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9일 대통령 자문 교육혁신위원회의 교원정책개선특별위원회는 현행 교장자격증제를 폐지하고 학교운영위원회의 운영위원들이 교장을 선출하는 ‘보직형 교장공모제’를 골격으로 하는 교원승진제도 개선안에 대한 비밀투표를 실시했다. 그 결과 21명 참석자 중 찬성 10명, 반대 11명으로 부결되면서 교직계는 혼돈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덜 숙성된’ 보직형 교장공모제와 같은 각종 교원정책들이 가시화되면서 집권당과 정부, 교원단체, 학부모 등 교육공동체는 갈등의 대립각을 더욱 곤두세웠다. 교장공모제 도입을 둘러싼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교육혁신위 등은 ‘보직형 교장공모제 도입’이야말로 학교교육 혁신을 완성하는 최고의 대안으로 인식하는 편집증 환자처럼 비춰지고 있다.
교원정책특위는 자신들이 제안한 혁신안이 부결되자, 이에 대한 책임을 남의 탓으로 비난하면서 위원직을 사퇴하는 등 이해 못할 행태를 보였다. 다급해진 혁신위는 지난 6월 16일 전체회의를 소집해 교원정책특위를 정상화되도록 사퇴위원들의 복귀와 7월 초까지 교장승진제에 대한 특위 차원의 결단을 촉구했다. 그래도 결론이 없을 경우에는 혁신위 차원에서 교장공모제를 직접 논의키로 했다.
교장공모제 도입에 대한 교직계의 반응은 극명하게 대립되고 있다. 전교조는 교장선출보직제를 변형한 보직형 교장공모제를, 한국교총은 교장공모제 도입 반대를, 학부모단체는 단위학교의 교장공모제를, 교육부는 완전 개방형 교장공모제를 주장하면서 교장초빙․공모제 시행을 발표했다. 교장임용방식에 대한 관점이 상반되고 서로 다른 명칭을 변용․혼용하면서 혼란만 부채질하고 있다.
교장임용제에 대한 교육계의 논의가 이처럼 상이한 것은 합의 도출까지는 시기상조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특히 전교조와 한국교총의 대립각이 좁혀지지 않는 것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것에 기인된다. 전교조는 1980년 말 해직교사 사건에 대한 아픈 과거를 털지 못하는 패배의식을 바탕으로 교장직을 타협의 대상이 아닌 투쟁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국교총은 현 정부의 개혁 추진과정에서 소외되며 겪은 피해의식 때문에 노조를 비롯한 진보세력에 대한 경계심을 벗어던지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학부모단체는 교직사회에 대한 불신의 눈초리를 털어내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이처럼 교육공동체간 반목과 대립, 갈등의 고리는 학교운영의 지배구조 확보를 위한 헤게모니 쟁탈전으로 변질되면서 학교교육력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현행 단위학교 운영체제는 개선돼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아무리 학교교육 운영체제가 혁신된다고 해도, 교육혁신의 결과는 학교교육력 제고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학교교육력 제고를 위한 혁신방안에는 ‘보직형 교장공모제’만 존재한 것처럼 인식하게 하는 것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학교교육의 중심 역할은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의 역량에 집중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학생을 잘 가르치는 교사가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고 자긍심을 가지고 교직생활에 충실하게 할 수 있도록 교사중심시스템을 혁신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와 같이 교사가 교감․교장으로 승진하는 것에 최선의 가치를 두기 보다는 교단교사로서의 자존심을 가지고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학습활동에 우선적 가치를 둘 수 있도록 ‘수석교사제’의 도입이 보다 절실한 문제다. 수석교사제에 대한 논의는 후순위로 밀려나 있어 안타깝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이, 교장임용방식에 대한 결정은 혁신위에서 성급하게 결정내릴 것이 아니라 교육공동체간의 논의와 합의를 이끌어낼 때까지 인내하는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
혁신위 교원특위에서 부결된 사안을 전체회의에서 다시 재론한다는 것 자체가 반대의 목소리를 무시한 독재의 전형이 아닌가. 정부와 교직단체, 학부모단체는 트라이앵글에 갇혀버린 교장임용방식의 소모적 논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학교는 교장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을 위해 존재하는 곳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