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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새로운 가훈

다름을 인정하자

딸이 20년 만의 대학 동창회에 간다고 했다. 초등학교 1학년인 쌍둥이와 함께 여행을 겸해 1박으로 다녀올 계획이었다. 금요일 하루는 학교에 체험학습도 신청했다.  ‘아이들까지 학교를 쉬게 하면서 꼭 가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딸에게 이번 동창회는 단순히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가 아니었다.


결혼 10년 동안 쌍둥이를 키우며 가사와 육아에 온 힘을 쏟아온 딸이었다. 잠시나마 ‘누구의 엄마’와 ‘누구의 아내’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오랜 친구들 앞에 서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두 아이가 엄마에게 쓴 편지를 보고서야 딸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게 되었다.


글씨가 반듯한 아이는 편지지를 가득 채웠다. “엄마, 매일 행복하게 지내자. 언제나 엄마가 슬프면 말해. 사랑해.” 동그랗게 그린 엄마 얼굴 주위에는 사랑의 표시도 가득했다.

 

다른 아이는 이렇게 썼다.  “엄마, 언제나 기쁘게 살아. 엄마 슬픔 다 알고 있어. 용기 내. 사랑해.”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 쓴 문장이라고 하기에는 마음이 깊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대화와 표정 속에서 엄마의 마음을 알아차린 듯했다. 문제를 해결할 방법까지는 몰랐지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방법으로 엄마를 위로하고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가르침이 있는 학교에 머물렀었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미숙하기 때문에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편지를 읽으며 다시 깨달았다. 아이들은 어른이 미처 말하지 못한 마음까지 살피고, 때로는 어른보다 더 솔직하고 따뜻한 말로 상처를 어루만진다는 것을.


딸도 자신의 마음을 차분히 설명하며 가족과 대화를 이어갔다. 서로의 입장은 달랐지만, 상대방을 이기려 하기보다 이해시키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처음엔 아이들 결석이 맘에 걸려 우려했던 남편도 “내가 생각이 짧았다. 미안하다”며 딸의 마음을 받아들였다. 요즘은 옛과 달리 20일간 출석인정 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되었다. 재래시장 체험으로 목적이 하나 더 있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나의 젊은 시절이 떠올랐다. 친구의 결혼식에 꼭 가고 싶었지만, 어린아이가 감기약을 먹고 있어 포기한 일이 있었다. 당시에는 엄마가 되었으니 내 마음을 접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쉬워도 내 생각을 말하거나 가족과 타협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가족의 모습도 달라졌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자신의 마음을 말하고, 서로의 생각이 다를 때는 대화를 통해 조정하려고 한다. 갈등이 전혀 없는 관계보다 갈등을 건강하게 풀어 가는 관계가 더 단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딸에게서 배웠다. 


동창회에 따라간 쌍둥이들도 뜻밖의 즐거운 체험을 했다. 엄마의 오랜 친구인 이모와 삼촌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았고, 이튿날에는 서문시장을 구경하며 맛있는 음식도 먹었다. 엄마의 동창회가 아이들에게도 오래 기억될 가족 여행이 된 것이다.

 

' 박스박을 떠나라(Think outside the box)' '틀을 깨고 생각하라' '익숙한 경계를 넘어 새로운 길을 찾아라' 

 

익숙한 방식에 갇치지 말고 새로운 관점에서 해결책을 찾아보자는 창의성교육에 많이 사용되던 말이다.


여행을 다녀온 뒤 딸이 가족 단체 대화방에 글을 올렸다. 마침 해답을 보여주듯이 “나를 다시 찾은 기분이다. 이제 나의 이름으로 살아가자.” “아이들의 말처럼 언제나 기쁘게 살아야지.” 그리고 아이들 칠판에 새긴 글이 눈에 들어온다. ‘다름을 인정하자.’


짧은 문장을 한참 바라보았다. 한집에 살아도 생각은 서로 다를 수 있다. 부부가 다르고, 부모와 자녀가 다르며, 세대가 다르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모든 아이를 하나의 기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일이 중요하다.


20년 만의 동창회에서 딸은 옛 친구들만 만난 것이 아니었다. 한동안 ‘엄마’와 ‘아내’라는 이름 뒤에 놓아두었던 자기 자신도 다시 만났다. 그 만남을 통해 딸의 삶에 작은 근육 하나가 더 생긴 듯해 나는 안심했다.


나는 딸의 글에 ‘엄지 척’ 이모티콘을 보내고 짧게 답했다. “지식을 쌓으면 똑똑한 사람이 되지만, 다름을 품으면 현명한 사람이 된단다.” 딸의 동창회와 아이들의 편지는 나에게도 귀한 가르침을 주었다. 가족이란 언제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다시 손을 잡을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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