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면 4월을 맞이하는 봄날인데 아침에 눈발이 날렸다. 평소 같으면 운동장에서 한눈에 바라보이던 양성산(대청댐이 바라보이고 역사가 깊어 청주 인근의 사람들이 즐겨찾는 산)의 팔각정자도 눈발에 사라졌다. 하지만 산중턱부터 만들어놓은 설경이 감탄사가 나올 만큼 아름다움을 연출했다. 설경을 카메라에 담다 보니 찬바람 때문인지 운동장에 아이들이 없다. 추위에 움츠리는 것보다는 설경도 구경하면서 운동장에서 실컷 뛰어 놀도록 했다. 그런데 잠시 후 여자 아이들 몇 명이 급하게 골마루를 뛰어간다. "야! 골마루에 새가 날아다니네." "어떻게 들어왔지?" "무척 예쁘다." 아이들의 이야기가 들려와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급한 공문이 있어 열심히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데 우리 반 아이들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빨리 나와 보라고 보챈다. "선생님, 빨리 나와 봐요." "죽으면 어떻게 해요." 하늘을 훨훨 날아다녀야 할 새가 골마루로 날아들었으니 아이들에게는 큰 사건이었다. 그러니 새가 있는 곳으로 우르르 몰려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이들에 둘러싸여 넋이 나갔는지 새는 날지도 않은 채 눈망울만 굴리고 있다. 마침 설경을 촬영하던 카메
2006-03-30 11:55피그말리온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조각가다. 피그말리온은 생김새가 볼품없어서 일찌감치 결혼과 사랑을 포기하고 조각에만 정열 바쳤다고 한다. 그러나 언젠가는 아름다운 여인의 사랑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여인상을 조각했다. 그리고 여인상을 조각하면서 그 여인상과 같이 아름다운 아내를 맞이하게 해 달라고 간절한 기도를 했다. 기도가 통했는지 조각상이 사람의 여인으로 살아나 그의 아내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기대가 갖는 큰 힘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이 신화 속 피그말리온을 자주 들먹인다. 교육학과 심리학에서 말하는 '피그말리온 효과'도 바로 그런 뜻이다. 교사가 좋은 기대를 가지고 학생을 가르치면 그 학생은 그런 기대감을 받지 않은 학생보다 우수하게 성장할 확률이 크다는 이론이다. 이와는 반대로 스티그마 효과가 있는데, 비행학생이 자기 자신을 비행자로 인식하는 데에는 남들이 그 사람을 비행자로 낙인찍은 데서 크게 영향을 받아 비행을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다. 즉 낙인과정에 의하여 비행이 낙인되면 다음부터는 의식적으로 비행을 저지른다고 한다. 범죄행위는 행위의 내재적 속성에 기인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범죄자라고 낙인을 찍는 행위에서부터 범죄가 형
2006-03-30 09:19오늘 나는 슬픈 마음을 안고 이 기사를 씁니다. 3월 28일은 생일을 맞는 날이었지만 가장 힘들었던 생일을 보낸 날이기도 했습니다. 교실 유리창이 맑지 못해서 늘 마음에 걸렸던 터라, 이제 겨우 자리를 잡아가는 우리 반 19명을 독서를 시키며 청소를 시작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사제동행 아침독서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결과는 금방 현실로 드러났습니다. 때마침 눈발이 날려서 마량 앞바다를 가로지르며 날아오는 꽃샘바람에도 몸에 땀이 날 정도로 유리창의 절반을 닦았습니다. 몇 몇 아이들은 나를 향해, "선생님, 조심하세요. 떨어지면 죽는데..." "선생님이 이상하다? " 하며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피곤한 오후가 되면 일손이 안 가서 아침에 끝낼 요량으로 거의 작업복 차림으로 출근을 했던 터였습니다. 말갛게 닦이는 유리창을 향해 보이는 바다 풍경이 시원해서 기분이 좋아지던 것도 잠시, 나는 갑작스런 위경련을 참으며 작업을 진행하다 통증을 참지 못해 가족을 불렀고 그 사이에 교장 선생님의 신속한 판단으로 우리 학교 장주사님의 차를 타고 보건 지소에서 응급 치료를 받으며 2시간 가까이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남편보다 먼저 달려온 존경하는 오난옥 팀장님의 위로와 맛사지를 받
2006-03-29 08:46새로운 아이들을 만난다는 것은 늘 마음 깊은 곳에 감춰뒀던 뜨거운 열정을 꺼내드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도 낯선 환경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차 있을 새내기들이라면. 수업도 들어가기 전에 ‘녀석들은 어떤 모습일까’ ‘행여나 말썽꾸러기들은 아닐까’ ‘공부에 대한 관심은 있는지’ 등 온갖 생각이 꼬리를 문다. 드디어 첫 수업이 다가왔다. 기대를 한껏 품고 교실에 들어서자 깨끗한 차림으로 반기는 서른다섯쌍의 보석 같은 눈동자들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단정한 옷차림, 짧게 깎은 머리, 굳게 다문 입술…. 첫 대면의 느낌은 무난했으나 이제부터 저들끼리 펼칠 치열한 경쟁을 생각하니 안쓰럽기도 했다. 특히 내신성적이 상대평가로 바뀌고부터는 아이들의 관심은 온통 성적에 있었다. 그래서 첫 시간부터 평가기준과 원칙만은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었다. 다음날, 같은 반 수업이 돌아왔다. 수업에 앞서 어제 내준 과제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지목하는 순서대로 준비한 내용을 발표하다 한 아이가 주제에서 벗어난 답변을 했다. 이미 첫 시간에 평가 기준을 명확히 한 만큼 감점 항목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알리고 수첩에 체크했다. 아이도 짐짓 놀라는 눈치였다.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왔다.…
2006-03-29 08:46벌써 퇴근 시간이 지났습니다. 교감은 교실을 한 바퀴 둘러보고 퇴근하려 합니다. 아니, 그런데 교실 곳곳에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리는군요. '아하! 환경심사를 앞두고 막바지 정리에 바쁘구나!' 1학년 9반 교실에 들어가니 올해 신규로 발령을 받은 김 선생님(44)이 학생 두 명과 함께 교실 뒤에 붙을 판넬 구성을 하고 있네요. 선생님은 자료를 칼로 자르면서 다듬고 학생들은 풀칠을 하고···. 판넬 제목을 보니 '생각의 샘'이군요. 김 선생님을 보니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합니다. 얼마 전 장인상을 당했는데도 출근하였길래 그 이유를 물으니 "새로 전입해 온 학생을 소개해 주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주어진 특별휴가도 다 쓰지 않고 오늘 출근했네요. '학급 환경 구성' 때문이랍니다. 교감으로서 너무나 안스럽고 교사로서의 '그 사명감'에 할 말을 잊었습니다. 환경 구성을 하는 것을 보니 학생과 힘을 합쳐서 하는데 여유가 보입니다. 그 반 학생이 교감에게 묻습니다. "아저씨, 누구세요?" "지난번 조회 때 교감선생님께서 대표로 인사 말씀하셨잖아? 교감 선생님이셔. 인사드려야지?" 대답까지 대신 해 줍니다. 김 선생님 같은 분이 계시기에 우리의 교육, 희망이 보입니
2006-03-28 22:44고등학교 학창시절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면 아마도 그건 수학여행일 것이다. 각 학교마다 조금씩 차이는 나겠지만 예전과 달리 수학여행 코스를 제주도나 해외로 정하는 학교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를 고려해 보건대 그 만큼 우리의 생활이 윤택해 졌다는 단면을 엿볼 수가 있다. 학교 일정에 의해 4월에 계획된 2학년 제주도 수학여행에 따른 희망조사를 실시한 결과 예년에 비해 많은 학생들이 수학여행에 불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불참 사유로 여러 가지의 것들이 있었으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 이유로 어려운 가정형편을 들었다. 우리 학급의 경우, 1명의 학생이 불참 의사를 밝혔다. 다음 날 저녁 시간을 할애하여 그 아이와 상담을 해보았다. 그 아이는 수학여행에 참가하지 못한 것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그 아이는 애써 눈물을 참으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그 모습이 왠지 측은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아이는 자신의 현재 사정을 조심스럽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비록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 하였지만 그 아이의 눈빛만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가 있었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실직으로 인해 가계가 어려워져 수업료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는 그 아이에게 있어 수
2006-03-28 22:44‘학부모에 돈 받은 초등교사 첫 실형’이라는 뉴스를 접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로서 울분이 터진다. 내용인즉 학부모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기소된 부산 사하구 모 초등학교 교사 A(46.여)씨에 대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159만2천원을 추징했다는 것이다. 매스컴에 보도된 대로라면 A씨가 했다는 행동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정상적인 상태라면 그렇게 유치한 행동을 할 수 있을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잘못이라도 저지른 양 고개가 숙여진다. A씨는 학부모에게 ‘저랑 할 말 있지요’, ‘입학만 시켜놓고 지은 죄가 없느냐’, ‘감기 걸린 상태에서 소풍을 다녀왔는데 인사도 없느냐’는 등의 말로 학교 방문을 유도했다. 또 ‘아이가 학교생활 잘하는지 여부는 학부모가 학교에 얼마나 잘하느냐에 달렸다’는 취지의 말을 해 학부모로부터 20만원을 받는 등 같은 해 6월까지 16차례에 걸쳐 현금과 상품권, 화장품, 양주 등 179만원어치의 금품을 받았다는 것이다.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교사에게 전적으로 자식교육을 맡기고 있는 학부모에게 적극적으로 뇌물을 요구하면서 이에 응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줄 것 같은 태도를 취해 불안감을
2006-03-28 22:43"교장 선생님, 안녕하세요?" "00야, 안녕? 아침밥은 먹고 왔니?" "00야, 할머니는 잘 계시니?" 우리 학교 교문 앞에서 아침마다 볼 수 있는 풍경이랍니다. 아이들보다 먼저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맞아주시며 깊은 인사까지 나누는 분은 우리 학교 최수성 교장 선생님이십니다. 이 낯선 풍경, 흔하지 않은 모습은 첫 출근하던 날 내 가슴에 감동의 물결을 일으킨 장면이랍니다. 몇 년 전 아들이 사레지오고등학교를 다닐 때 학교 앞에서 수사 선생님들이 등교하는 학생들의 어깨를 토닥여 주는 모습을 보고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으며 3년 동안 학부모로서 아들의 학교에 가지 않으면서도 믿고 보낼 확신이 들게 했던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의 주인이니 마음을 다해 최선의 마음가짐으로 가르치겠노라는 마음의 표현이니 참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도 인간 관계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할 때, 이성보다는 감성의 힘이 더 중요함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어찌 보면 학부모님들과 불편한 관계의 출발도 래포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나 오해에서 비롯됨을 생각하면 가르침보다 앞서야 할 전제 조건이 원만한 인간 관계일 것입니다. 하루 이틀 어쩌다 한 번 하는 일회성 인사치레가 아니
2006-03-28 16:12사각관계의 조짐이 보입니다. 지희에게 남자 급우들이 몰표를 줍니다. 쉬는 시간이면 지희 앞에 가서 재롱을 떨지 않나 뽀뽀좀 하려고 기다립니다. 성격 좋은 지희는 친구를 차별하지 않습니다. 허나 요즘 성교육이 절실한 시기라서 "친구가 싫어 하면 하지 말아야 된다"라고 주의를 줍니다. 뽀뽀를 하고 있는 친구나 멀거니 바라보는 친구나 뽀뽀를 했는데도 팔에 기대어 황홀감에 빠져 있는 친구나 다 같이 귀엽습니다. 이건 내가 한 말이 아니라 뽀뽀를 받고 있는 주인공이 한 말입니다. 하도 귀찮아 하니까 자진해서 남자 3명이 한사람만이라도 뽀뽀를 받아 달라고 합니다. 그랬을때 여주인공이 한말입니다. "어떡하지? 다 귀여운데……."라고 말입니다. 남자라야 전부가 여섯명(다섯명이었는데 한명 전학 왔음)인데 지희가 조금 집에 일찍 가던날 남자 여섯명이 우르르 몰려 와서 뽀뽀를 하고 보내줬습니다. 어떤애는 지희 앞으로 갔는데 용기가 안나 뽀뽀를 못하자 지희가 대신 남자 친구 볼에 뽀뽀를 해 줬습니다. 지희는 순식간에 바보가 되어 버리는 남자 친구들에게 여자 친구들을 때리거나 괴롭히지 말라고 주문하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급우간에 뽀뽀하는 것도 생전 처음 봅니다. 아마 유치원때 자
2006-03-27 22:01주말이면 저는 아이들과 함께 곧잘 자전거를 타고 안양천에 갑니다. 보통 오목교에서 출발하여 안양천을 끼고 페달을 밟아 한강까지 달려갑니다.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가 선유도, 또는 여의도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곤 합니다. 운동 삼아 찾아간 안양천과 한강이었지만, 어떤 날은 거의 운동을 못하고 올 때가 있습니다. 오늘 같은 날이 바로 그런 날입니다. 어쩌면 이번 주가 겨울철새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듯싶어 자꾸만 저도 모르게 자전거를 타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겨울철새를 지켜보면서 상념에 잠깁니다. 저 철새들은 왜 이곳 안양천까지 찾아왔을까? 추운 겨울에, 그것도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또한 서울에서도 수질이 가장 나쁘다는 안양천에… 알고 온 것일까요? 모르고 온 것일까요? 어쨌든 죽음의 하천이라 불리던 안양천에 철새가 날아왔다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만큼 안양천이 맑아졌다는 증거이니까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섭니다. 아직도 맑고 푸르기보다는 탁하고 시커먼 안양천, 곳곳에서 폐수냄새가 코를 찌르는데, 이런 곳에서 겨울을 난 철새들이 과연 건강할까요? 혹시 몸 안에 중금속이 과다하게 축적된 것을 아닐까요? 무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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