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제도는 직위가 요구하는 능력 요건을 갖춘 인재를 선발․배치해 소속원들의 충성심과 참여를 활성화하고 기관 운영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엄격․공정한 검증과정이다. 우리나라의 현행 교원승진제도는 교원의 전체 교육활동을 장기에 걸쳐 수 십명의 평정자가 다단계로 평가하고 그 과정 및 결과를 공개해 피평가자가 자신의 점수를 알고 경쟁자의 점수와 비교할 수 있도록 돼 있어, 정당성․공정성․객관성면에서 어느 나라 어느 공사조직의 승진제도와도 비교할 수 없이 합리적이다.
1회성 교장 장기비전 제시 어려워
하지만 이같은 제도를 두고 문제해결의 대안을 가장 잘 알고 있는 현장 책임자인 학교장들의 의견을 묵살한 채 특정인사들이 주도해 무자격 교장 초빙제가 시행된다고 하니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 학교 교육이 왜곡·퇴행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보통교육의 본질로 볼 때 무자격 교장 초빙제로 학교교육의 틀을 단숨에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생각은 무모하고 무책임한 일로서 그보다는 기존 제도의 틀을 유지하면서 드러난 문제를 개선하는 쪽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 더군다나 매년 전체 교원의 2~30%가 한꺼번에 이동하는 현행 순환근무제에서는 잦은 정책의 변경이나 구색 맞추기식 다양화보다는 교장이 중심에 서서 학교교육의 일관성 및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오히려 제도적 장치를 보강할 필요가 있다.
단위학교 운영의 총책임을 맡고 있는 교장에게는 다양한 전문적 지식과 오랜 교육현장 경험을 통해 내면화된 고귀한 품성이 요구되며 무엇보다도 학생들을 품에 안을 수 있는 폭넓은 인간미와 관용이 체질화돼야 한다. 하지만 교육전문성에 관한 검증과정도 없이 1회성으로 위촉되는 무자격 교장은 학교발전을 위한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사명감, 책임감, 자부심을 갖기도 어려워 대학의 총장 직선제에서 나타난 것처럼 쉽게 종파주의, 무사안일주의, 인기영합주의에 함몰될 가능성이 크다. 신분상의 불이익을 무릅써가면서 소신껏 최선을 다해주기를 기대하기도 어렵고, 각종 사안이 발생해도 책임지지 않으려 할 것이며, 실제로 이들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데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결국 모든 책임은 학교와 학부모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무자격 초빙 교장제가 실업계나 특수목적 고등학교에는 어느 정도 유효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이미 시범 적용해 보았던 몇 몇 실업학교들이 모두 실패를 인정하고 다시 유자격 교장승진제로 전환한 것은 전문학과가 10개도 더 되는 실업고 형편에서 특정한 분야 출신의 무자격 교장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5년 전부터 이 제도를 시행한 일본은 무자격 교장들에게 5~6개월간의 현장연수를 받게 한 후에 업무에 복귀시키고 있으나 실효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높다. 미국이나 영국은 초빙 교장의 지원 자격으로 특별한 경력을 요구하고 있으며 임명 기간을 다단계화하고 연수기간을 장기화하는 등 자격증제 이상으로 요건을 강화하고 있다.
초빙교장제 시범학교 부작용만 확인 해
무자격 공모제는 장기간 학교교육의 발전을 위해 열정을 바쳐 충성한 교사들의 헌신적 기여를 배신하는 행위다. 교육은 단 하나의 아이디어로도 한순간에 수십․수백억 원의 수익을 올리는 비즈니스와는 전혀 다르다. 교육은 장기간의 열정으로 어린 생명들에게 혼을 불어넣는 인간 재창조의 과정이다. 학교교육을 하는데 있어 경력과 공적을 검증받고 현재의 지위로 승진한 성실한 교사들 외에 달리 어디서 인재들을 찾겠다는 것인가? 소수 이해관계자들이 영합하여 연출하는 조직적 비리인 무자격 초빙 교장제는 즉시 중단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