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교장 인사제도를 두고 교육계 안팎에서 시끄럽다. 이 제도는 승진규정으로 제정(1964.7.8)된 후 2005년 7월까지 28회 개정돼 다듬어져온 것이다. 교육혁신위원회는 교원 인사제도를 송두리째 바꾸려 하면서 교원들의 여론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교장 승진을 희망하지 않는 중장년 교사들도 교장 공모제 방안에 대해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젊은 교사들의 반응도 비슷하다. 결국 이 대안이 시행된다면, 그 피해의 강도는 정년단축보다 훨씬 클 것이라고 우려한다. 한마디로 학교는 ‘쑥대밭’이 되고, 교육은 고사하고 말 것이란다.
학교 최고 책임자로써 교장은 교원 및 교육에 대한 이해와 지식은 물론 다양한 교육경험과 확고한 교육관 등 전문성이 생명이다. 경영 마인드만 넘치는 CEO가 교장직을 잘 수행할 것이란 생각은 단견이다. 사회가 전문화되면 될수록 전문성이 강조되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한국 교육은 이에 역행하고 있다.
교육이 경시된 채 교장 자격증 없이 학교가 운영되는 외국 사례가 한국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외국 제도의 도입은 정말 신중해야 한다. 문화와 관념이 다른 외국의 제도를 도입하여 실패한 행정사례는 수없이 많다. 미국은 선진국이지만 주마다 지방교육자치에 따라 교육이 다르다. 주에 따라 교사 자격증이 없는 곳도 있다. 이런 주에서는 공모 교사의 자질을 알기 위해 정기적으로 교사평가를 실시하고, 보수와 계약을 갱신한다. 준 학사, 학사, 석사, 박사에 따라 봉급체계도 다양하다.
그런데 경제적 효율성과 합리주의 행태가 일반화된 미국이 최근 교장의 자격요건을 교육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였다. 한국은 교육투자는 인색한 채 오히려 외국에서 버리는 후진적 제도를 뒤따라 가려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교장 자격증 없는 제도가 교육법(현재 초중등교육법) 별표의 ‘학식·덕망’ 조항과 교육부훈령인 ‘교장자격증부관설정규정’ 등에 남아 있다. 이것이 전직 교육부장관과 관료 등이 교장 자격증 없이 교장을 할 수 있는 뿌리가 된 것이다. 사회가 전문화되기 전, 학식 있는 사람들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용된 허술한 교장자격제도였던 것이다. 이런 제도의 도입 배경이나 실상과 전말을 국민들이 제대로 알 리가 없다.
당국은 전문성 부족 문제는 접어두고 실적만 내세운 채, 교장 공모제를 계속 호도하고 있다. 교육과 교원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서 이 제도의 폐지가 급선무였지만, 오늘날까지 관료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교장 자격증 없는 시대가 온다면 우리나라 학교는 더욱 무주공산이 될 것이다. 교육의 본질은 공염불이 될 것이다. 교장 공모 때마다 인기영합주의가 치열해지고 패거리문화 확산, 인맥 따라 문전성시를 이루는 교직사회의 부정적 행태가 정치권 뺨치게 될 것이다.
학교는 교장의 명령이 서지 않는 무중력 상태의 조직이 되고 교사들은 수수방관할 것이다. 누가 학교 일을 하려고 할 것인가. 현행 교감처럼 장래가 확실하지 않은 부교장도 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초·중등 교원도 대학 교수처럼 학생을 가르치고 평가만 하고, 학교 일은 사무국에 완전 일임하는 대안까지 확실히 마련한다면 모를까.
교원 정년단축의 피해는 30년간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교장 공모제가 도입될 경우 피해는 그 제도를 중단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제 ‘교육개혁’을 명분삼은 더 이상의 파워게임은 중단하기 바란다. 잘못된 문제 인식과 처방으로 교육정책이 더 이상 표류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