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교육정책의 '싱크탱크'인 한국교육개발원이 입시 명문고로 불리는 외국어고의 실제 학교교육 효과가 거의 없으며 특목고 제도 도입 당시 내세운 수월성 정책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며 현행 특목고 정책을 비판했다.
한국교육개발원 강영혜 교육제도연구실장은 1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교원소청심사위원회 강당에서 개발원 주최로 열린 특목고 제도개선 토론회에서 '특목고의 현주소와 발전 방향'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날 토론회는 교육부가 최근 특목고 설립 인가를 전면 유보하고 10월 말 종합적인 특목고 제도개선 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힌 가운데 개발원이 기본과제로 수행중인 '특목고 정책의 적합성 연구'의 중간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여서 주목된다.
강 연구실장은 과학고와 일반고, 외국어고와 일반고 학생들의 국어 성적을 분석한 연구결과를 소개하면서 "과학고의 학교 효과는 어느 정도 확인됐지만 외고의 학교 효과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과학고와 외국어고 모두 원점수에서는 일반고를 상당히 앞서 있지만 학생 수준과 학교 수준의 배경 변수, 과정 변수를 통제하고 나면 외국어고와 일반고 간에 유의미한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강 연구실장은 "이는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특목고의 효과가 학교 교육의 효과라기보다 좋은 배경과 학구열이 높은 학생들을 선발해 얻게 되는 선발 효과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목고가 사교육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강 실장은 "조사 결과 외고 진학을 위해 사교육을 받은 학생이 60.3%, 특히 수도권에서는 83.4%에 달했다"며 "특목고 입시가 중학교 과정을 넘어 출제되면서 특목고 준비 사교육은 과중한 경제적 부담 외에도 중3 교실 붕괴 등 공교육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연구실장은 "특목고 효과의 상당부분이 성적 및 가정배경 우수자 중심의 선발 효과라는 점에서 특목고 제도 도입 당시 내세운 수월성 정책은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며 "특히 외고의 경우 설립 목적인 '어학영재'의 의미와 성격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목고 개선책으로 ▲ 초중등교육법에서 현행 특목고 조항을 없애고 특성화학교로 변경하는 등 법적위상 정비 ▲ 외고는 주기적 평가를 통해 재지정 혹은 지정 해제 ▲ 학업성적보다 향후 동일계 진학 희망자 위주로 특목고 입시 개선 ▲ 대입 동일계 전형 확대 등을 제안했다.
각 시도교육청이 신설을 추진중인 '국제고'에 대해서도 "무분별한 국제고 증설은 현행 외고의 문제를 되풀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초기에 정체성을 명료화해야 한다"고 강 실장은 말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김진영 건국대 교수는 "'특수목적'을 '과학'과 '외국어'로 제한한 것 자체가 잘못됐다"며 "특히 외고는 이미 특목고의 기능을 상실했으므로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철 한국과학기술원 연구교수는 "현재의 과학고는 영재교육기관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기에 너무 많은 제약을 받고 있고 학교운영, 지원체제도 일반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며 "국가차원에서 과학고를 지원하고 관리하는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논평을 통해 "외고를 특성화고로 변경하는 방안은 특목고 제도 개선의 근본적 해결 방안이 아닌 근시안적인 발상으로 또다른 문제를 악화시키는 단초가 될 것"이라며 "원점에서 신중하게 다시 논의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