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년초라 토요일도 일찍 집에 가지 못하고 밀린 일들을 처리하고 있을 때였다. 뒷문이 열리더니 어머니 두 분이 인사를 하셨다.
“안녕하세요. 저는 ○○ 엄마고 이쪽은 △△ 엄마입니다. 선생님과 꼭 상담해야 할 것 같아서 찾아왔습니다.”
○○는 중증 혈우병 장애를 앓고 있다고 했다. 혈우병 학생을 대해보긴 처음이어서 나도 약간 당황스러웠다. 계단을 오르내리다가도 쉽게 지치고, 심지어 관절이 터지면서 피가 나오는데 멈추지 않기 때문에 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제야 나는 ○○에게 가졌던 의문을 하나 풀게 됐다. 평소 사소한 일에도 친구들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주먹까지 휘둘러가며 공격적인 행동을 보였던 것이다. 아마 자기방어를 위해 나오는 예민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는 중증 간질병 장애를 앓고 있는 여학생이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또 한번 걱정이 됐다. 6학급 소규모 학교에는 보건교사도 없다. 담임인 내가 모두 돌봐야 하는데 의학적 기초가 없는 나로서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날부터 나는 혈우병과 간질병에 대한 의학적 지식을 알아내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고 이웃 학교 보건 교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번째 의문이 풀렸다. △△는 어느 순간 가만히 조는 것처럼 보이곤 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조는 게 아니라 간질 소발작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럴 때는 큰 소리로 이름을 불러서 대답을 하게 하고 심부름도 자주 시켜 움직이게 했다.
○○와 △△는 경주 수학여행 2박3일 동안 한 코스도 빼놓지 않고 모두 동참해 무사히 돌아왔다. 물론 ○○는 매일 아침 맞아야 하는 혈우병 주사 때문에 어머니가 동행하긴 했지만.
가끔은 교사로서의 삶이 너무 힘들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가도 어쩌면 이게 나의 소명이란 생각을 해본다. ‘내가 이 아이들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내게 맡겨지는구나’ 생각하며 앞으로도 힘들지만 보람되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보살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