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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추석과 한복

또닥, 또닥, 또닥. 마지막 남은 여름의 습기를 말려주려는 듯 초저녁 공기를 뚫고 밤하늘에 울려 퍼지는 다듬이의 상쾌한 소리는 추석 옷 준비를 서두르는 소리 중 하나였다. 섬세하고 가녀린 섬유가 훼손되지 않도록 정확한 강도 조절이 필요한 다듬이질은 한복 바느질의 여러 단계 중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과정일 것이다.

 

 

예전, 그 많은 살림살이 일 중에서도 추석이 가까워지면 어머니는 정성을 들여 명절옷 다듬기에 분주했다. 장마와 무더위 때문에 무시되었던 복식의 예법을 다시 세우려는 듯, 모시나 갑사 혹은 노방을 넓게 펼쳐서 추석 옷을 지었다.

 

그중에서도 세탁 때마다 깃이며 고대가 각각으로 나누어져 있는 다듬이 두루마기는 되직한 쌀풀로 붙여가며 오직 손바느질로 만들어졌다. 연한 옥색으로 완성된 다듬이 옷에는 섬유가 가진 본래의 문양도 있지만, 풀을 먹이고 다듬이하는 과정에 물결과 같은 영롱한 무늬가 섬유 표면에 아로새겨져 의복에 빛을 더해 주었다. 온전히 손바느질로 빚어진 빛살과 같은 문양은,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마치 신기루 같은 아름다움이었다. 그 많은 가사 노동에도 불구하고 한 벌의 명품 핸드 메이드를 지어내고 흡족해하던 어머니 얼굴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런 한복을 중국에서는 ‘한푸(漢服)’라 하며 자기네 것이라는 문화 공정을 하고 있다. 틱톡을 중심으로 한복이 중국의 전통의상 한푸에서 유래됐다는 영상이 확산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문화 공정이 심각하다며 우려를 표했다.

 

서 교수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최근 경복궁에서 중국 전통의상을 입고 활보하는 중국 인플루언서들의 사진과 영상에 대한 제보를 많이 받았다며 “틱톡에는 한복이 한푸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을 담은 영상이 넘쳐 심각한 수준”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복은 고구려 벽화에도 남아 있는 한국의 전통의상으로 상·하의가 구분되는 형태이고 한푸는 원피스 형태로 엄연히 다른 의상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우려가 있는 가운데 지난 8월 중순 백두산 천지를 돌아보는 일정 가운데 연길 시내의 조선족 민속문화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곳은 중국 젊은 세대 사이에서 한복 체험과 감성 스냅촬영의 성지로 떠오르며 연변대학 왕홍챵과 함께 연길 여행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고 한다. 중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이곳을 찾아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곳이 유행이라고 한다.

 

늦은 오후지만 식지 않은 상당한 열기가 있었다. 민속원 내부에는 조선족 전통 양식으로 지어진 기와집과 귀틀집 등 전통가옥이 아기자기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실제로는 용정 등 주변 지역에서 보존되어 온 100년이 넘은 고택 9채를 그대로 옮겨와 세월의 깊이와 전통미를 느낄 수 있게 하였다.

 

이 민속원에서 눈길을 끈 것은 한복차림의 기념 촬영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이었다. 관광객의 90% 이상이 화려한 한복을 차려입고 입장한다. 민속원 입구와 주변 거리에 수많은 한복 대여점이 늘어서 있으며, 의상 대여는 물론이고 정교한 헤어 스타일링과 메이크업, 전문 사진작가의 스냅촬영까지 풀 패키지로 제공하는 서비스가 매우 활성화되어 있다.

 

해 질 무렵부터 민속원 내 전통 청사초롱과 화려한 경관 조명이 켜지기 시작하자 고풍스러운 기와지붕과 은은한 불빛이 어우러진 몽환적인 풍경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이 한복을 입은 중국 사람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겹쳤다. 한복을 입은 모양이 마치 경복궁에 국적 불명의 한복 패션으로 거닐고 있는 외국인 같아 보였다. 단지 우리의 한복 문화가 이곳 조선족에 남아 중국 속에서 명맥을 더하고 있다는 모습은 자랑스러웠다. 현란한 LED의 조명 속에서 한복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지만, 속내가 그렇게 편치 않은 까닭은 왜일까?

 

한복은 우리 민족의 사상, 관습, 행위, 기술 등 양식과 정신이 깃든 고유 의복이다. 한복은 치마, 저고리, 바지, 두루마기에 조끼, 마고자로 이루어져 있다. 서양식 옷이 들어오기 전까지 우리한테는 오로지 한복만이 존재했다.

 

한복의 가장 큰 특징은 곡선의 아름다움이다. 저고리의 배래(소매 끝부분)는 부드럽게 둥글며, 깃과 동정의 선 또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여성 치마는 직선으로 재단되었지만 착용했을 때는 풍성하게 퍼지며 곡선을 형성한다. 이러한 선의 조화는 한국 전통 건축의 처마 곡선과도 닮아있다. 부드럽고 유연한 형태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는 우리 조상들의 미적 감각을 보여준다. 몸의 라인을 과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은은한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점이 한복만의 매력이다.

 

우리의 옷 한복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데 고구려 고분벽화와 신라, 백제의 유물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중국 조나라 무령왕은 우리의 저고리인 유(襦)와 바지인 고(袴)를 군복인 융복에 빌려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일본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집단으로 이주할 때 입고 간 저고리, 치마, 바지, 두루마기 등이 전해졌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이러한 기록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한복이 존재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렇게 공을 들여가며 정성으로 지은 우리 옷이 한복이다. 추석 성묘에 모시 두루마기를 입고 나가시던 아버지 모습은 이제 전설 속의 한 장면처럼 아득할 뿐이다.

 

한복은 시대에 따라 형태가 달라졌다. 최근에는 한복이 현대적으로 재해석되면서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생활 한복은 활동하기 편하게 디자인이 간소화되었으며, 다양한 색감과 패턴을 활용해 젊은 세대의 취향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K-드라마와 K-팝의 세계적인 인기로 인해 해외에서도 한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전통 의상이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는 모습은 한국 문화의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명품 한복이 완성되기까지 그 막대한 노력과 시간 투자는 5G보다 더 빠른 지금의 속도 전쟁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다. 전통 복식에 들이는 노력과 시간이 빠름과 속도만으로 승부하는 요즘에 맞지 않다고 하더라도 지금 일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막무가내식 한복 훼손은 이제 심각하게 돌아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고궁 입장용으로 만들어진 국적 불명의 옷은 더 이상 한복으로 분류하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지나치게 번쩍이는 장식 구슬은 무엇이며, 등 뒤에 붙은 대형 나비 리본은 어디에서 연유된 것일까? 외국인 관광객들이 선호한다는 이유만으로 전통 한복의 멋과 복식을 훼손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한복은 단순한 옷이 아니라 한국인의 역사와 철학, 그리고 미의식을 담고 있는 전통 복식이다. 자연과의 조화, 절제된 아름다움, 색채에 담긴 상징성까지 한복에는 수많은 의미가 녹아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한복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특별한 날 한복을 입는 순간, 우리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문화의 흐름 속에 서 있게 된다.

 

옷이란 애초 생활의 한 방편이지만, 사람의 몸에 가장 밀착되어 있어서 한 사람을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의복이 중요하다. 한복은 무엇보다 우리 민족의 멋과 정서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우리의 전통 복식이다. 앞으로도 한복이 다양한 방식으로 계승되고 사랑받으며, 우리 문화를 대표하는 소중한 유산으로 남기를 기대해 본다.

 

이제 추석이 다가온다. 간편함을 찾지만, 전통을 되돌아본다는 의미로 옷장 깊은 곳에 있는 한복을 입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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