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세계 여행은 점점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갔다. 옐로우나이프, 누구나 죽기 전 한 번은 마주하고 싶은 오로라가 존재하는 곳이다. 인생의 버킷 리스트에서 늘 상위권을 차지하는 오로라를 직접 볼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여행 시작 후 1년을 넘게 줄곧 따뜻한 나라로만 전전하던 우리는 기꺼이 영하 40도의 얼음 나라에 뛰어들기로 작정한다. 하지만 오로라 찬양에 앞서 캘거리에서 옐로우나이프로 가는 1,800km, 왕복 3,600km에 대한 웃음기 싹 뺀 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다. 당시 우리에게는 돈보다 시간이 많았다. 캘거리에서 옐로우나이프로 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단 2시간이면 도착하는 비행기에 오르는 것이었지만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 렌터카를 선택했다. 캘거리 공항에서 차량을 렌트한 후 에드먼튼까지 반나절, 도로 옆 하얀 눈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보며 역시 차로 이동하길 잘했다고 우쭐대는 남편과 함께 희희낙락 거리며 도시를 빠져나가는 길이었다. 그날 따라 유독 자주 눈에 띄던 자동차 사고. 두 세 대씩 추돌한 사고는 예사 4중, 6중, 8중 추돌은 물론이고 거꾸로 뒤집힌 자동차도 여럿이었다. ‘아니, 캐나다가 이렇게 사고가 많은 나라였나?’
그녀, 아내의 이야기 남편에게는 제2의 고향이라고도 할 수 있는 뉴욕에 입성했다. 군대 제대 후 졸업 전 마지막 학기를 남겨둔 채 달랑 100만 원을 손에 쥐고 뉴욕으로 떠나 3년을 버틴 이야기, 난 이걸 백 번도 넘게 들었다. 돈이 없어 하루 한 끼로 때우고, 정기 승차권 한 장으로 여러 명의 친구들과 돌려써야만 했던 궁핍했던 유학 시절의 이야기 말이다. 올랜도에서 신나게 논 후 뉴욕으로 향하는 18시 간의 버스 안에서 그의 회상은 최고조에 달했다. 기대가 컸던 탓일까, 반발심 때문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조금씩 함께 그려나가고 싶은 우리의 하얀 도화지에 완성된 그림이 먼 저 그려져 있어 샘이 났던 것 같다. 도착 첫 날, 화려한 브로드웨이 42번가를 그려 넣으려 무지개색 펜을 딱 들었는데, “아! 그건 여기 이미 다 그려져 있어!” 하며 날 안내하는 T군. 여행에서 느끼는 나의 즐거움 중에는 호기심 어린 T군의 눈을 보는 것과 열정 적으로 누르는 그의 셔터 소리를 듣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게 빠져버린 뉴욕 여행은 그저 싱겁게만 느껴졌다. 일주일이 지나고, 함께 캐나다로 단풍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있다가 가자고 자꾸 미루는 남편이
‘까먹은 척 현관 앞에 놓고 나갈까?’ 한국을 떠나는 날 운동화 끈을 묶으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없으면 아쉽고 있으면 또 냅다 버리고 싶은 준비물, 가이드북이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첫 대륙인 중남미 편만 챙겨 넣었다. 들으면 알만한 도시들로만 구성되었고 내용 중에 반은 눈곱만큼도 매력적이지 않은 사진들이 차지하고 있는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이드북 이 손에 쥐어져 있으면 녀석에게 의지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사람들 다 가는 곳에 나만 못 가 본다면 뒤처지고 손해 보는 심정이랄까? 한마디로 가이드북 노예로의 전락이다. 중남미를 여행하며 지나간 곳의 페이지들을 조금씩 찢다 보니 어느새 책은 너덜 너덜해져 있었다. 에콰도르에서 독일로 넘어가는 날 마침내 그놈의 계륵같은 가이드북으로부터 해방! 물론 처음엔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봐야 할지, 어디서 자야 할지 막막했지만 이내 세상의 길은 한국어 가이드북만이 알려 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다. 그동안 손에 쥔 책이 밝혀 주는 길이 너무나 확고해서 수천수만이나 되는 샛길들을 그냥 지나쳤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대신 유럽 여행에선 틈만 나면 구글을 이용해 정보를 검색했다. 현재의
캠핑카 여행을 하며 미국 유타 주에 있는 커내브라는 마을에 머물렀을 때의 일이다. “아니야, 여기도 없어.” 해가 진 후 우리는 마을 곳곳을 돌며 도둑놈처럼 기웃기웃 염탐을 했다. 거북이처럼 느릿하게, 작은 마을의 이 구석 저 구석을 헤집고 다니며 돌기 시작한 지 여덟 바퀴 만에 마침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 바로 여기야! 여기서 와이파이가 터져!” 캠핑카일 경우 그날의 잠자리를 좌지우지하는 건 화장실의 존재 유무다. 그래서 휴게소 화장실 근처가 차숙을 하기에 딱 좋다. 하지만 화장실과 부엌까지 딸린 캠핑카에서 없는 건 딱 하나, 문명인의 필수품 와이파이다. 우리나라처럼 인심 후하게 무료로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는 나라는 드물기 때문에 운이 좋아야 어쩌다 동네 한두 개쯤 비밀번호가 없는 와이파이를 찾을 수 있다. 오늘은 운 좋게 코인 세탁소 옆 공터에 자리를 잡았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퇴근하듯 이 공터로 돌아온 지도 벌써 나흘이 지났다. 코딱지만한 마을에 나흘씩이나 머물고 있는 이유는 ‘더 웨이브(The Wave)’라는 관광지 때문이다. 쉽게 떨어져 나가는 사암층으로 이루어져 있어 하루에 딱 20명에게만 출입이 허락된 곳이다. 10
마트에 가면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한 부류는 늘 먹던 것, 늘 쓰던 것만 고집하는 반면 다른 한 부류는 두 눈을 희번덕거리며 매번 신제품을 찾아 집어 든다. 남편과 난 절대적으로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익숙함에서 느껴지는 편안함보다는 처음 보는 것, 알 수 없는 것, 새로운 것에 대한 동경과 설렘에 더 크게 반응한다. 세계 여행이라는 큰 결심을 하게 된 것도 일상에서는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갈망 때문이었다. 처음엔 모든 것이 새로웠다. 하지만 여행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조금씩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느새 가이드북에만 의존한 채 앞서간 여행자들의 길을 답습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럴수록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열망은 더욱 커져만 갔다.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앞에 선 어린아이의 설렘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었다. 계획에 없던, 아니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던 ‘베나길(benagil)’로 향하게 된 것은 우연히 보게 된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상상 속에서나 있을 법한 반원형의 해식동굴 안에는 금빛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고, 동굴 천장의 한가운데에 동그랗게 나 있는 커다란 구멍 사이로 조각난 하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