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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먹방’, 먹방에 열광하는 시대를 살다

음식이 대중문화계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인 시대다. 먹는 방송을 일컫는 ‘먹방’이란 신조어가 불과 몇 년 만에 일상어로 자리 잡을 정도로 음식은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음식이 부족한 시절도 아닌데 왜 사람들은 먹방에 열광하는 걸까?


처음에 먹방 스타로 떠오른 건 배우 하정우였다. 그가 영화 속에서 김과 탕수육을 ‘우적우적’ 먹는 모습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 이후 가수 윤민수의 아들 윤후 먹방이 인터넷을 평정했고, 다음엔 추성훈의 딸 추사랑이 먹방계의 슈퍼스타로 등극했다. 대한민국 대표 예능 프로그램 곳곳에 먹방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진짜 사나이>에선 PX나 식당에서 맛보는 부대별 군대음식이 훈련에 지친 출연자들의 단비가 되어준다. <아빠 어디가>는 전국 각지를 돌며 현지 식재료로 밥을 해먹으며, <1박2일>은 복불복으로 현지 특산물을 시식하는 장면이 매주 등장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과거 강호동이 라면을 맛있게 먹는 장면에서 순간 시청률이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통해선 일본의 일상적인 식사 광경이 소개됐고, <정글의 법칙>은 ‘맛 기행’의 범위를 넓혀 지구촌 오지를 돌며 투구 게, 왕도마뱀 등 현지 음식을 먹곤 한다.
과거엔 저녁식사 시간대에 하는 <6시 내고향>류의 프로그램과 아침 요리 프로그램에서만 먹는 장면을 내보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음식이 일반 예능까지 평정했고, 이제 인터넷 개인방송에까지 확산됐다. 한 일반인 ‘먹방 BJ’의 경우 누적 시청자 수가 6,500만 명에 달한다고 하니 그 열기를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의 이 먹방 열기는 외국 언론이 보기에도 특이한 현상이어서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이나 CNN 등이 기사로 다루기도 했다.

먹방을 통해 사람들이 얻는 것은 정서적 만족, 정신적 안정이다. 음식으로 불안한 마음을 달래는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불안하고, 외롭다. 과거엔 가족, 회사, 학교 등이 전통적인 공동체 역할을 했지만 최근 들어 그 공동체는 모두 사라졌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더 나아가 1인가구의 시대로 접어들며 전통적 가족의 개념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회사는 ‘믿고 의탁할 수 있는 가족’이라는 믿음이 깨졌고, 학교는 어렸을 때부터 전개되는 경쟁교육으로 삭막한 공간이 되었다. 대학생들도 더 이상 낭만을 즐기지 못하고 생존경쟁에 나선다. 정규직이 되기 위한 살벌한 경쟁으로 20대를 보내고 나면, 그 다음엔 떨려나지 않기 위한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무한경쟁 속에서 우리는 모두 개인으로 쪼개졌고, 그 누구도 미래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불안하다. 한국이 과거 가난했던 시절에도 이렇게까지 외롭고 불안하진 않았었다. 풍요 속의 고독, 풍요 속의 불안이라고 할 만하다. 그래서 음식이고 먹방이다.

음식은 인간을 자극하는 1차원적 소재다. 생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원이기도 하다. 불안한 상황에선 1차원적인 자극에 끌린다. 고전음악 같은 고차원적인 자극을 향유할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에 가장 원초적이고 센 자극에 끌리는데, 인간에게 음식만큼 원초적인 자극은 없다. 그래서 음식을 보면 세상의 시름을 잊고 몰입하게 된다. 음식은 곧 생존을 뜻하기 때문에 음식을 접하면 불안한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래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이 종종 폭식한다. 음식 같은 1차원적인 자극에 빠지는 순간 우리는 퇴행한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사회생활을 하던 그 긴장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지친 마음이 치유되고 편안해진다. 일반인 먹방은 BJ와 내가 관계를 형성한다는 환상 속에서 고독한 마음을 위로받는다. 바로 이것이 먹방 열풍의 근본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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