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이의 이마에서 땀 한 방울이 천천히 흘러내립니다. 건이는 숨을 멈추고 과녁만 노려보았습니다. 가파르게 휘었던 시위가 ‘슈슝’ 튕기는 소리를 내며 화살을 쏘아 올렸습니다. 그 서슬에 이마를 따라 흐르던 조그만 땀방울이 건이의 손등으로 툭! 떨어집니다. ‘이런! 너무 빨랐어!’ 화살이 떠나는 순간, 건이는 이미 명중하지 못하리란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건이의 눈은 간절함을 담아 화살의 움직임을 좆았습니다. ‘제발, 제발…….’ 꽁지를 불안하게 떨며 날아간 화살이 바람에 한 번 크게 휘청입니다. 과녁 바로 앞에서 땅에 처박힌 화살 주변에선 막 꺼진 불처럼 푸시식 흙먼지가 일어납니다. 심판이 붉은 깃발로 크게 가위표를 그렸습니다. 건이는 고개를 푹 떨구었습니다.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남은 화살 한 대를 명중시킨다 해도 이기기는 틀렸습니다. “쯧쯧… 이제 끝났군.” “국궁 신동이 웬일이지? 뒤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조그맣게 숙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건이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을 텐데 건이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습니다. 흘깃 옆을 보니 부산 아이는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건이가 앞지르고 있었을 때만해도 얼굴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
2007-12-03 09:41내 마음 어딘가에 강아지 한 마리 숨어사나 보다 첫 눈님 오시는 날 이렇게나 마음이 좋다
2007-12-03 09:35슬픔이 두께를 가지고 와 거친 나무 밑둥처럼 묵묵히 내 앞에 앉은 지 오래다 가난한 양은그릇에서 보리쌀이 밤새 불리어질 때 찬물에게만 은밀히 열어 보이는 속살이 있듯 오랜 시간 함께 한 그에게만 보여주는 뒤란 같은 것이 내게 생겼다 밤새 식구들의 양말을 널어 말리던 어머니의 부뚜막처럼 흐린 강을 건너는 뒷모습으로 남아있는 것들이 뒤란 도랑물의 부지런한 허리 위로, 훈장을 지내셨다는 할아버지의 낡은 기왓장 사이사이로 있다 이 곳에서 때론 어미 무릎에 누운 어린 것처럼 조용히 밤나무 둥치에 화첩을 걸고 눈발을 따라 떠난 누이와 야위어가는 어머니 아버지의 초상을 그리기도 하니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넘겨야 할 남은 세월도 뒤란 구석에는 있는 것이다 묵은 장독대 곁으로 슬픔이 쪼그려 앉아 자전거에 실려 오던 마흔 살 아버지의 야윈 도시락과 이별이 길었던 날의 일기를 들여다 본다 문득 그의 등이 밤나무의 북쪽 기둥과 닮아있다 그에게는 오히려 내가 거친 바위의 밑둥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생각하는 저녁 허기진 식구들의 반가운 가마솥 냄새가 둥지를 튼다 나로 인해 힘들었을지 모를 그의 지난 시절들이 홀로 오는 저녁그림자와 함께 뒤란에 내려서고 있다
2007-12-03 09:341 여보게 큰눈이 내려 세상을 지워버린 오후 흩날리는 눈발을 보며 솔안말에 등 기댄 일을 생각하고 있네 서울이라는 깊은 골짜기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파도처럼 뒤척였지만 세상은 칼끝이었어 어디로 가야 할지 스물 젊음이 마주했던 막연함을 아시겠는가. 2 전철을 탔지 차창 밖으로 눈길 풀어두고 생각을 수없이 포개고 있었네 야트마한 산이 비켜나고 있었어 그 아래 번데기에 서 있는 소나무에 쏟아지고 있는 햇살이 가슴을 헤집고 파고드는 거야 그것에 끌려 중동역에 내려 늦은 오후의 햇살을 등에 지고 우체국과 농협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마을에 들어섰을 때 이미 노을이 서쪽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네. 3 비틀비틀한 골목을 따라가다 한 모퉁이에 슬그머니 끼어들었지 사는 일이란 끊어질 듯 이어지는 길 같은 것이란 말에 귀가 열릴 때쯤 변두리에 뜨는 별과 피는 꽃이 눈에 들어오데 그 때서야 내가 이 세상의 얼마나 작은 모퉁이이며 누군가의 변두리인지 세월이 슬몃 일러주더군 그렇게 한숨 죽이고 사는 동안 때로는 풍경보다 아름다운 것이 있다는 것도 알았어. 4 보게 요즘처럼 힘들어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지면 눈이 두껍게 쌓여도 손끝을 세상에 내밀고 있던 솔안말의 솔잎들을 생각하네 그러
2007-12-03 09:33오늘날 재산 상속으로 부모나 형제간에 의리나 우애가 상처받는 경우가 많다. 옛날의 우리나라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상속은 할아버지나 아버지 등 일정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 사이에서 한 쪽이 사망하거나 호주가 호주권을 잃은 때, 다른 쪽이 호주권 또는 재산적 권리·의무의 모두를 대를 이어 물려받는 일로, 역사적 발전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졌다. 오늘날의 상속분은 호적에 함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차이를 두고 있다. 즉, 같은 호적에 없는 여자의 경우(혼인 등의 경우)의 상속분은 남자의 상속분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러나 현재의 상속법이 나오기 이전까지는 큰 아들과 나머지의 형제·자매간에 차이가 있으니, 아마 조선시대에 성리학이 도입되면서 남자 중심의 사고방식에 의하여 나타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조선 이전, 즉 고려시대까지는 재산을 물려주는 데에 있어 아들·딸의 구별이 없이 똑같이 물려주는 것이 일반적인 풍습이었다. ‘고려사(高麗史)’ 손변전을 보면 ‘손변이 남매가 재산 상속에 관해 재판을 했다. 누이가 원님에게 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재산 전부를 나에게 주었으며 아우에게 준 것은 검정 옷 한 벌, 미투리 한 켤레, 종이 한 권뿐입니다”
2007-12-03 09:05얼마 전에 TV에 방영된 필리핀에서의 고려장 이야기는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가 나오면 분명 우리나라에 고려장이 존재했는가를 질문 받게 된다. ‘고려장’은 고려 시대에 늙고 병든 사람을 구덩이 속에 내버려두었다가 죽는 것을 기다려 장사를 지내는 풍습을 가리킨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부여와 고구려에 순장의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순장은 영혼불멸사상에 의하여 임금이나 귀족이 세상을 떠났을 때 각종 보물과 주인을 모시던 노비나 부하들을 함께 묻는 풍속을 말한다. 순장의 풍습을 계승해 고려에서 늙고 병든 사람을 버리는 고려장이 있었던 것처럼 전해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나거나 전염병에 걸린 사람은 외딴 곳에 버리는 일은 있었으나, 노인을 버렸다는 기록은 없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불효죄를 반역죄와 더불어 엄하게 처벌하였으므로 고려장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민간설화로 전하는 ‘기로전설(棄老傳說)’에 의하여 고려장이 사실이었던 것처럼 말하는 경우가 있다. ‘70이 된 할머니를 아들이 풍습대로 지게에 지고 산중에 버리고 돌아오려 했다. 이 때 함께 갔던 할머니의 손자가 그 지게를 다시 가져가려 하자 아버지가 의아
2007-11-26 09:11‘구쁘다’는 형용사는 ‘배 속이 허전하여 자꾸 먹고 싶다’는 뜻이다. 평소에 자주 쓰는 ‘출출하다’와 비슷한 뜻으로 보면 된다. “왜 이렇게 속이 구쁜지 모르겠다.” “점심을 빵으로 때워서 그런지 몹시 구쁘다.” 또한 ‘허발’이란 명사는 ‘몹시 굶주려 있거나 궁하여 체면 없이 함부로 먹거나 덤빔’이라는 뜻이다. “배고픈 김에 허발을 하고 음식을 걷어 먹었다.” ‘허발하다’는 동사 형태로 써도 뜻은 같다. “헐떡이며 뒤늦게 끼어들어, 인절미 열 개를 손바닥에 받으며 허발하고 난 삼득이 말이다(이문구, 장한몽).” “그전 같으면 허발해 먹었을 것인데, 어쩐 일인지 목이 막혀 잘 넘어가지 않는다(이기영, 왜가리).” 그렇다면 ‘볼가심’은 무슨 뜻일까. 볼가심은 볼의 안쪽, 곧 입속을 겨우 가시는 정도라는 뜻으로 ‘아주 적은 양의 음식으로 시장기를 면하는 일’을 일컫는다. “아직도 세계 곳곳에는 볼가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우리 속담에 ‘생쥐 볼가심할 것도 없다’는 말이 있는데 먹을 것조차 없는 가난한 형편을 비유적으로 가리키는 말이다.
2007-11-19 11:00궁녀가 승은을 입고 자녀를 낳으면 종사품 숙원(淑媛)이 된다. 후궁 중 최하위이지만 궁녀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으며, 이들에게는 당호(堂號)가 바쳐졌다. 품계(品階)에 따라 월급이 지급되어 궁녀를 부리면서 독립생계를 영위할 수 있었다. 옛날에는, 특히 조선시대에는 왕뿐만 아니라, 양반들도 많은 부인을 거느릴 수 있는 일부다처(一夫多妻)제 사회이다. 특히 왕은 마음에 드는 궁녀는 언제든지 부인으로 삼을 수 있었다. 궁녀의 입장에서 이것을 ‘승은(承恩)을 입었다’고 한다. 이렇게 궁녀가 승은을 입고 자녀를 낳지 못하면 일정한 일 없이 왕의 곁에 있는 ‘특별 상궁’으로 남지만, 자녀를 낳으면 종사품의 숙원(淑媛)이 된다. 내명부(內命婦)에 속한 왕의 후궁 중 최하위이지만 하는 일은 왕의 부인으로서의 역할뿐이어서, 다른 궁녀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이들에게는 당호(堂號)가 바쳐지고, 그 품계(品階)에 따라 월급이 지급되었다. 따라서 궁녀를 부리면서 독립 생계를 영위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이들에 대한 월급 명세서가 전하니, 아래와 같다. 덕혜옹주는 고종이 회갑 되던 해 얻은 고명딸이라 아주 귀하게 여겼던 까닭에, 그 어머니에 대한 대우가 왕자를 낳은 다른 후궁보다
2007-11-13 09:20한창때가 지나 기세가 꺾인 사람이나 날씨를 가리킬 때 ‘한물가다’란 동사를 많이 쓴다. “요즘은 그 무덥던 더위도 한물갔다.” “그도 한창때 꽤 인기 있던 가수였는데 이제는 한물가서 알아보는 사람도 거의 없다.” 한물가다는 채소, 과일, 어물 등이 한창 나오는 때가 지났을 때도 쓰는데 이럴 때는 한물가다 대신에 ‘한물넘다’는 표현을 써도 좋다. “딸기가 한물넘어서 좋은 물건이 없다.” 한물가다, 한물넘다와 반대로 채소나 과일, 어물이 한창 나오는 때가 됐을 때는 ‘한물지다’란 동사를 쓰면 된다. “요즘은 단감이 한물질 때다.” “오징어가 한물져서 일손이 바쁘다.” 한편 ‘꽃다지’는 오이, 가지, 참외, 호박 따위에서 맨 처음에 열린 열매를 뜻하는 명사다. 꽃다지는 논밭에서 자라며 봄에 노란 꽃이 피는 식물 이름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첫 열매를 폭넓게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어느새 호박 꽃다지가 열렸다.” 또한 ‘꽃맺이’는 꽃이 진 뒤에 바로 맺히는 열매를 말한다. “아름다운 날에 대한 욕심 접는 만큼/꽃맺이 한 치씩 커오른다는 걸/아는 꽃들의 자태는/세월 앞에 오히려 담백하다(도종환, 저무는 꽃잎).”
2007-11-12 13:10‘두남두다’라는 동사는 ‘잘못을 두둔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자식을 무작정 두남두다 보면 버릇이 나빠진다.” “아무리 못나도 자기 남편이라고 두남두는 모양이로구나.” 잘잘못을 떠나 ‘애착을 가지고 돌보다’는 뜻도 있다. “자기편을 두남두다.” “그는 노골적으로 철수를 두남두고 나섰다.” 반대로 ‘두남받다’라는 동사도 있다. ‘두남받다’는 ‘남다른 도움이나 사랑을 받다’는 뜻이다. “그는 독자로 부모님의 애정을 두남받고 자란 아이라 버릇이 없다.” “오냐오냐 두남받기만 한 아이들이라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2007-11-05 1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