드로부터 학교 조직 내 교감의 역할이 어떻게 변화해야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의 첫 화두는 이렇게 시작한다. "지금까지 해온 대로 한다면 지금까지 얻어왔던 것도 놓치게 된다" 코로나 팬데믹을 맞이하여 어떤 조직이든 급격한 변화 속에 살아남기 위해 조직을 재정비하고 기존의 방식을 혁신하고 있다. 학교도 예외일 수 없다. 항간에는 학교 내 변화의 둔감성에 대해 21세기의 학생들을 20세기의 교실에서 19세기의 교사들이 가르치고 있다는 웃픈 이야기가 떠돌아다니고 있다. 물론 과장된 표현이기는 하지만 혹시나 이것이 사실이라면 서둘러서라도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 밖에 없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특히 학교 내 중간 운영자(관리자)라고 하는 교감의 포지션이 과거의 모습을 답습하고 있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된다. 이에 조용민 구글 커스터머 솔루션 매니저의 일침은 허투루 넘겨서는 안 되며 MZ세대 교사들이 대거 학교 내로 유입되고 있는 상황에서 리더십을 행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뼈를 깍는 노력 없이는 힘든 시기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한다. 학교 내 교감선생님들께 일독을 권한다. 교감의 역할 1 : Trend 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