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은 소년에게 자동차로 집까지 바래다주려고 하니, 그 소년은 대뜸 이렇게 말했다. "먼저 학교까지 데려다 주세요. 그래야만 집으로 가는 길을 알 수 있어요." 중간에서 허둥댈 일이 아니다. 시작을 알아야 끝이 보인다는 말이다. 오늘날 환경 문제가 바로 이 에피소드와 같은 지경이다. 근본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근본을 모른다면 최소한 그것을 흐리는 일은 삼가야 한다. 하얀 눈밭일수록 토끼의 발자국이 선명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발자국이 선명한들 눈이 녹아 버리면 토끼의 행방은 찾을 길이 없다. 근본 못지 않게 시기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문제 의식이 명확해도 시기를 놓치면 해결의 방도를 찾기 어렵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눈이 녹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눈이 녹고 나서 어떻게 토끼의 행방을 찾을 것인가? 눈이 녹기 전에 서둘러 길을 찾을 방도를 강구해야 한다. 과연 그 길은 어디에 있을까? 영화 '부시맨'은 이 물음들에 대한 잠정적인 해답을 보여준다. '부시맨'은 아프리카 토착 부족의 삶을 배경으로 그린 영화이다. 그들에겐 자동차, 냉장고, 텔레비전 따위는 아예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불편 없이 살아간다. 불편은커녕 오히려 자연 속에서 엄청나게 태
2002-07-18 15:25햇병아리 총각 교사였던 1985년, 첩첩 산골에 위치한 전남 구례산동중에서 근무했을 때의 일이다. 우리 학교는 전교 12학급 정도의 아담한 규모였다. 난 초임 발령을 받은 총각 과학 선생님과 함께 근처의 하숙집에 방을 얻어 생활했다. 교장 선생님은 젊고 패기 넘치는 젊은 교사들이 왔다고 하시며 학생 생활지도를 책임지라는 임무를 맡기셨다. 총각이고 학교 근처에 살았기에 아침 일찍 출근해 교문 등교 지도와 복도 순회 지도 등을 열심히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복도에서 크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 떠든 학생들을 불러 이유를 알아본 후 야단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 한 학생의 머리가 무척 길고 복장도 불량해 보였다. 난 학생에게 "너 당장 머리 짧게 깎고 와서 검사 맡아!"라고 소리쳤다. 그런데 머리가 길어 야단을 맞던 그 학생은 갑자기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흘렸고, 주위 학생들의 분위기가 갑자기 숙연해지면서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화가 나 있던 나는 "빨리 안 가?"하며 다시 한 번 소리를 질러 울고 있는 학생을 기어이 밖으로 내보냈다. 학생이 울면서 나간 다음, 벌을 받던 한 학생이 용기를 내 내게 말했다. "선생님, 걔는요, 태어날 때부터 한쪽 귀가 없
2002-07-18 15:24남에게 칭찬을 가장 많이 해 주는 사람은 초등학교 교사라고 흔히들 말한다. 학교에서의 칭찬은 곧바로 상으로 이어진다. 칭찬과 격려 속에 자라난 아이는 자신감과 꿈을 키워 가며 자란다. 상은 축하하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 넘쳤을 때 주고 싶다. 상을 받는 쪽은 인정받는 기쁨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래서 상을 주고받을 땐 양쪽 모두가 즐겁고 행복하다. 상은 형태가 없는 마음으로 전달되는 것과 종이 위에 공적을 써내려 간 직인 찍힌 것 등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는 것은 어찌 보면 교사들의 가장 큰 업무일 게다. 엄마 품을 갓 벗어난 저학년 학급에선 포도알로 상징되는 담임상을 매일 같이 받는다. 어쩌다 하나라도 잃어버리게 되면 아무리 쓰다듬고 귀여워해도 포도알이 되돌아오기 전엔 울상을 풀지 못한다. 선생님의 따뜻한 시선과 칭찬 속에 포도알이 포동포동 영글어간다. 변성기에 접어든 고학년 교실에서도 상은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남긴다. 자기 의사를 분명히 밝힐 줄 알고 참을성이 없다는 신세대들의 특징은 賞을 어떻게 보느냐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연간계획에 의해 달마다 주마다 실시하는 행사에 앞서 아이들은 먼저 확인부터 한다. "선생님…
2002-07-18 15:23
사범대학에 다니던 이십여 년 전, 라이머(E. Reimer)가 저술한 '학교는 죽었다'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은 금서목록에 포함된 운동권의 필독서였는데, 제목이 주는 강렬한 인상에 끌리기도 했고 사대생으로 꼭 읽어야 할 것 같은 어떤 의무감 비슷한 생각에서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학교 교육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매우 급진적인 내용이었는데 부분적으로 공감이 가기도 했으나 세상에 어디 완전무결하고 지고지순한 것이 있겠는가 하는 회의가 들었다. 당시에 거부감을 주었던 그 책 얘기를 다시 끄집어내는 까닭은 요즘 '학교붕괴'니 '교실붕괴'니 하는 용어가 일상화될 정도로 공교육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학교무용론'이 나올 판이다. 더 큰 문제는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은 다 함께 공감하고 있으나 해결 방안은 찾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또, 적절한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책임 소재를 먼저 밝혀야 하는데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어느 누구도 이 책임 문제에서 홀가분하게 비켜갈 수 없기에 그렇다. 우리가 안고 있는 교육 문제는 어느 한쪽에게 일방적
2002-07-11 16:28"선생님, 기쁜 소식이 있어요." 지금의 학교로 부임한 첫해 가르쳤던 그 아이의 목소리다. "저 드디어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켰어요. 반에서 1등을 했거든요. 선생님, 다음 약속은 전체 1등이죠?" '정말 이 아이가 해냈구나.' 사실 난 그 아이의 초등 5학년 때 실력으로 볼 때, 그 정도까지 해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더욱 놀란 것은 1등을 했다는 사실보다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그 마음이다. 현재 중학교 3학년인 그 아이는 가끔씩 나를 놀라게 하는 전화를 하거나 편지를 보내던가 아니면 학교로 찾아오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난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가벼운 격려를 보낼 뿐인데도 아이는 그때마다 스스로 나와의 약속을 해놓고 그 결과를 알리는 것이었다. 5학년 때, 기초학력진단 결과 수학점수가 너무 낮은 8명의 아이들 속에 그 아이도 있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5학년 과정은 무리라 쉬는 시간, 점심시간, 방과후 시간을 쪼개 아래 학년의 내용부터 반복해 지도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아이는 집에서 다시 풀어본 것이라며 내게 공책을 내밀었는데 그것은 바로 전날 내가 풀어 준 문제 그대로였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계속 지도해 줄 수 있느냐고 묻더니 좀체
2002-07-11 16:271997년부터 설립 논의가 제기됐던 경기도 지역의 교육대학 신설 문제가 지방 선거를 전후해 다시 교육계 안팎에서 재론되고 있다. 그것은 현 정부 들어서 경기도가 안양시 지역에 경기교대 부지를 제공하겠다고 나섬으로써 구체화된 것이다. 더욱이 교육인적자원부는 최근 "경인교대 설립에 대한 구체 방안을 곧 밝힐 것"이라고 발표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른바 '경인교대 안양캠퍼스 설립' 논의는 근본적으로 몇 가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교육대학 설립은 초등교사 수급 문제에 대한 장기적인 연구와 검토 작업 이후에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정부는 교원 양성과 수급에 관한 장기적인 연구와 검토 없이 임기응변으로 대처해 왔다. 초등교 기간제 교사로 모집한 중등교사 자격증 소지자들에게 초등교사 자격증을 부여하고 중등교사 자격증 소지자들에게 2년 과정의 보수교육을 시켜 초등교사 자격증을 부여하는 조치들이 그 사례다. 이 때문에 결국 전국 교대생들이 수업을 거부하고 학사 일정의 마비를 초래했다. 작년에 일시적으로 초등교사가 부족했던 것은 아무런 준비 없이 학급당 학생수를 35명으로 맞추는 행정조치 때문에 생긴 일시적 현상이지, 적어도 20
2002-07-11 16:251년여를 끌어오던 교총과 교육부간 2001년도 하반기 교섭이 9일 타결됐다. 늦은 감은 있으나 환영할만한 일이다. 한 때 교섭결렬 사태를 맞기도 했지만 이번 교섭이 결국 합의까지 이른 것은 양측 교섭위원들이 산적해 있는 교원들의 여망을 외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쌍방간의 교섭을 좀 더 발전시켜야 한다는 합리적이고 성숙한 자세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번 합의내용에는 담임 및 보직교사수당 인상, 교원자녀 대학 학비보조수당 지급, 수학여행 등 야외 학습활동 지도교사 여비 지급, 교원 자율연수파견제 도입, 유치원 교육환경 개선, 사이버 폭력으로부터 교원 보호 등 교원의 처우개선과 전문성 신장은 물론 교권보호를 위한 핵심 내용이 포함돼 있다. 교섭 합의가 어렵게 이루어진 만큼 교총과 교육부 모두 합의사항이 제대로 이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특히 교육부가 책임감을 갖고 합의사항이 이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동안 교총과 교육부는 양측의 노력에 의해 합의는 했으나 예산이 부족하고, 정부 관련부처의 반대가 강하다는 이유로 많은 사항이 이행되지 못했다. 물론 합의사항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교육부의 주장처럼 정부 관련부처의 이해와 협조가 중
2002-07-11 1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