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 이별할 경우에 ‘여의다’는 표현을 쓴다.
“그는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고아로 자랐다.”
그러나 ‘여의다’에는 사람들이 주로 알고 있는 이 뜻 외에 다른 뜻이 두 가지나 더 있다.
‘여의다’의 두 번째 뜻은 ‘딸을 시집보내다’는 것이다.
“막내딸을 여의다”라고 하면 딸이 죽어서 이별했다는 것이 아니라 시집보낸다는 뜻이다. 박경리의 ‘토지’에도 “딸의 혼처를 찾지 못하여 노심초사하던 한복이 내외는 지난 늦봄, 중매쟁이 말을 믿고 인호를 통영에다 여의었는데…”라는 표현이 나온다.
현재 북한에서는 ‘여의다’는 말이 첫 번째 뜻으로만 쓰이고 있어서 만약 북한에서 두 번째 뜻으로 ‘여의다’라고 말했다가는 자칫 오해를 불러올 소지도 있다. 남북한 언어사용의 차이가 꽤 크다는 것을 반증하는 한 가지 예인 셈이다.
‘여의다’의 세 번째 뜻은 ‘멀리 떠나보내다’는 것이다.
“일체의 번뇌를 여의다.”
“환자들 중 병을 여의고 나서도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일찍 떠나는 것은 약의 강한 독성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