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의 배움은 반드시 교실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일까. 배추에 양념을 버무리고 겨울을 준비해 온 농촌의 생활문화를 직접 경험하는 것도 하나의 수업이 될 수 있다. 교과서에서 배운 전통문화가 생활 속 경험으로 이어지고 마을의 일상이 교육과정이 되는 곳이 있다. 강원 홍천의 작은 농촌학교인 화촌초등학교다.
화촌초는 5일 홍천군 화촌면에 위치한 농촌체험장 백이동골(주)에서 유치원생과 전교생이 함께하는 ‘2026 농촌문화 체험 김장김치 만들기’ 활동을 실시했다. 이번 체험은 학생들이 전통 식문화를 직접 경험하고 지역의 교육자원을 활용해 농촌유학과 연계한 배움의 기회를 넓히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학생들은 김장에 필요한 재료를 손질하고 배추에 양념을 버무리며 김치를 만드는 과정을 체험했다. 평소 식탁에서 먹던 김치를 직접 만들어 보면서 먹거리의 소중함과 농촌의 생활문화를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체험에 참여한 한 학생은 “저는 다른 곳에서 김장 담그기를 해 봤어요. 오늘 또 해 보니까 재미있어요”라며 즐거움을 표현했다. 또 다른 학생은 “파를 썰 때 잘 안되었는데 선생님과 함께 하니 잘 잘라졌어요”라고 말했다. 익숙하지 않은 활동에 도전하고 교사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해결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배움이 된 것이다.
특히 유치원생부터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함께 참여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서로 다른 연령의 학생들이 같은 활동을 경험하며 협력과 배려를 배우는 것은 소규모학교의 특성을 살린 교육활동이자 유·초 이음교육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농촌 일상이 살아 있는 교육과정으로
김장은 단순한 음식 만들기를 넘어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공동체 문화를 담고 있다. 가족과 이웃이 함께 겨울철 먹거리를 준비하고 나누던 생활 속에는 협력과 나눔의 가치가 깃들어 있다. 유네스코가 2013년 김장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한 것도 이러한 문화적 가치를 인정한 결과다.
김장 체험은 학교 교육과정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사회과에서는 전통문화와 공동체의 의미를, 과학에서는 발효의 원리를, 실과에서는 식생활의 가치를 배울 수 있다. 학생들이 체험한 내용을 말과 글로 표현한다면 국어교육으로도 확장된다. 농촌의 일상적인 생활문화가 여러 교과를 연결하는 교육자원이 되는 셈이다.
이러한 교육은 농촌유학의 경쟁력과도 맞닿아 있다. 농촌유학이 단순히 도시 학생을 농촌학교로 전입시키는데 그친다면 지속가능한 교육모델로 자리 잡기 어렵다. 농촌의 자연과 생태, 농업과 전통문화, 마을의 다양한 교육자원을 교육과정에 접목해 도시에서는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배움의 기회를 제공할 때 차별화된 교육적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봄에는 씨앗을 심고 식물의 성장을 관찰하며 여름에는 숲과 하천에서 생태계를 탐구하고 가을에는 농작물의 수확을 배우며 겨울을 앞두고 김장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이처럼 계절의 흐름에 따라 농촌의 자연과 생활문화를 교육과정으로 연결한다면 마을 전체가 하나의 배움터가 된다.
화촌초의 이번 김장체험은 농촌의 평범한 생활문화가 학생들에게 특별한 교육 경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농촌유학생뿐 아니라 지역 학생들에게도 자신이 살아가는 마을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는 기회가 되었다.
학생 수보다 배움의 내용에 주목해야
학령인구 감소로 농촌 작은학교의 존립 문제가 중요한 교육정책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학생 수가 적으면 또래 관계 형성이나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운영에 어려움이 따르지만 학교의 교육적 가치를 학생 수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작은학교는 학생 개개인의 특성에 맞춘 교육활동을 운영하고 학년의 경계를 넘어 함께 배우며 지역사회와 긴밀하게 협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이번 체험에서 학생이 교사의 도움을 받아 파 썰기를 해낸 경험 역시 학생 개개인의 배움을 지원하는 교육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다만 이러한 체험활동이 농촌유학의 지속가능성으로 이어지려면 안정적인 주거와 통학 여건, 돌봄과 방과후교육,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의 지속적인 지원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농촌유학은 전입 학생 수를 늘리는 데 머무르지 않고 학생들이 농촌에서 지속적으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만드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이날 학생들은 자신이 만든 김치 반 포기씩을 가정으로 가져갔다. 김치에는 농촌의 전통문화와 공동체의 가치, 직접 재료를 손질하며 경험한 배움의 시간이 담겨 있다. 학교에서의 경험이 가정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학령인구 감소 시대에 작은학교의 미래를 논의할 때 중요한 것은 학교를 몇 개 유지할 것인가만이 아니다. 학생들이 그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지역사회가 어떤 교육적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농촌 작은학교의 경쟁력은 특별한 시설이나 학생 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역의 평범한 일상을 의미 있는 배움으로 바꾸는 교육과정, 화촌초의 김장 체험은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