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국가 가운데 우리나라 학생들이 가장 많은 수업을 받는다. 그것도 모자라 보충학습, 방과 후 교육활동, 토요휴무일까지 학습한다.
여기에 사설학원과 과외까지 합치면 연간 수업시간이 1,000시간이 넘을 것이다. 이런 실정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에서 학력신장을 부르짖는다. 또 학력신장이라는 미명아래 학생자치활동, 계발활동, 동아리활동, 현장체험학습, 체육대회 등 학생스스로가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인간답게 사는 법 가르쳐야
도대체 교육이란 무엇인가? 교과서적인 지식만을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가 스스로 탐구하고 분석하여 원리를 터득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도록 도와주며 더 나아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사는 법과 인간답게 사는 법을 체험하도록 계획하고 실천에 옮기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가장 바람직한 교육의 효과는 언제 극대화 될 수 있는가 예를 들어 손바닥을 칠 때 어쩌다 양손바닥이 적정한 부분에 잘 맞으면 놀랄 정도로 크고 시원한 큰소리가 나는 것처럼 학습의 주체자인 학생의 손과 교육의 주체자인 교사의 손이 최적으로 맞았을 때 가장 큰 소리, 자신들도 믿기 어려운 놀라운 효과를 얻는 법이다.
진정한 의미의 학력신장이란 좁은 의미의 교과적 지식을 포괄하고 나아가 다양한 교육활동에서 배운 지식을 토대로 창의적 지식, 사고력, 상상력 등의 길러 이른바 학교교육에서 배운 지식을 토대로 새로운 지식을 펼칠 수 능력을 기른다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학생들에게 무엇을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이 단순히 4%안에 들어 ‘명문대’라는 목표를 향해 밤을 지새우라고 강요할 수 없다. 자아실현을 위해 자기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지식의 교육보다는 일률적이고 흥미 없는 지식을 강제로 교육시킴으로 개인의 자질과 능력을 무시한 채 똑같은 인간으로 만들어 가야 할 것인가를 자문해보야 한다.
전체 4%의 성적의 학생은 이미 교사의 영향을 그리 많이 받지 않을 경우가 많다. 정작 교사나 부모의 격려와 칭찬의 말 한마디나 교사의 교육적 행위가 가 큰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후자의 경우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4%안에 드는 학생에게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 않은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4%에 들기 위해, 소위 명문대에 진입하기 위해 학력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인성교육이나 생활지도는 도외시하고 입시교육에만 매달리라고 공교육에 주문하는 것은 분명 몇 년 후 반성과 질타의 대상이 될 것이다.
요즈음처럼 교육기관이 뭇매를 맞고 있는 때는 없었다. 교육정책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어떠한 교육정책도 그 효능을 발휘하기에는 한계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교육문제 해결을 가로 막고 있는 최대의 걸림돌은 뿌리 깊은 학력·학벌사회 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학벌만능 풍토 교육개혁 어려워
교육개혁 아닌 교육혁명을 하더라도 고질적인 학벌 위주의 사회풍토에서는 해결책이 없다. 남과 균등하게 받는 공교육투자에는 인색하면서 내 자식만을 위한 사교육비 투자는 빚을 내서라도 하겠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고 학벌과 학력만능 풍토 하에서 온 국민이 벌이는 과도한 교육경쟁이 있는 한 한국의 공교육을 살리기 위한 어떤 교육개혁도 실효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이 자리에서 공교육의 위기를 사회의 구조적인 학벌이나 학력위주의 탓만으로 돌리고 수수방관할 생각은 없다. 우리가 땅에 넘어지면 그 땅을 디디고 일어나야 하는 것처럼 문제의 핵심에서 대안을 찾고자 한다. 나는 이 땅의 모든 학교가 ‘우수한 학교’보다는‘좋은 학교’가 되기를 소망한다. 정말 좋은 학교는 명문학교가 될 수 있다. 그러한 학교는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향상은 기본적인 사항이며, 도덕성 발달, 사회성 발달, 자신의 적성과 개성에 대한 탐색 및 이에 적합한 진로선택 등을 함께 고려하는 교육을 실시한다. 이러한 학교가 점점 많아져 주류를 이루도록 교육공동체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한국의 실질적인 국가 역량은 그런 노력에 정비례해서 배양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