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은 종료됐지만, 그 영향은 대학 강의실에 여전히 남아 있다. 오늘의 대학생들은 청소년기의 핵심 사회화 시기를 비대면으로 통과한 이른바 ‘팬데믹 코호트’다. 이들은 디지털 환경에는 익숙하지만, 대면 관계 속에서 갈등을 조정하고 협력하는 경험을 충분히 축적하지 못한 채 성인기로 진입했다. 팬데믹은 한 세대의 사회화 과정에 공백을 남긴 사건이었다. 사회적 경험 부족 드러나 현장에서 만난 학생들의 변화는 분명하다. 발표와 토론을 부담스러워하는 수준을 넘어, 관계 형성 자체를 낯설어하거나 갈등 가능성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연결을 원하면서도 관계의 불확실성은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이중적 모습이다. 이는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축소된 사회적 경험이 누적된 결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교양 수업에서도 이러한 특징은 뚜렷하게 드러났다. 학기 초 학생들은 자신을 ‘고립된 퍼즐 조각’에 비유했다. 서로 맞닿을 수는 있지만 쉽게 흩어지는 불안정한 상태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소그룹 토의와 협력 학습, 성찰 활동을 반복한 이후 인식은 달라졌다. 공동체를 ‘정원’이나 ‘오케스트라’로 표현하며, 서로 다른 존재들이 조화를 이루는 관계를 상상하기 시작한 것이
2026-07-06 09:10
최근 발표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는 우리 교육이 직면한 현실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교육부는 일부 결과가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다고 설명했지만, 오랜 기간 고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해마다 학생들의 학력이 조금씩 낮아지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특히 고3 수학을 가르칠 때 그 변화는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정책과 현실 간 간격 존재 그 원인 가운데 고교학점제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진로와 적성에 맞는 과목을 선택하도록 한 취지는 분명 의미가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배우고 싶은 과목보다 입시에 유리한 과목을 선택하는 데 더 많은 고민과 에너지를 쏟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진로 설계에 집중하는 만큼, 정작 교실에서 기초를 다지고 학습에 몰입하는 시간은 줄어든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평가를 둘러싼 현실도 고민해 볼 지점이다. 교육과정은 활동 중심 수업과 논·서술형 평가를 강조하지만, 학생들이 치러야 하는 대입은 여전히 선다형 중심이다. 그렇다고 현시점에서 대입 평가를 대폭 바꾸기도 쉽지 않다. 학력 격차가 큰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함께 배우는 현실을 고려하면 학교 현장에서 이를 감당하기도 어렵다. 결국 현재의 평가 체제 안에서 학생들의 기
2026-07-06 09:10
학생들의 실질적인 배움과 깊은 성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교사의 치밀한 밑그림, 즉 '수업 설계'가 필수적이다. 질문과 대화의 수업이라고 해서 단순히 '분위기 좋은 대화 시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집을 지을 때 완성된 모습을 먼저 그리는 것처럼, 수업도 다르지 않다. 교사가 가장 먼저 던져야 할 물음은 '오늘 무엇을 가르칠까'가 아니라, '이 수업이 끝났을 때 학생이 어디에 가 닿기를 바라는가'이다. 도착지를 분명히 정한 뒤 그곳에 이르는 길을 거꾸로 짚어 내려올 때, 비로소 질문수업의 안정적인 구조가 완성된다. 질문수업 설계의 첫걸음은 교육과정의 성취기준과 학습 요소를 분석하는 것이다. 방대한 교과서 내용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을 넘어 질문 중심의 단원을 재구성하기 위해 교사는 스스로에게 다음 세 가지를 깊게 질문해야 한다. 첫째, 이 단원에서 내가 진정 바라는 결과는 무엇인가? 둘째, 이 배움을 학생들의 삶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셋째, 무엇을 할 것이며 또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 여기서 가장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것이 바로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다.우리는 종종 진도를 다 나가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하지만 모든
2026-07-03 13:47
우리 사회에는 누군가를 평가할 때 학벌, 경력, 재력, 외모 등 여러 기준이 있다. 그중에서도 학벌은 중요한 평가 기준이다. 취직이나 승진, 결혼, 사적인 인간관계 등에서 광범위하게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처음 만나 어색한 자리에서도 상대와의 공통점을 찾기 위해 고향과 어느 학교를 졸업했는지를 알고 싶어 대화를 이어간다. 그러다가 같은 학교 출신인 경우엔 특별한 친근감을 갖고 금방 마음을 여는 경향이 강하다. 중도 탈락 대학생 계속 증가 이런 학벌주의에는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가 숨겨져 있다. 베블런 효과란 일반적으로 물건값이 비싸면 소비가 주춤하지만, 사회적 지위나 부를 과시하기 위한 허영심에 의해 오히려 소비가 늘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미국의 경제학자이며 사회과학자인 소스타인 베블런이 자신의 저서 ‘유한계급론(1899)’에서 과시적 소비가 인간의 본능이라고 처음 거론했다. 과시욕으로 대학에 진학했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중도 탈락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대학알리미에 공시된 4년제 대학의 중도 탈락 학생 수(기준연도 2020학년도)는 모두 9만3124명으로, 재적학생 대비 비율은 4.6%로 나타났다. 2008년 이후 최근까지 대
2026-06-29 08:51
하원을 한 아이가 엘리베이터에 탄다. 엘리베이터에 붙은 거울이 우리를 반겨준다. 예쁜 방울이 달린 털모자를 쓰고, 아이가 거울 앞으로 달려가 입김을 분다. 하얗게 맺힌 입김 위에 아이가 벙어리장갑 낀 손으로 하트를 그린다. 하나로 뭉쳐진 둥근 손가락이 곱게도 하트를 그린다. 하트가 지워질세라 연신 입김을 불어대며, ‘호호’ 숨결을 불어 넣는다. 숨결이 닿을 때마다 거울이 하트모양 입으로 연신 웃음을 터트린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들 ‘하트’라는 제목으로 글을 지었다. ‘AI 시대, 우리 교육은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나만의 대답이다. AI가 할 수 없는 것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 그 첫 번째는 ‘자율성’이다. 인간은 스스로 욕망을 일으키고, 때론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이, 자기에게 해로운 욕망을 품으며 스스로의 가치와 충돌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른 도덕적 책임을 지며 자율성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 두 번째는 ‘메타인지’다. 인간은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왜 하고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알아차리며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 밖에서 들어오는 외부 정보와 안에서 일어나는 내부 정보를 구분하고, 이 둘을 한꺼번
2026-06-29 08:50
교권보호위원회. 줄여서 ‘교보위’라는 이 한마디는 학교 현장에서 무겁게 들리는 단어입니다. 누군가에게 닥치기 전에는 아주 먼 이야기 같지만, 막상 나에게 닥치면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집니다. 정확한 절차를 잘 몰라서 오는 두려움이 더 큽니다. 알고 가면 한결 덜 두렵습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 미리 알아두는 것이 자기를 지키는 첫걸음입니다. 피해 회복에 집중하기 개정된 교원지위법에 따라 교육지원청 단위의 지역교권보호위원회가 사안을 심의합니다. 학교에서 위원은 교원, 학부모, 변호사, 경찰, 전문가 등으로 구성되며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됩니다. 특히 학생 생활지도 경력이 있는 교사가 반드시 위원에 포함되도록 되어 있어, 그 자리에는 분명 교사의 심정을 헤아려줄 사람이 있습니다. 처리 절차는 크게 다섯 단계로 나뉩니다. 먼저 사안이 발생하면 학교장이 즉시 보호조치를 시행합니다. 이때 가해자와 피해교원의 분리, 특별휴가, 응급조치, 심리상담 안내 등이 이루어집니다. 그다음 학교가 교육지원청에 사안을 신고하고, 교육지원청이 조사와 사안 조사보고서 작성을 진행합니다. 그 뒤 지역교권보호위원회가 소집되어 심의·의결을 거치고, 교육장은 의결 결
2026-06-25 18:59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늘 무언가를 준비하고, 가르치고, 책임지며 살아간다. 교사라는 직업 또한 마찬가지다. 학생들의 성장과 배움을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을 돌볼 시간은 부족할 때가 많다. 그런 나에게 한국교총에서 마련한 설악산 신흥사 템플스테이는 잠시 멈추어 자신을 돌아보는 소중한 선물이 되었다. 평소 여행을 다니며 지역의 유명한 사찰이나 성당, 교회를 방문하는 것을 좋아한다. 특정 종교를 깊이 믿고 있지는 않지만, 종교 시설이 주는 고요함과 평온함 속에서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곤 했다. 이번 템플스테이에 참여하게 된 이유도 그러한 마음과 맞닿아 있었다. 무엇보다도 곧 태어날 우리 아이에게 특별한 의미를 담은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다. 아내와 함께 태교의 일환으로 자연과 평화가 공존하는 공간에서 소중한 추억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신흥사에 도착하자마자 설악산의 아름다운 풍경과 사찰의 차분한 분위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도시의 소음과 분주함에서 벗어나 자연의 소리와 바람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특히 차담회 시간에 스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은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삶의 방향과 행복
2026-06-25 15:18
2026년은 아직 얼마 되지 않은 교직 인생에 가장 다사다난한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뉴스 기사로만 접하던 일들이 너무나도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이로 인해 점점 시들어가는 교사가 됐다. 그 와중에 13~14일 한국교총이 주관한 ‘교원 힐링 템플스테이’(경기 대광사)에 참여했다. 지친 일상에서 만난템플스테이 첫날 오후 2시 대광사에 입소한 후 문화해설사님의 안내에 따라 사찰을 둘러보며 타종을 하고 소원을 발원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광사 대웅전에는 동양 최대의 미륵부처님이 자리하고 계신다. 대웅전 바깥은 3층 규모의 건물로 보이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3층 높이의 층고를 가진 단층 구조다. 일정에 대해 간단히 안내받은 후 스님과 차담 시간을 가졌다. 각자의 고민과 생각을 털어놓으며 지혜를 구하는 시간이었다. 스님은 인류의 4대 스승에 대해 이야기하며 현재 많은 선생님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참스승은 시간이 지난 뒤 사람들의 마음속에 큰 가르침으로 남을 것이라고 하셨다. 이후 108배를 하기 위해 대웅전으로 이동했다. 108배는 참회와 감사, 발원과 다짐의 참회문을 들으며 이뤄졌다. 바르게 절하는 방법에 대해 배우고 108배가 시작됐지만 모든 순
2026-06-22 09:10
생성형 인공지능(AI)에게 물으면 0.3초 만에 매끄러운 답이 나온다. 학생은 과제를 끝냈고, 설명도 읽었으며, 이해했다고 느낀다. 그러나 그 ‘이해’는 AI의 이해일 뿐, 학습자 자신의 것이 아니다. 필자는 이 상태를 ‘가짜 학습(Fake Learning)’이라 부른다. 과제 성과는 완성됐으나 학습은 내면화되지 않았고, 더 심각한 것은 학습자 스스로 그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한다는 점이다. AI 쓰는 순서가 결과 바꿔 이것은 우려가 아니라 입증된 사실이다. 튀르키예 고교생 약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범용 AI를 자유롭게 쓴 집단은 연습 중 성적이 38% 올랐지만, AI를 못 쓰게 한 시험에서는 오히려 17% 낮았다. AI가 사고를 대신하는 ‘목발’이 되는 순간, 사고의 근육은 자라지 못한다. 이것이 ‘목발 효과(Crutch Effect)’다. MIT의 뇌과학 연구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ChatGPT로 글을 쓴 집단은 방금 쓴 자기 글의 88%를 기억하지 못했고, 고차 사고를 담당하는 뇌 영역은 활성화되지 않았다. AI가 사고하는 동안, 사고를 담당하는 뇌는 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AI를 교실에서 금지시켜야 하는가? 결코 아니다. 같
2026-06-22 09:10
“친구 요청을 했는데 거절 당했어요, 학교에서 그 애하고 말도 안할 거에요.” 최근 교실에서 심심치 않게 들리는 학생들의 하소연이다. 요즘 아이들은 등교 전 친구의 SNS 스토리부터 확인하고, 하교 후 단체 채팅방에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수업 중 인상 깊은 발표 자료가 있으면 찍어서 공유하고 댓글로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이처럼 SNS는 학생들에게 단순한 여가 공간을 넘어 학습과 관계 형성의 거대한 플랫폼이자, ‘두 번째 교실’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편리함의 이면에는 소외감, 과잉 노출, 사생활 침해, 과장된 비교 문화라는 짙은 그림자가 숨어 있다. 학생마다 SNS를 대하는 태도와 목적도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요약된 학습 정보를 찾는 도구로 유용하게 쓰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친구들의 눈치를 보며 피로감을 호소한다. 이처럼 SNS는 학습의 매개체인 동시에 심리적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 이중적 공간이다. 이제 교육 현장은 SNS를 무조건 금지하거나 방치하는 이분법적 접근을 넘어, 학생들이 건강하게 교육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이끌어줄 실천적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자존감·소통·비판적 사고 키우기 가장 먼저 실천할 수 있는 것은 교실 속 ‘디지털 자존감 프
2026-06-18 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