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현재 생각하고 있는 기억
저장시간 18초로 짧고 용량도 작아
누군가의 전화번호를 잊어버렸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전화를 겁니다. 하지만 메모할 여건이 되지 않을 때는 그 번호를 여러 번 되뇌일 겁니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난 다음 그 전화번호가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지금 선생님들이 밖에서 들어온 많은 정보(감각기억) 중에서 한 개를 끄집어내어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면 이것은 단기기억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단기기억은 감각기억에 들어온 수많은 정보 중에서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을 골라내서 이를 처리하는 것입니다. 또 이 단기기억은 다음 시간에 알아볼 장기기억으로부터 정보를 받아 활용하기도 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단기기억입니다. 컴퓨터를 생각하면 더욱 이해가 쉽습니다. RAM은 단기기억, 하드디스크나 CD는 장기기억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런 단기기억이 우리들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시간도 그리 길지 않고 처리할 수 있는 용량도 그리 크지 않습니다. 전화를 끊고 난 다음 외워둔 전화번호가 기억나지 않는 것이나, 명함을 받아 이름을 분명히 봐두었는데도 이야기하다보니 기억이 나지 않는 것 혹은 수업 초기에 선생님이 강조한 핵심을 바로 암기하지 않는다면 수업이 끝날 즈음에는 학생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다음의 숫자들을 한번 외워 보십시오.
A. 5 7 4 B. 4 3 1 5 8 9 6 C. 9 2 4 5 6 8 2 7 3 1 5
A는 쉬웠을 겁니다. B는 외울 만했을 것이고, C는 불가능하거나 대단히 힘들었을 겁니다. 이것은 우리의 단기기억이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다음의 숫자를 한번 볼까요.
A. 2744139219602333 B. 2744 1392 1960 2333
B의 숫자는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들입니다. 낱낱으로 기억하면 힘든 16자리 숫자(A)이지만, 묶어서 생각하면(B) 기억이 쉬워집니다. 이렇게 하면 단위가 한 자리 숫자에서 네 자리 숫자로 확대됩니다(하지만 2744나 1392 등에 대한 장기기억이 없다면 더 큰 단위로 묶지 못합니다). 주민등록번호나 은행계좌번호가 이런 방식으로 기억되고, ‘태정태세문단세’가 모이면 조선 역대 왕 이름이 됩니다.
요약하면, 우리의 단기기억은 7묶음 내외(7±2)의 용량을 갖고 있습니다. 7 이하에서는 훌륭하게 처리해낼 수 있으나 9가 넘어가면 처리하기가 힘들어집니다. 프로 바둑기사들이 300수 이상의 바둑을 순서에 맞게 복기할 수 있는 것도 한 판의 바둑을 전투준비(포석), 접전(초반전), 전투(중반전), 역공세(후반전), 마무리(끝내기) 등 몇 단위로 구분하여 보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위의 B의 숫자를 다시 한 번 기억해 보십시오. 아마 기억해 내지 못할 것입니다. 단기기억에 저장된 내용은 18초 정도 지나면 사라져 없어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컴퓨터로 작업한 것을 ‘저장’ 단추를 눌러 저장하지 않고 컴퓨터를 끄면 작업한 것이 전부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저장’ 단추를 눌러 작업한 것을 저장하듯이 우리는 되풀이해서 외우거나 정보를 정교화함으로써 보다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장기기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