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장과 경찰서장을 공모합니다. 이 두 기관장의 공모제에 대한 여론 조사를 실시해보니 국민의 80% 이상이 찬성했습니다. 사단장의 공모 자격은 5년 이상의 현역 장교를 포함해 기업인, 지역인사, 국방부 일반 행정직까지 문호를 개방합니다. 경찰서장의 공모 조건은 경찰경력 5년 이상이면 누구나 자격이 되며 기업인, 지역인사, 행정자치부 행정직까지 문호를 개방합니다. 인사 적체와 과열된 승진 경쟁을 완화하고 대령이나 경정급이 아니어도 젊고 유능한 자로서 지휘능력이 있는 자는 당해 사단이나 경찰서 인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임용될 수 있습니다. 인사위원회의 구성은 외부 민간인을 과반수 확보해야 합니다. 또한 임용 계약 만료 후에는 전임 부서에 근무토록 할 것입니다.”
이런 공모제가 실시된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그런데 이처럼 지각변동을 불러올만한 공모제가 우리나라 교육계에 추진되고 있다. 소수의 정치인과 관료들이 주동이 돼 인기영합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집단에도 수장의 자리는 한정되어 있다.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자격에 부합 되지 않으면 퇴출시킬 길을 열어 놓으면 될 일이지, 집단 전체를 ‘무능’으로 매도해 놓고 어쩌자는 말인가. 자격증이 없는 사람도 일정 요건만 갖추면 교장 발령을 받을 수 있다니 아마 교육계는 혼란과 내분으로 바람 잘 날이 없게 될 것이다.
선진국의 선례를 살펴보면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미국 등은 자격증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일본의 교장 공모제는 실패했다고 보도됐고 미국은 일부 주에서 공모제를 시행하고 있으나 상당한 연수과정 후 자격증을 부여하고 있다. 경기도 모 특성화 고등학교의 공모 교장제도 실패한 전례가 있음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공모교장의 당위성으로 ‘젊고 유능한 자가 교장이 되어’라고 하는데 이런 추상적이고 모호한 문구가 어디 있는가. 학교장의 역량을 나이로 비교할 수 있는가. 학교장의 직무수행 영역을 여기서 다 서술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교육은 다년간의 현장 경험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현직 교장 중에도 인재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학교는 기업이나 행정기관이 아니다.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동량을 길러 내는 특수한 곳이다. 학교장의 발령권자를 대통령으로 하는 것도 그 막중한 책임에 대해 국가가 예우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교장 공모제가 입법 과정을 거쳐 시행된다고 가정해보자. 먼저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중립성이 훼손돼 학교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질 것이다. 둘째, 교사들은 본분인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보다 정치성향에 몰두해 역기능이 극에 달할 것이다.
셋째, ‘아무나 교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교장의 권위가 실추되고 교육계의 근간이 흔들릴 것이다. 넷째, 교장은 교육적 식견으로 교사들의 교내 장학도 담당해야 하는데 교육 비전문가가 현장에 들어온다면 자존심 강한 교사 집단이 과연 이들의 조언을 수용할 수 있으며 역량도 제대로 발휘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 공모제를 추진하고 있는 국회의원이나 정부 관계자들은 그 자리를 물러나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 후유증은 두고두고 남을 것이다. 세계 무역규모 12위, 경제규모 11위의 성장동력을 길러낸 교원들은 통탄할 일이다. 교육계의 양식 있는 분들이 걱정하고 우려하는 일을 졸속 처리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