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언론보도를 보면, 교육혁신위원회가 교장자격증이 없는 평교사도 응모할 수 있는 ‘보직형 교장공모제’ 방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주요 골자는 교장자격증을 없애고, 각 학교의 학교운영위원회에 교장선택권을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교교육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교장을 무자격자 중에서 뽑는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리고 현재의 학교체제가 단위학교에서 교장선택권을 가질 수 있는 구조인지도 의심스럽다.
학교교육은 공공재로서 국민을 대상으로 운영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현재의 교육체제로 보면 교육당국이 학교교육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을 지고 있으며, 단위학교의 교장에게는 일부분의 권한을 위임하고 있다. 따라서 교육당국은 교장의 역할에 대해 국민을 상대로 전문성을 보증하는 최소한의 기제가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자격증이다.
그러므로 자격증은 공익적 보증의 의미가 있다. 왜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말이 있겠는가? 공익적 보증을 위한 각자의 전문영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교직 내부에서도 직무가 유사한 초등교사와 중등교사의 자격증을 달리하고 있지 않은가? 교사의 전문성을 주장하면서 교사의 전문성과 교장의 전문성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보직형 교장공모제라는 것은 일정한 교직경험만 가지고 있으면 교장자격이 주어진다는 것인데, 이는 교장의 전문성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 할 수 있다. 교직경험이란 가르친 경험을 말하며, 교수전문성을 가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교장에게 요구되는 것은 학교경영전문성이다. 학교를 경영한다는 것은 학생을 가르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전문성을 요구한다.
최근에 미국과 영국 등 외국에서는 이전에 없던 교장자격증 제도를 새로이 만들어서 전문성을 강화하는 추세인데, 우리는 왜 있던 제도마저 없애자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이는 시대적 패러다임을 역행하는 것이며, 그 결과는 다음 세대에 심각한 손실을 줄 우려가 높다.
앞으로 학교체제의 패러다임 변화는 현재의 중앙집권적인 교육체제로부터 단위학교별 자율운영체제로 변환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학교가 자율적인 운영역량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충분히 신뢰감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신뢰감 부족의 원인은 국민들의 인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학교체제 때문이다. 현재의 학교체제가 학교자치가 아닌 중앙집권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서 단위학교가 갖는 자율성이 매우 미약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위학교의 학교운영위원회에게 교장선택권을 준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책임소재가 불명확한 학교운영위원회에게 권리만을 주는 것이다. 권리는 반드시 책임을 수반한다. 그러나 현재의 학교운영위원회는 책임질 만한 위치에 있지 않다. 학교운영이 잘못되었다고 책임지는 일이 없다. 학교운영의 책임은 교장이 진다. 권리 행사하는 사람 따로 있고, 책임지는 사람 따로 있으므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장공모제에서 사용되는 단어는 ‘선택’이지만 의미는 ‘선출’과 같다. 왜냐하면 위원들의 성향이 특정 후보의 선택 여부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위원회를 서로 장악하려는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질 공산도 크다. 특정 교원집단이 소속교사를 교장으로 선출하기 위해 위원회를 장악하려는 과정에서 학교는 혼란에 빠져들 가능성도 많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심정이 어떠할지 생각해보라. 학교는 국민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문제의 해결방식은 절대로 교직 내부의 논리여서는 안 된다. 교육자는 어떻게 하면 국민들에게 질 높은 교육을 보장할 수 있는 가부터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