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한 번쯤은, 끝에 다다르고 싶었다. 목표는 유라시아 대륙의 끝이었지만, 끝을 향하는 길목마다 더 큰 낭만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 낭만의 이름은 리스본, 그리고 신트라였다. 이베리아반도(스페인·포르투갈)를 여행하게 된다면 포르투갈의 수도이자 대표 도시인 리스본(Lisbon)은 반드시 고려하는 여행 목적지 중 하나일 것이다. 리스본 여행은 대개 구시가지에서 시작하게 되는데, 출발했던 유라시아의 동쪽과는 다른 경관에 취해 반쯤 넋을 잃고 걷다 보면 ‘여기까지 오기 힘들었지만 정말 오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리스본 외곽에 위치한 신트라(Sintra)는 리스본에 가려진 고요한 낭만이다. 유라시아 끝자락에서 마주한 낭만, 리스본과 신트라에 취해보자. 테주강을 따라 걷는 리스본의 시작 1월 중순, 리스본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예상보다 따뜻한 공기였다. 책에서만 배웠던 지중해성 기후가 이런 느낌이란 것을 몸소 느끼며, 리스본에서 여정은 산뜻하게 시작되었다. 리스본을 여행한다면 바이샤(Baixa) 지구는 여행의 출발지로 손색이 없다. 이곳은 리스본의 중심부이면서 최대 번화가이다. 1755년 대지진 이후 체계적으로 재건된 이 지역은 다른 오…
2025-07-07 10:00
싱가포르 정부는 2002년에 싱가포르를 아시아 교육의 허브로 만들기 위하여 ‘Global Schoolhouse’ 정책을 추진한 바 있다. 그 이후 세계 유수 대학을 유치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으며, 외국인 유학생 수가 증가하는 등 외형적으로는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교육의 질적인 성장을 들여다보면 분명한 한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싱가포르는 사실상 1당 체제 국가로 1965년 건국 이후 현재까지 집권당이 의회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국가이다. 그러다 보니 표현의 자유와 더불어 학문의 자유 또한 매우 제한적이다. 실제로 싱가포르 Yale-NUS College에서 Liberal Arts 교육을 통해 비판적 사고를 장려했으나, 2021년 정부의 결정으로 폐지된 것이 한 사례이다. 이 글의 의도는 싱가포르 정부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교육 허브 국가가 되기를 바라는 나라에서 비판적 사고의 부재는 교육의 핵심 가치를 외면하고 있음을 말하기 위함이다. 비판적 사고가 결여된 나라는 어느 정도 성장할 수는 있으나, 선도할 수는 없다. 그러면 왜, 비판적 사고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는가? 미국의 교육학자 존 듀이(John Dewey)도…
2025-07-07 10:00
‘글 요청하는 인간’으로의 변화 강연을 마치자 연로한 여교수께서, “이미 말만 하면 내가 원하는 자수를 놓아주는 기계가 나왔는데, 그걸 모른 채 돋보기를 쓰고 한땀 한땀 수를 놓고 있었네요”라고 소감을 밝히셨다. ‘글 쓰는 인간’에서 ‘글 요청하는 인간’으로 변한 시대 앞에서 혼란을 겪는 교사가 많다. 생성 AI를 사용할 때면, 계속 사용할 경우 내 사고력과 글쓰기 역량을 비롯한 업무처리역량이 점차 퇴화하지는 않을까 하는 일말의 불안감이 생긴다. 그러면서도 사용의 편리함에 빠져든다. 이산 몰릭(Ethan Mollick)의 듀얼 브레인(신동숙 역, 2025)은 이러한 불안감을 줄이고, AI를 보다 의미 있게 사용하는 데 도움이 될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몰릭은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스쿨(Wharton School) 경영학과 교수로, 혁신·기업가정신·인공지능(AI)이 업무와 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며 가르치고 있는 학자이다. 그가 제시한 것은 인간의 고유한 지능과 AI의 기계적 지능을 결합하는 협력지능(Co-Intelligence) 전략이다. 1956년 ‘인공지능(AI)’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할 때 함께 제안된 개념의 하나가 ‘지능 증폭
2025-07-07 10:00
아동학대범죄 신고의무의 탄생 배경 아동학대에 대하여 가장 기본이 되는 법은 「아동복지법」이다. 「아동복지법」은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이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이나 가혹행위를 하는 것과 아동의 보호자가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것을 아동학대라고 정의한다(「아동복지법」 제3조 제7호). 또한 아동에 대한 성적 학대행위, 신체적 학대행위, 정서적 학대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처벌하는 규정 역시 두고 있다(「아동복지법」 제17조 및 제71조). 2013년 흔히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사망사건’이 있었다. 8세였던 의붓딸을 장기간 학대하여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다. 비슷한 시기 ‘울산 계모 살인사건’도 있었다. 소풍을 보내달라는 아이를 폭행해 사망하게 한 사건으로, 이 역시 장기간의 학대가 있었다고 한다. 이 사건들에 대하여 국민적 관심과 공분이 쏟아졌고, 결국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아동학대처벌법’이라고 한다)이 2014년 제정되었다. 「아동복지법」이 존재함에도 별도로 「아동학대처벌법」을 제정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아동학대 범죄에 대한 처벌을 상향하는 것, 그리고…
2025-07-07 10:00
들어가는 말 최근 많은 학교장을 만나보면, 다수의 학교장이 학교 경영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현재와 같이 구성원 간의 각기 다른 요구와 욕망이 충돌하는 패러독스 상황에서는, 조금은 떨어져 긴 호흡으로 멀리 보는 것이 필요하다. 성공하는 학교장에게 필요한 역량은 현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보이지 않는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이다. 이를 위해 학교장은 구성원들과 비전을 공유하고, 비전 실현을 위한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끌어내어야 한다. 또한 그들이 함께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우리 학교교육’이 크게 변화했음을 체감하게 해야만 한다. ‘한 사람의 꿈은 꿈으로 남지만, 만인의 꿈은 현실이 된다’라는 어느 유목민의 속담이 있다. 같은 꿈을 꾸고 있는 군대의 병사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돌격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은 꿈을 향해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나아가는 조직’을 가로막을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학교장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구성원 모두가 같은 꿈을 공유하고, 그 꿈을 향해 힘과 지혜를 모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비전의 의의와 우수 비전의 조건 ● 비전의 의의 1) 협의의 비전 비전(vision)은 외래어로서 우…
2025-07-07 10:00
이번 호에서는 집단토의 유형 중 특히 까다롭고 실제 시험에서 자주 출제되는 역지사지형 집단토의를 중심으로 그 특징과 대응 방안을 소개하고자 한다. 역지사지형 공존형 집단토의 안내 역지사지형 공존형 집단토의는 ‘다름’을 이해하고, ‘공존’을 지향하며, ‘합의’를 추구하는 시민성 기반 토의모형이다. 서울시교육청 숙의형 토론수업 모델을 발전시킨 형태로, 참가자가 찬·반 입장을 교대하며 상대 논리를 내면화함으로써 갈등을 해소하고 공감역량을 기르는 데 목적이 있다. 핵심 철학은 다음과 같다. ● 사회적 맥락 기반 실제성 교과서 밖 현실 문제를 다루어 복잡한 이해관계를 직면하도록 한다. ● 시민성·반성적 평형 찬·반 어느 한쪽에 머무르지 않고 상대 논거를 받아들여 편향을 낮춘다. 이를 위해 1차 토론 직후 ‘입장 교대’를 실시한다. ● 안전한 토론 공간 ‘혐오·차별 발언 금지’와 ‘합의 실패 존중’을 사전 규약으로 확정해 누구나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게 한다. 모형은 모둠형, 코너 학습형, 순차적 자료 분석형으로 구분된다. 공통 순서는 ① 주제 파악 → ② 1차 토론(무작위 입장) → ③ 2차 토론(입장 교대) → ④ 합의안 작성이다. 합의 실패 자체는 감점 대상이
2025-07-07 10:00
AI가 ‘이적 스타일’로 만든 노래가 이적의 노래보다 낫다고들 평한다면…. 그럼 인간은 더 이상 뭘 할 수 있을까? 최근 싱어송라이터 이적이 소개한 유발 하라리의 신간 넥서스에 담긴 이야기는 단순한 공포 마케팅이 아니었다. 하라리는 AI를 ‘도구(tool)’가 아니라 ‘행위자(agent)’로 정의하며, AI가 인간의 공감능력을 이용해 거짓말을 하고, 우리의 판단과 삶을 설계하는 주체로 움직이기 시작한 시대를 경고한다. 인간의 노동·창작·의사결정, 그리고 심지어 존재의 정체성까지 AI가 대체할 수 있다는 감각은 이제 추상적 담론이 아니다. AI는 시를 쓰고 음악을 만들며, 판례를 요약하고, 시장을 예측하고, 인간을 속이는 능력까지 갖췄다. 디지털 격차는 단순한 기술의 문제를 넘어 ‘존재의 위계’를 나누는 질문이 되었다. 디지털 격차는 단지 기술 접근성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대학생이 유튜브·틱톡·인스타그램을 통해 세계를 읽고, 자신의 진로를 상상하고, 역량을 쌓는다. 하지만 알고리즘 기반 콘텐츠 추천은 더 이상 사용자 중심적이라기보다는 사용자를 하나의 방향으로 몰아넣는 ‘설계된 중독’의 형식을 띠고 있다. 학생들은 자신이 선택한다고 믿지만, 사실상 AI가 설…
2025-07-07 10:00
교육문제, 결코 쉽지않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존재 자체로 존귀하다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구별하고 선별해서 우열을 가리려 하니 어려운 것이다. 학교는 충분히 ‘사랑’과 ‘희망’의 공간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도 대부분의 선생님이 현장에서 이를 몸소 실천하고 계신다. 나는 1970년대 중반, 중학교 3학년 때 교육정책담당자가 되리라 결심했었다. 장래희망을 고민하던 사춘기 시절, 선생님이 되는 것을 생각했었는데 신문을 읽고 뉴스를 들으니, 교육에 문제가 많다고 한다. 당시 문교부장관 이름도 기억한다. “아, 그래. 그럼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자”고 결심했다. 감사하게도 그 길이 열렸고, 1986년부터 교육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의 길을 걷게 되었다. 6월 4일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나는 공무원이나 교원 대상 강연이 있을 때면 이런 말씀을 드리곤 했다. “여러분! 대통령이나 장관·교육감보다 잔여임기가 짧게 남으신 분, 손을 들어봐 주세요.” 아무도 들지 않는다. 이렇게 덧붙인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대통령·장관·교육감에게 큰 책임이 있지만, 우리 책임도 그에 못지않다는 것 아닐까요.” 사무실에서 “우리 교육…
2025-07-07 10:00
수업의 출발 “선생님, 우리가 왜 환경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어야 하나요?” 한 학생의 질문이 생태 미디어 교육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정보는 넘치지만, 공감은 줄어든 시대. 디지털 정보 과잉 속에서 학생들은 어떻게 세상을 이해하고 있을까요? 국어교사로서 저는 ‘읽기’와 ‘표현’을 통해 학생들과 함께 한 명의 시민으로서 세상을 읽는 힘과 의미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생태 감수성’과 ‘미디어 리터러시’를 기르는 수업을, 기술과 사람 사이에서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평범한 일반 중학교에서 함께 도전하는 수업혁신 ● 동료교사들과 함께 실천한 ‘지구 공동체 프로젝트-나비효과’ 이 수업은 국어과 동료교사 세 명, 중학교 2학년 320여 명이 함께 마음을 맞추어 진행한 프로젝트 수업입니다. 여러 다양한 수업 경험 중 어느 수업 이야기를 쓸지 고민했습니다. 세상에는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수업사례들이 많지만, 대규모 과밀 중학교에서 세 명의 국어교사가 함께 수업을 운영하며 어려움을 극복한 과정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일은 많은 교사의 수업 상처를 감싸안는 반창고 밴드 같은 역할을 해주리라 생각하며 이 글을 씁니다. ‘지구 공동체 프로젝트-나비효
2025-07-07 10:00
김지연은 2018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젊은 소설가다. 등단 8년 차지만 문인들이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의 단편 마음에 없는 소리는 2022년 교보문고가 주관한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 2위에 올랐다. 사석에서 ‘김지연 팬’이라고 고백하는 소설가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을 세 번 받았고 2024년 현대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요즘 젊은 작가의 소설에 관심을 갖는 독자라면 그의 이름이 어느 정도 익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음에 없는 소리는 그의 첫 소설집 표제작이다. 작가 고향인 거제로 보이는 해안가 소도시를 배경으로, 할머니가 휴업한 작은 식당을 이어받아 소고기뭇국과 ‘멸추김밥’을 메뉴로 개업하는 35세 여성 이야기다. 고향 또래들은 어느덧 번듯하고 안정적인 삶을 찾아가는데 주인공은 ‘아무것도 안 하지는 않았는데 딱히 무얼 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처지에 있다. 시에서 지원해 주는 청년 사업의 커트라인에 딱 걸리는 나이 만 35세지만 생일이 보름 정도 지나 지원금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일단 식당을 개업한다. 고향 좁은 동네엔 서로 십 대에서 이십 대 때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친구들이 많았다. 이 친…
2025-07-07 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