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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삶은 흘러가도 마음은 머문다”…아내를 향한 50년 사랑의 고백

송암 김문수 시인, 사별의 슬픔을 시로 건네다

“내년에도 이 길을 걸을 수 있을까….”

 

말끝은 끝내 흐려졌다. 인터뷰 도중 세 차례나 눈시울을 붉힌 송암(松岩) 김문수 작가(77). 아내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친 뒤 겨우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이… 나의 전부였다는 걸 떠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경기도구리남양주교육지원청에서 은퇴한 김 작가가 자전적 시집 『삶은 흘러가도 마음은 머문다』(부제: 아내에게 바치는 삶의 고백)를 펴냈다. 지난해 6월 8일, 담도암으로 4년간 투병하던 아내를 떠나보낸 뒤 꼭 1년 만이다. 50년 세월을 함께한 아내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남겨진 사람의 고백이다.

 

시집은 ▲서문 ▲1부 ‘배움으로 피어난 학창시절’ ▲2부 ‘교직은 나에게 천직이었다’ ▲3부 ‘함께한 삶, 함께한 마음’ ▲4부 ‘나는 이렇게 살으렵니다’로 구성됐다. 자작시 52편과 가족의 편지, 기도문, 위로의 말들이 함께 담겼다.

 

김 작가는 “처음부터 책을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아내를 보내고 슬픔과 외로움, 그리움이 한꺼번에 밀려왔어요. 그 마음을 견디다 보니 어느 순간 글이 써졌습니다. ‘하늘에는 구름이 있고 바다에는 파도가 있듯이, 내 마음엔 무엇이 있을까’ 그렇게 쓰다 보니 결국 답은 하나였어요. ‘내 마음엔 당신이 있고, 내 가슴엔 사랑이 있구나.’” 그 글을 딸에게 보여주자 딸은 “아빠, 시인이네”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가 평생 묻어두었던 삶의 기억들을 꺼내게 했다.

 

김 작가의 삶은 한 편의 자서전과도 같다. 그는 양평강남초등학교에서 교직의 첫발을 내디딘 뒤 40년 동안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2011년 8월 경기도구리남양주교육지원청 근무를 끝으로 정든 교단을 떠났다.

 

그러나 정작 그는 “시와 문학을 가까이했던 사람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아이들과 산에 올라 꽃을 보며 이야기하는 건 참 좋아했습니다. ‘네가 보는 이 꽃이 얼마나 예쁘냐’ 그런 감성을 함께 나누곤 했지요. 하지만 내가 직접 시를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의 호 ‘송암’ 역시 젊은 시절 산에서 얻었다. 큰 바위 곁에 우뚝 서 있는 소나무를 보고 “묵직한 바위와 늘푸른 소나무가 참 잘 어울린다”며 스스로 붙인 이름이다. 그 이름처럼 그는 묵직하고 단단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아내를 떠나보낸 뒤의 삶은 이전과 달랐다.

 

“사람들은 빨리 잊고 다시 살아가라고 하지만, 그게 되나요. 슬픔은 슬픔으로 견디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내를 떼어놓고 따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지금도 함께 사는 거예요.” 그는 시를 쓰며 스스로를 위로했다고 했다. 쓰고, 다시 읽으며 아내와 대화하듯 시간을 보냈다. “이 사람이 이 글을 보면 참 좋아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다시 펜을 들었다.

 

특히 시 「소금강을 생각하며」에는 아내와의 마지막 추억이 깊게 배어 있다. 투병 중 강릉 오대산 소금강 길을 함께 걷던 날, 아내는 무심한 듯 이런 말을 남겼다. “내년에도 이 길을 걸을 수 있을까.” 그 대목을 떠올리던 김 작가는 끝내 말을 멈추고 눈물을 흘렸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움은 여전히 현재형이었다.

 

“아내가 아플 때는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했어요. 그런데 건강할 때는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고 후회스럽습니다. 정말 고맙고, 절대적인 사람이었는데….”

 

 

시집을 읽은 독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낸 이들은 “책을 읽으며 많이 울었다”고 했다. 암 투병 중인 한 후배는 전화를 걸어 “눈물이 나 말을 잇지 못하겠다”며 한참을 울먹였다고 한다. 중학교 1학년 학생에게서는 “할아버지, 책 읽고 울었어요. 고맙습니다”라는 전화도 받았다. 김 시인은 “누군가에게 공감과 울림이 됐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번 시집 곳곳에는 그의 인생사가 오롯이 녹아 있다. 가난 때문에 중학교 진학조차 어려웠던 어린 시절, 큰형의 도움으로 학업을 이어간 사연도 담겼다. 그는 “77년 삶을 돌아보니 아픔과 사연이 너무 많았다”며 “그 모든 시간을 결국 사람과 사랑이 견디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시집 속 「눈물」이라는 작품은 그의 현재를 압축해 보여준다. “눈물은/눈약인가 보다//눈을/부드럽게 한다//참아 두었던/슬픔이/어딘가 사라지고//답답하던/가슴도/잠시/숨을 쉰다.”

 

또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이런 문장이 담겼다. “당신이 남겨 준 말, ‘남에게 추레하게 보이지 말고, 잘 먹고, 아프지 마라.’ 그 말을 잊지 않고 지키고 있습니다. 당신이 늘 내 곁에 있는 것처럼, 나는 오늘도 당신을 마음에 품고 살아갑니다.”

 

김 작가의 북콘서트는 오는 12일 오전 11시 남양주시 퇴계원읍 미래에듀사회적협동조합 1층 ‘시간의 서재’에서 열린다. 경인교대 남양주 퇴임 동문회가 마련한 자리다. 그는 “아내에게 바치려고 쓴 책인데 후배들이 이렇게 뜻깊은 자리를 만들어줘 감사하다”며 “오시는 분들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 그는 혼자 살아보니 깨달은 삶을 조용히 털어놓았다. “혼자가 되면 자유로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크게 웃지도, 무엇 하나 의욕이 나지도 않더군요. 결국 어떻게 살아내느냐는 자기 몫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황금길을 걸으며 나뭇잎에 마음을 담아 하늘 높이 날려 봅니다.”

 

삶은 흘러간다. 그러나 사랑했던 사람은 마음에 오래 머문다. 송암 김문수 작가의 시는 결국 남겨진 이의 슬픔이 아니라, 끝내 사라지지 않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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