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고2 담임을 맡아 학생들을 데리고 처음으로 설악산 수학 여행을 떠났을 때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끝없이 펼쳐진 쪽빛 동해 바다에 성큼 다가서 있었다. 강릉을 지나 속초 근처 낙산사와 의상대를 둘러보고 오는 길에 건어물 노점상에서 마른 오징어 한 축(20마리)을 덥석 구입했다. 그런데 설악산을 떠나기 전날 여관 주인이 특별히 소개한 행상이 오징어를 가져왔는데 내가 구입했던 것보다 값도 싸고 크기도 훨씬 컸다. 견물생심이라고 나도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오징어 한 축을 더 샀다. 설악산에서 출발하던 날 버스에 오르면서 오징어 한 축을 반장 녀석에게 맡겼다. 내 배낭이 작아서 오징어 두 축이 다 들어가기에는 너무 빡빡했기 때문이다. 수학 여행단 버스가 부산에 가까워 오자 나는 오징어를 챙겼다. 그런데 반장 녀석 대답이 황당했다. "선생님 오징어 없는데요?" "야 이 녀석아, 설악산에서 분명히 맡겼잖아. 그 오징어 어떻게 했니?" "모르겠는데요." "한번 네 배낭을 잘 찾아봐라. 혹 다른 애한테 맡긴 것은 아니냐?" "없는데요. 모르겠는데요" 답답한 나는 학생들한테 각기 자기 배낭을 다시 한번 확인해보라고 했지만 내 오징어는 온데 간데 없었다. 우리 반 아이들 아무도 그 오징어의 행방을 모른다고 했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지만 애들이 보는 앞에서 내 오징어를 챙기려고 더 이상 반장을 닥달하거나 혼내주기도 머쓱해졌다. 결국 그 사건은 의문을 남긴 채 유야무야 지나가고 그저 졸지에 날아간 오징어 20마리만 아쉬워하며 속을 끓여야 했다. 그 후 7, 8년이 흘렀을까. 그 때 그 녀석들 몇 명이 어엿한 청년이 되어 우리 집에 놀러 왔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그 오징어 사건이 떠올라 얘기를 꺼냈다. "너희들 수학여행 때 내 오징어 잃어버린 사건 기억하지? 혹시 그거 어떻게 된 건지 아니?" 그러자 갑자기 녀석들이 배꼽을 잡고 웃더니 실토를 했다. "선생님, 아직도 그 범인을 모르고 계셨어요? 그 때 부산으로 내려 올 때 동해 휴게소에서 점심 먹으려고 쉬었잖아요. 선생님은 전날 과로하셨는지 차가 선 줄도 모르고 코를 골고 주무시더라고요. 그 때 우리 모두 소주 10병을 사서 오징어 20마리를 안주 삼아 신나게 먹었습니다. 그 오징어를 우리가 다 먹어치웠는데 누가 이실직고를 할 수 있었겠어요. 용서해 주십시오. 선생님" "하하하…" <류재신 경남 창원남중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