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은 10일 대학입시전형을 단계적으로 대학 자율에 맡기도록 하는 이명박(李明博) 대선후보의 교육 공약을 둘러싸고 첨예한 공방을 벌였다.
이 후보의 공약이 현행 대입정책의 근간인 '3불(不) 정책' 가운데 본고사 및 고교등급제 금지를 사실상 해제하는 내용인 만큼 3불 유지를 지지해온 신당이 강력히 반발하고,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역시 "저소득층을 소외시키는 정책"이라며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신당은 이 후보의 교육 공약이 본고사 및 고교등급제를 사실상 부활시키는 조치로, 사교육을 강화하고 대입 위주 교육을 부추겨 교육 및 사회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미경 최고위원은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 회의에서 "이명박 후보가 교육정책 공약을 통해 본고사 및 고교등급제를 부활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는데 사회적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자립형 사립고를 서울에만 20개 이상 만들면 이것 자체로 양극화를 부추기고 돈 많은 집안의 자녀들만 좋은 환경의 교육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교육부총리를 지낸 김진표 정책위의장도 "내용도 정확치 않은 교육공약으로 정책혼선을 가져와선 안된다"며 "현재 대입제도 자체가 대학자율에 맡겨 있는데 이 후보가 현행 제도를 잘 모르고 말하는 것 같다. 표를 얻을 목적으로 이렇게 교육공약을 발표하면 학부모와 학생에게 혼선을 가져다준다"고 말했다.
신당 최재성 원내대변인은 "'국어를 영어로 가르치자'던 이 후보가 서민교육 말살 정책을 내놨다"면서 "낙후지역에 기숙형 공립고 100개 설립, 마이스터 고교 50개 집중육성, 자율형 사립고 100개 신설 등연간 수조원이 들어가는 이 후보의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서 학부모 부담을 늘린다면 귀족.특권 교육을 육성하고 서민교육을 말살하겠다는 공약"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이상열 정책위의장은 브리핑을 통해 "공교육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자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교육적 배려가 부족한 정책"이라며 "기숙형 공립고, 자율형 사립고 등 잘 사는 학생들이 들어가는 학교에 국가재정 지원을 확대하는 것은 저소득계층을 소외시키는 것이며, 고교등급제와 본고사를 허용하는 정책은 사교육을 성행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민노당 권영길 후보는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문제의식은 적절했는데, 그 대처방식은 정말 부적절한 것 같다"며 "특히 3불정책은 공교육을 지키는 최소한의 마지노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무력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이 후보의 공약은 반서민정책의 집약본"이라고 말했다고 박용진 대변인이 밝혔다.
청와대도 이 후보 교육공약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이 후보의 공약은 타당성과 적합성에서 볼 때 매우 위험해 보이는 측면이 있다"며 "문민정부 이후 지켜왔던 공교육 정상화의 기본을 무너뜨리고 이런저런 아이디어 수준의 것을 너무 쉽사리 판단해 던져놓은 것 같아 불안하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대입 본고사와 고교 등급제 금지를 풀겠다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금지할 필요가 없어지도록 하겠다는 정책"이라고 맞섰다.
획일화된 입시 정책이 오히려 대학과 고교의 서열화를 조장한다는 판단 아래 고교와 대학별 특성화를 촉진하고 특기 및 인성 등도 대입 전형에 반영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뒤 대학의 학생선발권을 보장할 경우 본고사 및 고교등급제 논란 자체를 벌일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한구 정책위의장은 이날 CBS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이 후보 교육공약은) 3불정책 폐기라기 보다 3불정책이 불필요하도록 만드는 것"이라며 "기여입학제는 다른 문제이지만 나머지 2개는 자연스럽게 불필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본고사가 부활하면 사교육비가 증가할 것이란 주장에 대해 "대학교에서 입학 사정을 얼마나 과학적으로 해서 국민 신뢰를 받을 수 있느냐가 핵심"이라며 "입시 과목도 더 줄이고 영어교육도 강화시키면 사교육비 부담이 줄어든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공교육 능력을 확대하고 저소득층의 교육기회도 더 넓힌 뒤 (대입전형은) 완전 자율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서열화를 부추길 것이란 지적과 관련, 그는 "지금은 획일적으로 같은 기준을 적용하니 오히려 서열화가 생긴다"면서 "학과 특성에 따라 대학교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했으므로 대학 서열을 찾기가 더 힘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교육공약 확정을 주도한 이주호 제5정조위원장은 "본고사 부활은 지나치게 부작용이 많은 제도"라면서 "전혀 (본고사를 부활할) 생각이 없다. 제도적 보완으로 충분히 본고사를 차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 주체인 대학을 불신하면 좋은 정책이 나올 수 없다. 외국 대학들은 성적만 갖고 학생을 뽑지않는데, 그런 환경을 조성하면 우리 대학들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면서 "교육기관들이 서열화되는 것도 정부의 획일적인 규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좋은 정책은 중용적 정책"이라며 "평준화와 다양화를 병존하고 단계적으로 대학을 자율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형준 대변인은 논평에서 청와대가 이 후보의 교육공약을 비판한 것과 관련, "지난 5년간의 교육 정책 실패에 책임이 큰 청와대가 야당 후보의 새로운 구상에 대해 깊이 검토하지도 않고 문제삼는 것은 '청와대 정치의 저급함'을 보여줄 뿐"이라며 "더욱이 '본고사 부활'이란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 "'너나 잘 하세요, 청와대'"라고 비꼬았다.