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그리 많지 않다. 멈춰선 시계, 자그마한 강아지, 잎새를 떨구어 버린 겨울나무, 그리고 백합화 한 송이이다. 욕심을 더 부려 본다면 웃고 있는 아이들과 아끼는 시집이다. 나는 어른이면서도 다 자란 아이들(어른)에게는 관심조차 없다. 내가 어른이라는 사실도 여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리 집에는 세 개의 시계가 제각각 이다. 안방에 걸린 시계는 뻐꾸기시계인데 1년 가까이 잠을 자고 있지만 아무도 깨울 생각이 없다. 쫓기듯 달리는 일상을 뒤로하고 퇴근 후에 그 시계를 보면 마음이 편안해서 여간 좋은 게 아니다. 때로는 쉬고 있는 그 녀석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일어나 달리지 않아도 되는 그 ‘자유에의 몽상’을 그 녀석을 통해서 나마 대신 누리고 싶음이리라. 거실에 걸린 시계는 5분 정도 빨리 달리는 부지런한 녀석이다. 약속 시간을 매우 소중히 여기는 남편을 참 많이도 닮았다. 그러고 보니 거실의 째각이는 우리 집에서 가장 부지런하다. 소리도 요란하고 쉴 줄도 모르는 것이 영락 남편의 부지런한 성깔과 꼭 빼 닮았다. 눈뜨는 아침부터 잠드는 늦는 시각까지 회사 일이 인생의 전부인 냥, 기뻐하고 고뇌하며 촌음을 다투는 그의 성실함과 잘 어울리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꿈꾸며' 나는 지금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이다. 그리고 교직 경력도 25년 차의 현직 교사이다. 나아가 문학을 짝사랑하는 열병에 빠진 지 10년째다. 남편과 두 아이를 둔 중년의 아줌마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이제 서서히 하산을 준비하며 지나온 삶을 깨끗하게 하나씩 청소하고 갈무리하며 더 이상 일거리를 만들지 않고 조용히 사라질 준비를 말없이 해야 하는 나이라는 생각에 새벽잠을 설치곤 한다. 극한 가난을 딛고 서서 이제야 갈증이 풀리고 삶의 ‘ㅅ’자를 겨우 찾아 평탄한 길로 들어섰나 싶은데, 살아온 시간이 오직 나 자신만을 바라보며 옆길도 옆 사람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고집스럽게, 미련스럽게, 욕심 많게 살아온 흔적밖에 보이지 않아 조바심이 난다. 특별하게 제자들을 잘 기른 것 같지도 않고 문학을 짝사랑하며 그에게서 프러포즈를 받을 기미도 보이지 않으며, 가정도 그저 무난하게 지켜왔을 뿐이니, 지상의 여행이 끝나는 날, 그 분 앞에 가서 무엇 하나 똑 부러지게 내놓을 과제가 없어 밤잠을 설치고 있다. 이제 찬바람 부는 늦가을 언덕을 향해 달음질치며 내려가고 있는 이 나이에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을 받아든 지금, 생의 첫 페이지
아이들이 제일 싫어하는 비가 온다.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비 오는 날을 참 좋아하는데…. 우리 1, 2학년 다섯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2교시 후에 있는 자유 놀이 시간인데 장마철이라 밖에 나가지 못하니 실내에서 노는 모습이 안쓰럽다. 생각다 못해 즐거운 생활 시간에는 2학년 노래 중에서 3박자로 된 곡을 연습했다. 마침 오늘이 2학년 나라의 생일이기도 해서 깜짝 공연을 준비했다. 처음 접한 3박자의 곡을 실감나게 배우게 하려고 간단한 왈츠를 만들어 반복 연습을 하게 하니 아이들이 참 좋아했다. 노래 연습을 다 한 뒤, 쟁반 노래방으로 자기 차례를 익힌 다음, 각자 나와서 노래 자랑하기, 노래에 맞춰 왈츠 배우기, 생일 카드 만들기 등. 짝을 바꿔가며 왈츠를 추다보니 아이들과 눈높이를 같이 하며 내가 더 행복했다. "노래를 참 잘 하네. 목소리를 더 크게, 입도 더 크게, 박자에 맞춰 몸도 같이 춤을 추면서, 참 잘 하네..." 아이들은 칭찬에 참 약하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도 금방 커진다. 아이들의 눈이 그렇게 맑고 투명하다는 것을, 깜찍하고 귀엽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며 이렇게 아름다운 직업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참으로 감사하게 된다. 색종이
먼 길 찾아온 제자에게 은아야, 아무런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온 네 모습에 잠깐 동안 당황했었단다. 예의바르고 단정한 것으로 치자면 내 제자 중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분명한 너의 모습에 비추어보면 오늘 같은 갑작스런 방문은 정말 예상 밖이었단다. 내가 출장이라도 가는 날이었더라면, 갑작스런 일로 교실을 비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 얼마나 서운했을까? 뒤집어놓고 생각해보면 너와 나 사이에 그만큼 격이 없을 만큼 친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지? 아무런 연락 없이 찾아가도 반겨주는 어버이처럼, 나도 너에게 그렇게 가까운 의미로 새겨져 있어서 오히려 고마웠단다. 23년 전, 결혼과 함께 초보 교사 2년차인 내가 6학년인 너를 만나 담임이 되었을 때, 매사에 분명하고 실수하나 용납하지 않으며 우등생이던 네 모습이 너무 단정해서 오히려 내가 더 긴장하곤 했었던 것을 아니? 이름처럼 곱던 글씨체하며 빼어난 글 솜씨로 성실함 그 자체인 네 일기장을 보던 일은 큰 기쁨이었단다. 학생 수가 많은 교실에서도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착하고 부지런했던 너희들은 공부까지도 잘 해서 고흥남 초등학교를 빛내주었었지. 그런데도 나는 첫 졸업생인 너희들을 다 가르친 다음에 졸업을
*삶에 고통이 따르는 이유* 생선이 소금에 절임을 당하고 얼음에 냉장을 당하는 고통이 없다면 썪는 길밖에 없다. *사과* 처음에는 하찮은 작은 돌멩이였던 것이 미룰수록 점점 더 커진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그 사람과의 통로를 막아버리는 바위가 된다. -정채봉 중에서- 엄청난 사건으로 온 국민들의 가슴에, 특히 자식을 군대에 보낸 어버이와 가족들을 불안하게 하고 침통하게 한 사건. 각종 매체와 인터넷을 도배하다시피 갑론을박으로 논쟁을 펼치는 모습을 바람직하게 보고싶은 게 솔직한 내 심정이다. 전통적인 유교 국가였던 이 나라의 역사적 전통으로 보아 정치나 사회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때로는 익명성을 무기로 욕설이 난무하는 모습까지 포용하기에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 흐르는 물결을 읽으면 우리 국민들의 성향과 세대간의 차이가 분명하고 지위나 환경에서 오는 뚜렷한 가치관의 차이를 볼 수 있다. 모든 탓을 정치가에게 책임 전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앞만 보고 뛰면서 늘 경쟁으로 몰아온 교육을 질타하는 사람, 자기 자식을 기죽지 않게 키우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라고 종용해 온 유별난 가정교육 탓이라고 꾸짖는 목소리도 높다.
"곡식 농사는 적자를 보아도 자식 농사만 잘 지으면 원이 없겠으나, 자식 농사가 안 되어 다들 농어촌을 떠날 수 밖에 없다" 는 농어촌 현실, 매년 통폐합 찬반 여부를 묻는 설문지로 언젠가는 폐교 될 것이라는 불안을 키우는 교육 행정. 우리 연곡분교장은 폐교의 계곡을 지나 이젠 도약의 걸음마를 시작한 지 1년이 넘었답니다. 그 1등 공신은 바로 '전교생 바이올린 지도' 입니다. 시골 학부모님들이 가장 원하는 방과후 교육 활동의 갈증을 풀어 드린 것이, 학교와 학부모, 아이들을 돌아오게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바이올린 강사에게 아이들만 배우게 할 경우, 학생 지도나 성과면에서 소홀할까봐 우리 학교에서는 선생님들도 아이들 사이에서 같이 배웁니다. 그리고 틈나는대로 복습도 시킵니다. 전교생 16명과 선생님들이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바이올린 현을 고르며 한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이름하여 음악 가족이지요. 작년에는 군 학예발표회에 나갔고 올 가을에는 산골분교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 계획으로 오늘도 열심히 연습한답니다. 저도 아이들보다 앞서 가려고 손가락 끝이 부르트도록 연습을 하곤 합니다. 오늘처럼 젊은이들이 유명을 달리한 슬픈 날에는,
나는 가끔 일탈을 꿈꾼다. 그 방법이란 것이 간단하지만 쉽지 않은 것이 문제이다. 재잘대던 아이들이 돌아간 교정은 나무들과 까치들, 그리고 나방이 교실로 달려들어 친구하자며 조른다. 말이 없어 좋은 그 친구들의 손짓에 좋아하는 책을 한 권 들고, 모차르트의 플루트 4중주로 귀를 열면 된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등산을 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지만, 높이 오를수록 시야가 넓어지니 숨이 차오르고 주저앉고 싶지만, 정상에 올라서 짧은 순간이나마 탁 트인 산야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아찔하게 행복한 기다림의 순간을 알기에 기꺼이 오를 수 있으리라. 30여 념 동안 앞만 보고 내닫던 뜨겁던 젊음은 사라졌지만, 좁은 산길을 오르며 만나는 개망초 한 다발, 산딸기 한 꼭지에 고단함도 한 순간에 내려놓을 수 있을 만큼 여유로워진 시간의 무게를 느끼는 지금을 사랑한다. 내가 아니면 유지되지 않을 것 같던 집안 살림도 약간은 포기를 하고 곁에 없으면 못 살 것 같은 남편도 주말부부로 다시 익숙해져 가고 있다. 출퇴근 하느라 자동차 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억울하고 몸에게도 미안하여 감행한 자취생활이 자연스러운 일탈로 이어져서 다시 젊음의 그날처럼 책과 음악과 글쓰기로 몰입하
이제 막 눈을 뜬 벚꽃이 팝콘처?와르르 터져서 군침이 돌게 하는 벚꽃의 행렬로 산 속 학교는 날마다 축제 분위기입니다. 어쩌면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우리 연곡분교장의 전교생이 동네 교회에 나가서 바이올린과 부채춤을 공연하던 날 밤에 내린 하얀 눈으로 학교가 온통 하얀 등을 켰던 때처럼…. 교정의 나무들이 켜 놓은 하얀 수은등을 두고 잠을 잔다는 것은 벚꽃에 참 미안한 일입니다. 저렇게 한 자리에서 한 순간에 모든 정열을 터뜨린 그 옹골차고 기특한 모습, 겨우내 지켜낸 꽃망울의 인내와 수액을 고르며 꽃 피울 그 날을 위해 참아온 뿌리의 질긴 모성애를 생각하면 모두 떠난 교정에서 나만이라도 눈이 시리도록 봐줘야 될 것 같습니다. 꽃들이 보이기 위해 피는 것은 아니지만 꽃처럼 살고 싶어지는 부질없는 욕심에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며칠만이라도 바람도 불지 말고 비도 오지 않기를…. 그래서 좀 더 오래 곁에서 보고 싶습니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아무런 말도 없이 꽃 피울 그 날을 어기지 않고 약속을 지키고야 마는 무언의 가르침을 들어보려고 현관을 나서니 키 작은 데이지 꽃이, '주인님! 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날마다 피었는데 저는 봐주지 않나요? 내 친구 팬지의
“연곡 분교 어린이들은 모두 2층 다목적실로 바이올린 들고 모이세요.” 오늘은 KBS 2TV에서 우리 학교 아이들을 취재하러 오는 날입니다. 오마이뉴스에 학교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서울에 있는 방송국 작가 선생님들이 자주 전화를 하여 조르더니 실행에 옮긴 거랍니다. 내일 민간 기업과 자매결연으로 갯벌체험 학습을 가게 되는데 사전에 학교생활부터 찍겠다고 해서 기꺼이 허락했습니다. 전교생 바이올린 학습 장면과 사물놀이 장면, 핸드벨 연습 장면, 계곡 물놀이 장면 등…. 금년에만 벌써 세 번째입니다. MBC 심야스페셜에 ‘지리산의 봄’으로, 며칠 전에는 KBS 1TV, ‘성장다큐 꿈’에 우리 학교 아이들이 출연했답니다. 그러고 보니 이제 우리 분교 아이들은 카메라 앞에서도 의젓하게 말하곤 합니다. 당당하게 발표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역 탤런트를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끔은 수업 시간 침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긴 하지만 방송국까지 현장체험 학습을 가지 않고도 만날 수 있는 프로듀서와 작가 선생님, 카메라 기자를 통해 세상을 넓게 볼 수 있으니, 그것도 살아있는 교육이라는 게 제 소견입니다. 다양한 직업 세계를 보는 눈, 사물을 다양한 시각으로 보는 사고
봄기운이 완연한 오늘 아침의 등굣길은 아일렌베르크 리하르트의 아름다운 관현악곡 '숲 속의 물레방아' 속의 한 장면 같았다. 조용히 흐르는 시냇물, 나무숲에서 푸릉푸릉 날아와 지저귀는 새들의 노랫소리…. 달려오는 아이들의 재잘대는 목소리도 이젠 새소리처럼 들린다. 아직도 꽃을 덜 피운 동백꽃은 잎새에 숨어서 숨바꼭질 하듯 피어 있고 철쭉도 꽃부터 피우려고 벌써 기지개를 펴고 있다. 지난해에 부지런한 이주사님께 머리를 깎인 키 작은 매화나무는 옹골차게 꽃들을 달고 봐주라고 손짓한다. 매화마을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고 부르고 서 있다. 그렇게 한참 동안 해찰을 하고 들어오니 은혜와 진우가 교실 바닥에 엎드려 독서중이다. 그런데 늘 단정하고 예쁜 은혜와 진우의 모습이 좀 이상했다. 머리를 긁적이고 얼굴은 얼룩덜룩하다. "은혜야, 세수 안 했니? 머리는 왜 그래?" 은혜는 대답 대신 머리만 긁었다. 상황을 보니 아침밥도 먹지 않은 것 같고 이도 닦지 않았고 세수도 안 했다. 아이를 데리고 교무실로 가서 따뜻한 물에 얼굴을 씻기고 이를 닦게 하고 머리를 빗겼다. 알고 보니 외할머니께서 동네 어른들과 아침 일찍 봄나들이를 가시느라고 아이들이 등교 준비를 한 모양이다. 비상
-질병을 돌보되 사람을 돌보지 못하는 의사를 작은 의사라 하고, 사람을 돌보되 사회를 돌보지 못하는 의사를 보통의사라 하며, 질병과 사람, 사회를 통일적으로 파악하여 모두를 고치는 의사를 큰 의사라 한다. -의 서문에서- 요즈음 내가 읽고 있는 책 에서 인상 깊은 대목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내 일기장에 위의 말을 이렇게 고쳐 보았습니다. '지식을 가르치되 제자를 돌보지 못하는 선생을 작은 스승이라 하고, 제자를 돌보되 사회를 돌보지 못하는 선생을 보통 스승이라 하며, 지식과 제자, 사회를 통일적으로 파악하여 모두 고치는 선생을 큰 스승이라 한다.'라고. 이렇게 고쳐보니 나는 작은 스승도 못 된다는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르게 됩니다. 다시금 깨어나는 선생이 되어야 함을 절실하게 느낍니다. 노먼 베쑨은 캐나다 출신 의사로 자신의 직업에 투철한 사명감과 열정을 쏟은 실제 인물입니다. 그 자신이 결핵에 걸려 죽음의 문턱에서 회생한 후, 오직 환자의 아픔에 동참하는 삶을 전개합니다. 환자의 발생은 가난한 사회 구조임을 알고 사회 문제에까지 뛰어들어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스페인, 중국으로까지 들어가서 항일투쟁과 의료 활동을 펴면서 슈바이처 못지않게 존경받는 의사로서
나는 지금 내 인생의 후반전을 시작하고 있다. 학교 일이 끝나고 퇴근도 하지 않은 채, 나 자신과 내기를 하고 있다. 짙은 밤꽃 향냄새가 산등성이를 타고 동네를 지나 교정에 내려 앉아 짙푸른 나무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참살이(웰빙) 하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으리라.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시로 귀향하는 토요일에는 작은 한숨마저 나오곤 한다. 매연과 소음, 더운 공기 가득한 집을 찾아, 가족을 찾아 일터인 이곳을 벗어나는 일을 아쉽게 느낄 만큼, 이제 나는 지리산 피아골 계곡을 사랑한다. 지극히 일상적인 아내의 역할, 어머니의 역할이 기다리는 주말을 비껴서 학교로 돌아오면 숨통이 트이곤 한다. 흙냄새가 나는 땅, 나비들이 날아다니고 풀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는 산골 학교는 어릴 적 고향의 모습을 닮았다. 아이들과 함께 배우는 바이올린, 점심시간에 교정을 쩌렁쩌렁 울리는 사물놀이 한마당, 계곡을 타고 흐르는 말간 시냇물 소리는 영혼마저 맑게 한다. 아이들도 산과 물을 닮아 착하고 예쁜 이 곳. 내일이면 갯벌체험을 간다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묻혀 하루가 간다. 낮에는 아이들과 즐겁게 공부하고 밤이면 부엉이처럼 눈을 키우고서 책들과 이야기하는 즐거움이 나를 붙잡
점심시간에 급식실로 들어돈 5학년 지현이의 눈이 퉁퉁 부었다. 이유를 알아보니, 어제가 생일이었는데 부모님이 깜박 잊고 못 챙겨줘서 부모님께 투정을 부리는 바람에 꾸지람을 듣고 울어버렸다고 한다. 우리 연곡분교는 초등학생 16명, 유치원생 9명으로 모두 25명의 학생이 다니는 작은 학교이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의 자질구레한 일들이 모두 알려지고 가족처럼 지낸다. 두 학년을 묶어서 담임을 하지만 구분 없이 모든 선생님이 전교생을 지도하는 일이 많다. 바이올린도 그렇고 사물놀이도 4학년 이상 모두 참여한다. 체험학습에는 유치원생들도 함께 가곤 했다. 도시 학교에서처럼 집단따돌림이라든가 학교폭력이라는 단어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오히려 그런 단어를 가르치려면 설명하는데만 꽤 시간이 오래 걸린다. 요즈음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내리사랑을 너무 많이 받아 탈이다. 생일만 해도 그렇다. 우리 1학년들도 자기 생일인 날은 마치 큰 자랑거리인양 아침부터 친구들에게 광고를 한다. 축하를 꼭 받아야겠다는 듯이…. 그럴 때마다 나는 한 마디 하는 걸 잊지 않는다. “얘야, 생일은 물론 축하를 받는 날이야. 그런데 그것보다 더 먼저인 것은 낳아주신 부모님이 너를 낳아 기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