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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두 번 읽은 <채식주의자>를 세 번째 펼치는 이유

시적 산문으로 폭력에 저항한 작가
책을 읽고 알 수 없는 치유를 경험했다

 

"작가 한강의 글은 난해하고 심오하다. 가슴을 후비고 아프게 한다. 다 읽고나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내면 깊숙한 곳, 영혼의 눈물이었다."

 

이것이 채식주의자를 두 번 읽고 난 나의 한 줄 평이다. 그리고 이 책을 쓰며 많이 아팠을 작가에게 안쓰러움도 느꼈다. 아프고 쓰린 대목을 그처럼 적나라하게 표현할 때마다 작가 스스로도 몰입해야 하니 그녀는 피를 흘렸을 것이다. 실제로도 책을 탈고할 때마다 많이 아팠다고 고백했다.

 

책의 어느 한 대목도 편하게 읽히지 않았다. 분명히 한글로 씌어진 책인데 외계 언어를 읽는 것처럼 낯설었다.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작가만의 언어의 세계를 가늠조차 할 수 없으니 그랬으리라.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맛있다고 소문난 식당에서 먹은 음식인데, 도대체 무슨 맛인지 모르고 겨우 먹은 비싼 음식 같다고나 할까. 먹어본 적이 없거나 독특한 향신료를 써서 내 취향과 맞지 않는 비싼 음식과 같은, 내 취향은 뚝배기 된장찌개인데 고급 호텔식당에서 핏물이 감도는 비싼 스테이크를 먹으며 역겨워하는 느낌이랄까.

 

남들은 노벨문학상 작가 작품이라고 다들 서점으로 온라인으로 달려가서 사들인 책이다. 사서 읽지 않으면 유행에 뒤지는 듯한, 마치 한정판 명품백을 사기 위해 줄서는 사람들처럼 몰려갔다. 나도 그 바람에 한강 작가의 시집도 사고 소설도 사들였다. 부끄럽게도 우주물리학 책을 읽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 내 언어의 한계를 탓하면서 한숨을 내쉬며 읽은 책이다. 책도 200페이지도 안 되는데 며칠 동안 읽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어느 대목에서 노벨문학상 심사위원들을 감동시켰는지, 영감을 주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문학적 상상력이 낮은 내 탓을 하는 수밖에! '시대의 폭력에 맞서 그 폭력을 표현하는 길은 더 폭력적인 언어를 쓸 수밖에 없었다'고 작가는 말했다.

 

그래서인지 작가 한강의 문장에선 행간을 읽어내기는 더 어렵다. 친절하게 설명해주거나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언질조차 없다. 내게는 매우 불친절한 책이었다.

 

마치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자신만이 알아볼 수 있는 시어를 가득 쓴 듯한 형상화로 가득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적 산문'이라고 평하는 것일까. 시는 다분히 주관적이고 해석하는 독자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가장 정확한 이해는 작가만이 알 것이다. 불행하게도 독자의 수준이 작가의 그것에 미치지 못하면 읽을 수 없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이 일부 학부모들로부터 욕을 많이 먹었나 보다.

 

다른 세상의 책, 대중적이지 않은 서술 방식

한강 작가의 문학적 언어는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했다. 내가 읽었던 여타의 작가들과 확연히 달랐으니, 글자 그대로 읽어서는 안 되는, 글자 이면에 감춰진 언어를 해석하며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마치 다빈치가 왼손으로 쓴 글자를 거울에 비춰가며 읽어야 알아낼 수 있듯 작가가 자기만의 비밀언어 체계를 갖추어 쓴 책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그의 글에서 꿈으로 묘사된 문장 속에 키포인트가 담겨 있음을 겨우 찾아내고 스스로에게 박수를 쳤다. 그의 글에서 꿈으로 암시된 곳에서 마치 '다빈치 코드' 처럼 문장이 가리키는 방향이 있었다.

 

그러니 보통의 대중소설을 생각하며 읽으려고 한다면 접근조차 불가능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의 서평이 매우 많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다양한 느낌을 서술하고 있다. 공통적으론 나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어쩌면 일반적인 소설의 틀을 벗어난 구성과 전개를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그의 소설의 중요한 시사점은 늘 꿈을 매개로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점이다.

 

"꿈을 꿨어", 라고 아내는 두 번 말했다. 달리는 차창 너머, 터널의 어둠 위로 그녀의 얼굴이 스쳐갔다. 처음 보는 사람처럼 그 얼굴은 낯설었다. 그러나 거래처 사람에게 둘러댈 변명과 오늘 소개할 시안을 삼십분 안에 정리해내야 했으므로, 더 이상 아내의 이상한 행동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어떻게든 오늘은 일찍 들어가야겠어, 부서 바뀌고 몇 달 동안 하루도 열두 시 전에 퇴근한 적이 없었잖아, 라고 잠깐 속으로 뇌까렸을 뿐이었다. -18쪽

 

이 대목에서는 일상이 된, 습관적으로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을 보았다.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절절한 사랑은 간 곳 없는 영원회귀의 모습처럼 일과 노동, 의무와 책임으로 나날을 보내는 보통의 가정과 부부의 모습이다. 매우 구체적인 묘사라서 그래도 읽기 편한 문장이다. 긴장감 없이 그저 일상이 된 이 모습이 문제를 일으키고 일탈로 이어짐을 짐작케 한다.

 

"그렇게 생생할 수 없어, 이빨에 씹히던 날고기의 감촉이. 내 얼굴이, 눈빛이. 처음 보는 얼굴 같은데, 분명 내 얼굴이었어. 아니야, 거꾸로, 수없이 봤던 얼굴 같은데, 내 얼굴이 아니었어. 설명 할 수 없어.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 생생하고 이상한, 끔찍하게 이상한 느낌을." -19쪽

 

이 대목은 어쩌면 채식주의자에서 핵심문장이 아닌가 한다. 주인공이 꿈 속에서 본 장면과 연결되는 대목이다. 어린 날 고통스럽게 학대 당하며 죽어간 강아지가 오버랩 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불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한 장면이다. 산문으로 폭력에 맞선 책, 이상하게 치유가 됐다.

 

"너 정말 어쩌려구 그러니? 사람한테 필요한 영양소가 있는 건데. 채식을 하려면 제대로 식단을 잘 짜서 하든가. 얼굴이 그게 뭐야." 처남댁도 거들었다. "저는 딴사람인 줄 알았어요. 얘기는 들었지만, 그렇게 몸 상해가면서 채식하는 줄은 몰랐지 뭐예요." "지금부터 그 채식인지 뭔지는 끝이다. 이거, 이거, 이거, 다 먹어라 얼른. 없어 못 먹는 세상도 아니고 무슨 꼴이냐." -46쪽

 

위 부분은 채식주의자인 주인공에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적인 장면을 매우 사실적으로, 훌륭하게 묘사한 대목이다. 주인공을 나락으로 몰아가는 충격적인 장면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부모라는 권력으로 행해지는 가정폭력의 장면을 눈에 보일 듯 상상하게 만드는 매우 사실적인 문장이라서 놀랍다. 그럼에도 책 어디에도 주인공의 행동을 이해시키는 대목은 나오지 않는다.

 

나는 이 대목에서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나 또한 내가 담당하는 반 아이들에게 식사지도를 한다는 명목으로 싫어하는 음식도 반드시 먹게 하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휘두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줄여서라도 반드시 맛보게 하고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며 먹게 했으니.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회의감이 들게 한 문장이다. 물론 아이들에게 왜 먹어야 하는지, 얼마나 소중한 음식인지 꼭 설명을 해주고 먹게 했지만,억지로 입에 넣어준 적은 없지만 그래도 마음이 걸렸다.

 

그제야 그는 처음 그녀가 시트 위에 엎드렸을 때 그를 충격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모든 욕망이 배제된 육체, 그것이 젊은 여자의 아름다운 육체라는 모순, 그 모순에서 배어나오는 기이한 덧없음, 단지 덧없음이 아닌, 힘이 있는 덧없음. 넓은 창으로 모래알처럼 부서져내리는 햇빛과, 눈에 보이진 않으나 역시 모래알처럼 끊임없이 부서져내리고 있는 육체의 아름다움. 몇마디로 형용할 수 없는 그 감정들이 동시에 밀려와, 지난 일년간 집요하게 그를 괴롭혔던 성욕조차 누그러뜨렸던 것이었다. -104쪽

 

인내의 힘으로 쓰라림을 억누른 체 일상의 등짐을 묵묵히 지고 걸어가는 그녀에게는 무관심의 채찍질만이 가해질 뿐이다.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존재감과 고독은 아픔 속에서 가장 온전하며 다채롭게 구현된다. 파괴적인 열정에 부딪쳐 깨져버린 이들이 숭고한 예술작품을 만들었다고 가정해보자. 인내의 근육을 가다듬으며 일상의 곡예를 아슬아슬하게 연마한 그녀의 삶을 감히, 예술작품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는 또 어디 있겠는가. 욕망을 감추는 데 들이는 에너지는 욕망의 나신을 드러내는 데 들이는 에너지보다 훨씬 더 막대할 것이다. -한강 작가의 글에 덧붙인 허윤진의 해설 중에서 -238쪽

 

작가 한강의 글에 해설로 덧붙인 허윤진의 글마저 난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작가들의 뇌구조는 일반인들과 다른 걸까. 그들만의 언어세계가 따로 있는 것 같았다.

 

작가의 글쓰기는 어떤 식으로든지 경험으로 시작한다고 한다. 직접이든 간접이든. 그러니 순전히 상상만으로 글을 쓰는 작가는 드물다고 생각한다. 신문 한 귀퉁이에 난 사건 사고가 책을 쓰게 만들고 누군가의 고백이 책으로 거듭나기도 한다.

 

어쨌든 이 책을 선택한 분이라면 단단히 마음 먹고 도전해서 끝까지 읽어 정상에 올라서길 비는 마음이다. 서평도 아니고 독후감도 아닌 어정쩡하지만 다 읽었다는 숙제를 마쳐 마음이 편하다. 사족을 붙이자면 인간성 회복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 앞에 무력한 자신을 위해 육식을 거부하며 죽음에 이르도록 채식주의자가 된 주인공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사람들 또한 지금, 세상으로부터 날아오는 유형 무형의 폭력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누군가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가 주는 안락함 대신 버림 받고 사랑 받지 못하는 가정폭력, 가난으로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슬픔을 안고 버티며 살아온 불안정한 세상에 던져지는 폭력, 사랑한다고 생각한 사람이 가하는 데이트 폭력, 직장과 조직에서 수모와 멸시를 당하는 폭력, 가족이 된 배우자로부터 당하는 폭력에 국가가 주는 폭력까지. 안전한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이 책은 바로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폭력에 관한 작가의 고발서임이 분명하다. 세상의 폭력에 맞선 책이 분명하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치유를 경험했다. 말없이 어루만져주는 보이지 않는 손길을 느꼈다.

 

그러나 그 이유를 잘 모른다. 나도 모르는 내 영혼 깊숙한 곳에서 치유의 눈물이 흘렀다. 알게 모르게 상처를 받으며 살아온 내 마음의 상처를 건드려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잊고 싶었던 그 모든 상처가 작가의 말없는 문장으로 위로를 받았음이 분명하다. 폐부를 흔들어 더 깊은 내면의 상처를 더 들여다 볼 세 번째 읽기를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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