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직생활 28년째, 어느새 연륜이 그렇게 쌓여버렸다. 하지만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뚜렷하게 줄 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 4년전부터 생각한 것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힘들고 지친 날도 많았고, 정말 책을 읽어주고 싶지 않은 날도 많았지만 그 시간들을 넘기며 읽어준 날은 다른 어떤 날보다도 뿌듯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이젠 나를 스쳐간 아이들이 나를 ‘책 읽어주는 선생님’으로 부르도록 만들어버렸다.
지금 나는 1학년을 맡고 있다. 갓 입학한 아이들에게 ‘딸꾹이는 1학년’이란 책을 읽어줬더니 자신들의 세계와 맞았는지 무척 좋아했다. 요즘엔 ‘선생님이 들려주는 효 이야기’를 읽어주고 있는데 하루는 텃밭에 씨앗파종으로 바빠 수업 중 단 5분도 짬을 내지 못했다. 그랬더니 한 아이가 “선생님, 오늘은 효 이야기 안 읽어주세요?” 한다. 이럴 때면 ‘벌써 이 녀석이 동화 읽어주기에 맛 들였나보네’ 생각하며 내가 하는 일에 작은 보람을 느끼곤 한다.
어느 날 ‘딩동’하는 소리와 함께 중학생이 된 제자의 메일이 도착했다.
“선생님, 아직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시고 계시겠죠? 선생님 덕분에 우리 반은 많은 책을 알게 되었어요. 전 중학생이 되어서 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어요. 책도 많이 읽고요. 지금은 해리포터 시리즈를 다 읽고 있는데 다음은 삼국지를 읽을 생각이에요. 선생님은 무슨 책을 읽고 계시나요?”
다른 어떤 선물보다 가장 사랑스런 선물이 이런 것이다. 이런 제자가 있기에 나는 오늘도 힘을 내어 동화책을 주문하고 아이들 앞에서 책을 읽는다.
열심히 책을 읽고 나면 아이들은 영락없이 “선생님, 그 책 빌려주세요”하는 주문을 해온다. 나는 거기서 내가 교사로 살아가는 이유를 찾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다짐한다.
‘내가 물러나는 그날까지 난 책 읽어주는 선생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