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일상화된 휴대폰을 넘어 챗GPT·자율주행차·AI 등이 모두에게 친숙한 사회가 되어 버렸다. 흔히 이야기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본격화되었고, 이와 함께 과연 앞으로 어떤 인재들이 필요하며, 이러한 인재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분명한 점은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 시기의 교육과 교육정책 틀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는 미래사회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노키아의 몰락과 애플의 성장이 주는 교훈
우리의 교육은 분명하게 정해진 문제의 해결방법을 찾는 데 특화되어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나라가 고도성장기일 때에는 저 멀리 우리가 따라가야 할 나라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그 나라들이 이룬 것을 쫓아가기만 하면 충분한 시기였다. 그 결과 우리의 교육도 주어진 문제를 빠르게 풀 수 있는, 속도와 확실한 답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정형화되었다.
하지만 한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이제는 베낄 나라들이 많지 않아졌다.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 세상에 없던 물건들을 만들어 내거나, 이미 있던 물건이라도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혁신이 뜻하는 바다.
1990년대까지 세계 핸드폰 시장을 호령하던 노키아의 몰락과 애플의 성장은 바로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기업의 성패를 가른 대표적인 예로 자주 등장한다. 노키아는 핸드폰을 통신수단으로만 생각했지만, 애플은 핸드폰을 컴퓨터로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의 차이로 말미암아 애플은 스마트폰을 만들어 낼 수 있었고,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혁신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주어진 문제에 빠르게 답을 찾는 능력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챗GPT를 예로 들어보자. 챗GPT는 우리가 던진 질문에 기가 막히게 답을 내놓는다. 그렇지만 챗GPT가 질문을 던졌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능력과 질문하는 능력은 오로지 인간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제 주어진 질문에 대해 답을 찾는 일은 챗GPT나 AI에 물려주어야 할 때가 왔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전혀 새로운 차원의 질문을 던지는 일이 될 것이다.
에릭 브린욜프슨(Erik Brynjolfsson)과 앤드루 맥아피(Andrew McAfee)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제2의 기계 시대(The Second Machine Age)라고 부르는데, 이들에 따르면 제2의 기계 시대의 특징은 기하급수적(exponential), 디지털 그리고 융합적(combinatorial)이라고 한다.
제2의 기계 시대에는 근로자가 수행하는 업무의 45%를 AI가 대체할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현존하는 일자리의 45%가 ‘소멸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내용이 달라진다’라는 것을 뜻한다. 즉 근로자는 AI와 함께 일하며, AI를 활용할 줄 알아야 하는데 이에 따라 AI를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내용과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AI가 하지 못하는 것을 인간이 할 수 있도록 교육과 학습이 바뀔 필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AI가 하지 못하는 것
일은 크게 인지적인 일과 육체적인 일, 그리고 일상적인 일과 비일상적인 일로 구분할 수 있다. <표 1>은 앞으로 인지적·육체적 기능을 떠나 일상적인 일에서의 노동 수요는 감소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는 달리 비일상적인 일에서는 노동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비일상적·육체적 일은 수요 증가보다 공급의 증가가 커서 임금이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표 1>에 나타난 네 가지 분면 중에서 오직 비일상적인 동시에 인지적 기능을 수행하는 근로자의 임금만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앞으로의 사회는 이른바 숙련에 경도된 기술 변화(skill-biased technical change)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즉 고도의 숙련을 요구하는 일에 대해서만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적자본을 갖춘 개인을 길러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사회는 어떤 숙련(skill)이 필요할 것인가? 산업사회에는 특정 영역의 전문성을 갖춘 개인을 길러내는 데 집중했었고, 좁은 영역에서 전문화된 교육이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볼 때도 바람직한 방향이었다. 그러나 급속한 기술발전은 기술변화에 지속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능력, 다양한 맥락에 적용할 수 있는 이른바 ‘전이 가능한 숙련(transferable skills)’을 필요로 한다.
자동화·디지털화·노동시장의 유연성 증가에 따라 현재의 교육시스템은 미래에 대응하는 데에 심각한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아직도 우리 교육은 19세기형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에릭 브린욜프슨과 앤드루 맥아피에 따르면 19세기 교육의 핵심은 3R, 즉 reading(읽기)·writing(쓰기)·산수(arithmetic)이며, 이는 19세기 대영제국 시대에 영국이 세계를 통치하기 위해 모든 제국 국민이 표준적인 능력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 만든 교육내용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21세기까지도 이 교육 모델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교육 모델을 통해 습득하는 교육내용은 이제 거의 AI가 대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21세기에는 어떤 능력이 필요한가? 에릭 브린욜프슨과 앤드루 맥아피에 따르면 아이디어를 창안해 내는 능력(ideation), 큰 흐름을 잡아내는 능력(large-frame pattern recognition), 복잡한 흐름을 제대로 전달하는 능력(complex communication)이 핵심적인 능력이라고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필요한 능력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에서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을 15개로 정리해서 제시한 바 있다(<표 2> 참조). 흥미 있는 사실은 World Economic Forum에 제시한 15개의 능력 중 기술과 관련된 능력은 두 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대신 ‘분석적 사고, 적극적 학습, 복잡한 문제해결력, 비판적 사고력, 창의성, 이성적 논구’ 등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처하는 데에는 훨씬 중요한 능력으로 제시되어 있다. 이런 능력은 주입식 교육으로는 절대 배양될 수 없는 능력이다. 이른바 3R을 통해서는 배양될 수 없는 능력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대목은 리더십과 사회적 영향력, 회복력, 정서적 지능, 설득과 타협이 매우 중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능력은 타인과의 부단한 상호작용을 통해서 길러질 수 있는 능력이다. 지금처럼 혼자서 공부하고 홀로 남을 이겨 나가는 과정을 통해서는 절대 기를 수 없는 능력이다. 팀을 이뤄서 협업할 줄 알고, 상대를 존중하면서 부단히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길러낼 수 있는 능력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교육의 방향은 명확하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부터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기르는 19세기적 능력으로는 미래사회를 이끌어갈 인재를 길러내지 못한다.
마이클 샌덜(Michael Sandel)이 갈파한 것처럼, 더 이상 실적주의와 승자독식을 통해서 21세기형 인재를 길러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남을 이해할 줄 아는 아이, 남과 협력할 줄 아는 아이, 창의적인 질문을 할 줄 아는 아이를 길러내야 할 것이다. 한국교육이 근본적으로 변해야 하는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